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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 조정래

“나는 친북주의자가 아니다”

소설 ‘태백산맥’·‘아리랑’·‘한강’으로 1000만부 돌파한 작가 조정래

  • 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hwang@donga.com

“나는 친북주의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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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개 심문 사항은 예를 들면 어떤 것이었나요. 120개 질문에 대해 일일이 증거자료를 갖추어 답변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태백산맥’에는 여·순반란 사건 때 미국 비행기가 뜨고 미국 함정이 여수 앞바다에 폭격을 한 내용이 나옵니다. 우익단체에서는 이런 허위 사실을 날조한 조정래는 빨갱이라고 고발한 거지요. ‘백두산 호랑이’라고 불리는 토벌대장 김종원이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좌익혐의자들을 모아놓고 한 명씩 끌어내 일본도로 목을 치는 내용도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거지요.

객관적 자료라는 것은 책·신문·보고서 등을 말합니다. 당시 사건을 겪은 사람들에게 취재했다고 해도 안 통합니다. 내가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거라고 해도 안됩니다. 예를 들면 미군 비행기가 폭격을 해 불발탄이 바로 우리집 마당에 떨어졌는데도 그것은 객관적 자료가 아니랍니다. 그리고 미군 LST가 여수 앞바다에서 폭격을 가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수두룩한데도 증인을 부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얼마전에 이를 입증하는 미국 쪽 사진자료가 공개됐습니다.

노근리 사건도 미국 기자가 써서 퓰리처상을 받고 기밀문서를 통해 입증이 되니까 믿어주는 거지요. 나같은 사람이 쓰면 거짓말이 되는 거예요. 검찰 조사를 받느라 일주일간 ‘한강’ 쓰기를 중단하고 120개 항목에 대한 자료를 모두 찾아서 100% 제출했어요. 답변서에 인용한 책만 17권에 이릅니다. 김종원이라는 토벌대장 이야기는 국회 속기록에도 나옵니다. 만군(滿軍) 출신으로 거창 양민학살 사건에도 관련됐고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받아 승승장구했습니다.”

조씨는 태백산맥 때문에 1994년 치안본부(경찰청) 남영동 분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이라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모욕적인 언사와 공포 분위기는 여전했다.



―1980년대 초까지 분단문학은 국가보안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썼지만 태백산맥은 실정법이 허용하는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우익단체 쪽에서는 심지어 친북(親北) 문학이라고 공격을 하는데요.

“감정적인 반공주의자들의 공격입니다. 소설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소설을 오독하는 것도 독자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은 명예훼손이고 무고입니다.

분단 상황에서 반공주의자들은 상대방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여 백전백승했습니다. 이들에게 경찰과 군대는 모두 옳고 성역이며 절대로 더럽혀서는 안 되는 조직이 됩니다. 공산주의자와 빨치산은 무조건 때려죽일 놈들이고 악마고 흡혈귀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빨치산도 아픔을 느끼고 사랑을 하는 인간이며 배움과 인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용납을 못하는 겁니다. 이런 감정적인 반공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분단의 문제를 이념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남쪽에서 기득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북쪽 정권을 유지하면서 기득권을 행사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조정래는 북쪽의 기득권 세력에게조차 비판의 대상입니다. 나는 1950년대의 상황에서 공산주의자와 빨치산의 입장을 말하는 것이지 전쟁 이후에 사회주의 독재정권을 꾸려온 김일성 체제를 옹호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감정적 반공주의자들이 태백산맥과 나를 친북으로 모는 것은 착각이고 오류입니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나는 친북주의자가 아닙니다.”

‘태백산맥’은 통일의 징검다리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국가보안법 개폐를 내걸었지만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반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당연히 폐지돼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의 뿌리를 캐고 들어가면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던 치안유지법이 나옵니다. 국가보안법말고도 얼마든지 간첩을 잡을 수 있고 처벌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朴正熙) 정권이 독재 강화의 방법으로 써먹은 법을 민주화시대에 그냥 놓아두고 있는 것은 말이 안되죠. 6·15 공동선언에서 남쪽의 대통령이 북쪽의 수뇌와 만나 포옹을 하고 민족 통일의 역사를 열어가기로 합의했지 않습니까. 국가보안법 개정도 못하고 이 정권이 끝난다면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스스로 부인한 것이 돼버립니다. 이런 논리의 모순은 국제적 망신입니다. 일거에 없애기 어렵다면 부분 개정이라도 해야 합니다.”

―태백산맥 때문에 노태우(盧泰愚) 정권 때 세무조사를 받았다지요.

“1983년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해 1986년에 제1부 3권을 단행본으로 냈습니다. 문예지에 연재할 때는 별 관심이 없다가 단행본으로 나오니까 운동권에서 폭발적으로 읽혔습니다. 그러자 수사기관들이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방송 프로그램에 나를 출연시킨 KBS 직원들이 한직으로 밀려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우익단체가 사법당국에 진정서를 냈지만 검찰이 1991년 문제 삼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화로 만드니까 우익단체들이 120페이지가 넘는 고발장을 만들어서 고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태백산맥은 작가에게 영광을 안겨줬지만 그에 못지않은 고통을 지금까지 주고 있습니다. 태백산맥을 출판한 한길사가 세무조사를 받고 추징을 당했습니다. 내가 탈세를 했더라면 파렴치범으로 몰렸겠지요.”

태백산맥을 영화화했던 임권택(林權澤) 감독이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임감독은 신동아 6월호 인터뷰에서 “원작 태백산맥은 좌편향적인 느낌이 드는 작품이지만 영화는 이데올로기 지향성에서 다르다”는 말을 했다. 물론 임감독이 문학작품에 대해 정밀한 분석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태백산맥에 국가보안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 중에는 이 책이 해방공간 그리고 전쟁의 무대에서 좌익혁명에 가담했던 사람들에 대한 긍정 또는 동정의 시각을 담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입니다. 가치 이전에 감정도 상대적이죠. 아까 말한 대로 공산주의자들은 무조건 악의 표상이고, 자본주의와 남쪽 대한민국의 군인과 경찰은 무조건 선의 상징으로 설정한 이분법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태백산맥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지요. 사실을 사실이라고 하거나 똥은 냄새가 난다고 해서도 안되는 거지요. 그것이 이분법 사회의 슬픔입니다.

빨치산들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진실은 무엇일까? 왜 그렇게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치며 한 시대를 살다갔을까? 그 수수께끼를 풀지 않고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잘잘못을 밝힐 수도 없고 잘잘못을 밝히지 않고서는 화해와 협력의 길로 갈 수도 없고, 통일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나는 거기에 징검다리를 놓고 싶은 문학적 욕구 때문에 태백산맥을 쓴 것입니다.”

―혹시 금강산에는 가봤습니까.

“안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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