지난 1월 초, 공개 강의를 위해 한국으로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내가 사는 샌타바버라에는 한국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 라디오 방송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국 출장중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TV를 본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국의 영어 열풍을 다룬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마침 영어를 잘하기 위해 혀 수술을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혀와 혀 밑바닥을 연결하는 막을 절개하면 혀가 길어져 R과 L 발음을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영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은데 혀를 수술해 가면서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그만 우울해졌다. 아마도 아무리 노력해도 영어가 되지 않으니까 그런 엽기적인 생각까지 하게 됐으리라 추측된다. 그 외에 한국 대학생이 4년간 토플 및 토익 공부를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평균 1200만원이라는 통계 조사 결과도 나를 놀라게 했다. 영어 공부에 열심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영어가 그토록 큰 짐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정도의 노력과 경비를 들였으면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아도 기본적인 의사 소통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 아직 대다수의 학생들은 영어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뭔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영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있었으니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영어는 혀를 수술하지 않고도, 또 대학 4년간 1200만원이라는 돈을 들이지 않고도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50 English’(디자인하우스)라는 영어학습서를 쓴 사람으로서, 그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Divide and Conquer English(DACE)’ 학습법에 의거, 어떻게 영어를 정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관련 사이트: www.50english.com).
만약 ‘깨진 독에 물 붓기’ 식 영어 공부에 지친 사람이 있다면 이 방법을 따라해 보길 권한다. 이 학습법은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영어를 잘하기 위한’ 학습법과 그 도구들이다. 영어 정복의 길은 멀고 험하나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영어 때문에 낭비하는 세월 중 적어도 6개월은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2000~2001년 한국을 휩쓸고 간 영어학습법이 있었다. 그러나 그 방법을 사용한 모든 이가 효과를 거둔 것은 아닌 듯하다. 그 책에서 시키는 대로 영어 테이프를 6개월 이상 들었는데 아무 감도 오지 않았다는 이도 있었다. 비슷한 경험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은 “50 English도 그런 책 아니냐”는 질문을 해와 나를 당황하게 했다. 나 역시 새 학습법을 개발한 사람으로서 독자들에게 똑같은 실망을 안기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학습법은 좀 다를 것’이라는 확신과 자신감이 더 크다. 나는 영어를 불편 없이 구사할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으며, 영어 학습의 문제를 분석해 매우 효과적인 학습 도구를 개발했다. 이미 활용해 본 사람들의 소감이 이를 증명한다.
암기냐, 영문법이냐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에게 비법을 물어보면 십인십색(十人十色)이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학습법만이 영어를 잘할 수 있게 해준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 효율적인 방법이 다른 이에게는 비효율적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비효율적인 방법이 다른 사람에겐 특효약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의 학습법을 정리해 보면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누어짐을 알 수 있다.
첫째 원리는 반복과 암기다. 언어는 습관이므로 미국 어린이들이 영어를 배우듯 무조건 듣고 따라 해 몸에 배게 한다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대다수의 영어학습서들이 이 방법을 권하고 있다. 무조건 듣고 따라 하라, 크게 소리 질러라, 영문법은 집어치우고 무조건 영어로 듣고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말해보라…. 이 방법의 특징은, 영어는 암기를 통한 습관임을 강조하며 영문법을 불필요한 것으로 격하시킨다는 점이다. 영문법 때문에 영어가 안 된다며, 문법은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외워 습관을 들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학습법의 핵심은 ‘반복적인 듣기와 암기를 통한 습관화’이다.
둘째 방법은 영문법으로부터 영어를 시작하는 것이다. “영문법이란 영어를 구성하는 원리이자 법칙인데 그 원리를 모르고 어떻게 바른 영어를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한다. 영어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영문법을 배워야 하며 그것만이 유일한 학습법이라고 강조한다. 즉 ‘영문법을 통한 영어의 습관화’다.
이 두 부류의 영어 학습법은 모두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죽어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 방법이 맞는 것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저 방법이 맞는 것 같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 책도 사보고 저 책도 사보다가 결국은 혀 수술이라는 엽기적인 발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영어 공부로 낭비된 인생이다. 이런저런 학습법에 속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다 집어치우려다가도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또 그 암담한 수렁 속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나는 위의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영어를 정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암기만으로 습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수준급의 영어를 구사하는 데 많은 제약이 있다. 일상 생활, 그러니까 인사며 간단한 일 처리는 가능하지만 자신의 깊은 생각이나 사물의 동작 원리, 어떤 학문을 영어로 배우고 토론하는 데는 심한 제약이 따른다. 이 방법만으로는 미국의 초등학교 3학년생 이상의 말은 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100개 문장을 아는 사람보다는 1000개 문장을 암기한 사람이 낫다. 그러나 의사소통에 제한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이며 시간 문제이다. 만일 원하는 목표가 생활회화 수준의 간단한 의사 소통뿐이라면 영문법을 무시하고 이 방법으로 영어를 배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둘째, 영문법을 통한 영어 공부도 문제가 있다. 원칙적으로 보면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학습법일 것이다. 문법이란 문장의 구성을 알게 해 그 원칙에 맞춰 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문법의 내용이 한숨에 암기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영문법은 대부분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영어의 구성원리를 가르치기보다는 용법을 암기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되어 있다. 내용에 있어서도 이것이 정말 살아있는 영문법이냐를 묻게 할 정도로 검토가 요구되는 부분이 많다. 다행히 근래에 와 영문법을 다른 각도에서 분석하고 음미하려는 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가 배우는 영문법은 너무나 방대하고 암기해야 할 규칙과 예외가 너무 많아 그런 식으로 영어를 배워 써먹으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영문법 교육을 폐지해야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영문법 책의 내용을 가능한 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암기해온 문법을 말살하기보다 간단한 내용이나마 완전히 이해하고 음미해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 나는 이것을 영문법의 습관화라 부른다.
내가 제시하는 DACE 학습법의 원리는 간단하다. 영어를 잘하려면 기본 문장을 완전하게 암기하는 ‘암기의 학습법’ 뿐 아니라 영문법의 완전한 이해와 내재화라는 ‘영문법의 습관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영어학습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6개월 혹은 1년 후에나 결과를 볼 수 있는 학습법보다는 일주일만 공부하면 그 부분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물론 DACE 학습법이 권하는 50문장 혹은 100문장을 완전히 습득한다 해서 영어를 정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작은 될 수 있으며 올바른 공부법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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