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고 이우정 선생의 아름다운 삶

민주화와 결혼한 ‘작은 거인’

  • 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고 이우정 선생의 아름다운 삶

2/4
유신시절 기독교회관 대강당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민주인사들이 모였다. 이른바 ‘목요기도회’였다. 서슬이 퍼런 박정희 정권은 기도회 참여자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도청했다. 그러나 목요기도회는 억울한 이들과 그 가족들이 찾아드는 공간으로 변해갔다. 수사기관에 붙들려갔다가 풀려난 사람은 반드시 이곳에 찾아와 진실을 밝혔다. 그래서 이 모임은 당시의 인권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모임이 됐다. 이곳말고는 어디에도 그들의 아픔을 들어줄 곳이 없었다. 이우정 선생은 그곳에서도 ‘중심’이었다.

선생은 평화시장 뒷골목의 ‘삼일사’라는 피복공장에서 어린 여공들이 착취당하는 참상을 목격한 뒤 노동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목요기도회에 찾아오는 여공들의 구원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동료인 박형준 목사와 조화순 목사가 이미 빈민운동과 노동현장에 참여해 노동자들과 아픔을 나누고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의 대모로 불렸던 조화순 목사는 1968년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방직회사인 동일방직에 들어가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설립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동일방직, 원풍모방, YH상사 여성 노동자들은 노조 탄압이 이어지는 가운데 목요기도회에 나와서 진실을 증언하고 각계의 도움을 청했다. 노동운동이 곧 인권운동이며 인권운동이 곧 민주화운동인 시절이었다.

이우정 선생은 구속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등 늘 뒤처리를 도맡으며 동일방직, 원풍모방 대책위원회 등을 이끌었다. 교회여성연합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누구도 내켜하지 않는 인권위원장을 맡아 노동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인권’이라는 말조차 입 밖에 꺼내기 어려웠던 그 시절, 선생은 “이 일은 가족이 없는 나의 소명”이라 생각했다.

1978년 2월 동일방직에서는 사측에 매수된 직원들이 여성 노조원들에게 인분을 퍼붓는 만행을 저질렀다. 1979년 8월에는 YH상사 여공들이 피할 곳을 찾지 못해 신민당사로 몰려가 농성하다가 신민당 의원 및 취재기자들과 함께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다. 당시 21세의 김경숙 열사가 산화한 것도 그때다. 지금 돌이켜보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예고하는 사건이었지만, 이우정 선생은 늘 이때를 떠올리며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처절한 투쟁을 잊지말고 살아가자”고 강조했다.



선생은 학생 때나 교수 시절에나 수줍음을 잘탔다. 봉건적인 유교윤리 속에서 자라난 명문가 출신이어선지, 늘 땅만 보고 다닌다고 해서 ‘벙어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신대 여자 기숙사 사감을 하면서 여학생들과 ‘언니’ ‘동생’하며 허물없이 지내던 시절부터 여성문제에는 특별한 관심이 있었다. 1953년 김재준 목사가 예수교장로회에서 이단으로 파문당한 뒤 한국기독교장로회로 독립했는데, 이우정 선생은 그 산하에 한국신학대학이 출범하자 곧장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서기로 사회 참여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후 1960년대까지는 신학적으로 이론을 무장한 시기였다. 문익환, 문동환, 강원룡, 김동환 선생 등과 함께 평신도들을 가르치며 민중신학이론을 배워나갔다. 한국의 민주화 역사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기독장로회(이하 기장) 인사들의 사회참여가 바로 이때 잉태됐다.

기존의 보수 교단과 달리 기장은 역사 비판적 성격이 강했다. 즉 “성서의 글은 인간의 글이고, 시대의 글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면 시대를 이해해야 하고, 성서를 분석하고 학문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성격을 규명하지 못하고는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들의 뇌리를 압박했다. 이우정 선생은 제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여제자들을 이런 신학사상을 바탕으로 가르쳤다. 그가 길러낸 제자들은 이후 각종 사회운동을 이끌었고 여성운동에서도 밑바탕이 됐다.

2/4
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목록 닫기

고 이우정 선생의 아름다운 삶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