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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동물실험의 천국

年 400만 마리

  • 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한국은 동물실험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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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공학(BT) 산업의 성장과 함께 국내서도 동물실험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죽어가는 동물이 1년에 400만마리에 이른다.
”목졸라 죽일 때요? 끔찍하죠. 펑펑 우는 애들도 많습니다. 죽인 동물이 꿈에 나타나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해요.”

서울의 한 대학 실험실에서 동물실험을 하는 A씨는 동물을 죽일 때마다 죄의식을 느낀다. 사체는 소각하는 게 원칙이지만, 죽은 동물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질식사시킨 뒤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다.

“토끼 눈에 새로 개발한 화학약품을 집어넣습니다. 토끼를 묶어두고 약품의 강도와 접촉시간 별로 차이를 두어 관찰하는데, 약품이 강할 때는 토끼 눈이 타들어가기도 하지요.”

대기업 소속의 수의사로 10년 동안 실험동물을 관리한 K씨의 경험담. 실험대상 동물은 호텔 같은 감옥에서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인간을 위해 죽어간다는 게 K씨의 설명이다.

우리는 복제동물 탄생이나 신약개발 성공 소식을 꽤 자주 접한다. 그러나 이런 환희의 이면에는 실험으로 죽어간 수백만마리의 동물들이 있다. 비누와 세제는 물론이거니와 의약품, 각종 공업제품까지 인간의 몸에 닿는 것이라면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 실험용으로 죽어가는 동물은 연간 400만마리로 추산된다. 한국실험동물협회 관계자는 “한국의 실험동물 생산능력이 연 2000만마리 수준”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연간 3000만마리, 세계적으로 2억마리의 동물이 실험용으로 죽어간다.

실험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동물은 마우스, 랫트 등의 설치류가 80%를 차지하고 햄스터, 기니픽, 토끼, 고양이, 개, 돼지, 원숭이 등이 뒤를 따른다

실험실에서는 마취제 없이 한계상황 실험(저온·고온실험), 혐오자극법, 전기충격법, 사회적 박탈실험, 학습된 무력감, 종양을 과다하게 키우는 실험이 빈번하게 행해진다. 동물 신진대사를 이용해 살아있는 생명의 반응을 보는 실험이 대부분. 실험재료가 된 동물들에게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K대학 생리심리학연구소 C연구원(26)의 말.

“동물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겨울에는 얼어죽는 일도 흔합니다. 가끔씩 비닐하우스에서 보관되고 길러지기도 합니다, 먹을 게 없으면 탈출하기도 하지요. 심지어는 서로의 몸을 뜯어 먹습니다.”



동물실험의 천국


지난 2월4일 밤. 성공회대 박창길 교수는 뉴스를 보다 분통을 터뜨렸다. 한동안 TV에서 볼 수 없었던 동물실험 장면이 방송됐기 때문.

“담배 한 개비당 1mg의 니코틴이 들어 있는데, 같은 양의 니코틴을 쥐에게 주사했더니 30초 만에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었습니다.”

이같은 기자의 멘트가 끝나고 몸을 떨며 죽어가는 쥐의 모습이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방송이 나간 뒤 ‘동물권 옹호론자’들은 방송 내용에 격렬히 항의했다. 니코틴의 폐해를 설명하기 위해 쥐를 이용하면서 아무런 윤리적 고민도 하지 않았다는 것.

박교수는 이런 종류의 비윤리적인 실험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치 없는 실험입니다. 애들의 눈을 통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니코틴의 해로움보다 죽은 쥐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을 겁니다. 한 생명을 이처럼 원칙 없이 죽이는 것은 문제입니다.”

한국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동물실험의 천국’으로 불린다. 법률의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동물실험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이 있다. ▲다른 방법을 찾을 것(Replacement) ▲실험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할 것(Refinment) ▲실험횟수를 줄일 것(Reduction). 3R이라고 불리는 이 원칙이 한국에선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동물복지론자들은, 동물권 보장에 대한 논의가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도 실험동물의 생명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물실험이 아무런 감시도 없는 상황에서 이뤄집니다. 실험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윤리적인 실험을 하라는 겁니다. 흡연 마약 무기가 동물이 만든 것입니까. 왜 인간의 죄와 악을 동물로 해결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박교수가 정부와 시민단체, 학계가 공동으로 동물실험 규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한 얘기다.

우리에게는 동물복지라는 말이 너무도 낯설다. 연 400만마리로 추정되는 실험동물 통계도 정확히 검증되지 않은 수치고, 동물실험이 이뤄지는 연구실, 사용되는 동물의 종류, 죽은 동물의 폐기방법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동물실험에 관련된 정부 부처는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교육인적자원부 농림부 환경부 등. 이처럼 관련된 부처의 수는 많지만, 각각의 부처는 동물실험을 제대로 관리, 규제하는 법적 장치는 미흡하다.

농림부의 최염순 사무관은 “동물의 특성에 따라 각 부처별로 담당해왔지만 여러 모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국민 여론에 따라 동물보호법을 강화하고 각종 법률도 정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고도 빈번하다. 1998년엔 바이러스실험에 사용한 개 5600마리가 식용으로 유통된 일이 있었고, 1999년엔 백신의 재료로 사용된 쥐의 뇌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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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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