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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람 잡는 장기 기증 남이 한다면 말립니다”

어느 뇌사자 가족이 겪은 ‘분노의 7일’

  • 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생사람 잡는 장기 기증 남이 한다면 말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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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은 하는 수 없이 소생불능 상태인 김씨를 익산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 장기기증 절차를 주도할 주체가 불명확해진 것이다. 을지대병원은 “뇌사로 진행된다는 확신이 서야 환자를 보낼 수 있다”고 했다. 환자를 보내주지 않으니 원광대병원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코노스 관계자는 현장에 없고 서울에서 전화와 문서로만 의견을 듣고 있으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가족들은 애가 탔다. 병원측에 애원을 하다시피했다. “어차피 장기를 내주기로 했으니 빨리 원광대병원으로 보내달라”고. 주객이 전도돼 병원측이 가족에게 장기를 기증하라고 설득한 게 아니라 가족이 의료진을 붙잡고 “제발 장기를 기증하게 해달라”고 매달린 것이다.

미국에서는 한 해에 5000건 정도의 뇌사자 장기기증이 이뤄진다. 중앙에는 코노스가 본따온 ‘유노스(UNOS·United Network for Organ Sharing)’가 있고, 각 지역에는 뇌사자만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OPO(Organ Procurement Organization)가 있다. 이들은 뇌사로 진행될 환자가 발생하면 즉각 출동해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이동, 수술 등의 일정을 총괄해 책임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코노스는 현장에 가지 않고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하고 통보하는 중개기능만 담당한다. 그런데도 코노스의 허락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선 의료기관의 결정은 더딜 수밖에 없다.

결국 김씨 가족은 입원한 지 사흘 만인 4월20일 오전, 아무 연고가 없는 익산 원광대병원으로 김씨를 옮겼다. 이송하는 날 아침 가족들은 직접 퇴원수속까지 밟아야 했다. 죽어가는 가족 앞에서 슬픔을 억누르고 치료비와 입원비를 치렀다. 장기의 공정한 분배만 고려했지 환자와 가족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장기이식 관련 병원에서는 코디네이터들이 가족을 돕지만, HOPO가 아닌 을지대병원에서는 그런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나치게 엄격한 뇌사판정

원광대병원으로 옮겨진 김씨는 중환자실에서 뇌사판정을 기다렸다. 뇌사판정 과정은 법에 명시된 기준과 의학적 판단, 그리고 행정적 절차가 공존하는, 철저한 공적 영역이다.

우선 의료진이 뇌사라고 판정하기에 충분한 근거들을 조사한다. 호흡상태, 동공고정, 뇌간반사, 무호흡 등 뇌사증후가 확인된 후 그런 상태가 6시간 후에도 지속돼야 한다. 그후 뇌파촬영에 들어간다. 이때 뇌파가 나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6시간 뒤에 재검사를 실시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뇌파가 정지한 상태인 ‘평탄뇌파’가 30분 간 지속되면 일단 법에 명시된 의학적 뇌사로 판정난다. 그뒤 뇌사판정위원회 위원 10명 중 7명 이상의 확인을 거치면 공인된 뇌사상태가 된다. 이때 비로소 장기적출이 가능하다. 특히 심장과 허파 간 등 중요 장기는 뇌사자로 부터만 제공받을 수 있기에 뇌사자의 발굴과 관리가 중요시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뇌사판정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뇌사판정위원회도 그 한 예. 이 위원회는 해당 지역의 종교인, 사회복지사, 공무원 등으로 조직돼 있는데, 평탄뇌파자가 발생하면 이들은 곧장 병원으로 소집되어 주치의로부터 설명을 듣고 뇌사가 인정된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2년 반 동안 뇌사판정위는 뇌사인정을 거부한 사례가 단 한번도 없을 만큼 유명무실한 기구다.

위원회는 의사들의 책임을 덜어주고 뇌사인정에 신중을 기하는 안전장치로 작용하지만, 7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장기이식을 지연시키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7명을 빠른 시간 안에 소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관련법률 개정안은 최소 동의 인원수를 6명으로 줄였지만 의료계는 실효성이 없다고 반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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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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