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까다로움이 요리와 패션을 창조한다

  • 글·최영재 기자 (cyj@donga.com) 사진·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4-09-07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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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리는 모방과 창조를 거듭하는 작업이다. 중국 춘장을 사용하는 한국 자장면은 중국 본토에서는 볼 수 없다. 말하자면 한국화한 중국 음식이다. 된장자장면은 이 자장면을 한 단계 더 한국화한 것이다. 요리법은 간단한데, 자장면의 핵심 재료인 춘장을 조선된장으로 바꾸면 된다.
    까다로움이 요리와 패션을 창조한다
    한국사회에서는 까다롭고 튀는 사람을 유달리 싫어한다. 음식점에 가서도 ‘통일’을 좋아하지 독특하게 주문하면 금방 눈총을 받는다. 옷을 입더라도 유별나게 입으면 금방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이런 이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래 집단에서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예술가 사회는 다르다. 이곳에서는 까다로운 사람이 대접받는다. 실제로 앞서가는 예술가 중에는 괴팍한 사람이 많다. 패션디자이너 박항치씨. 그도 이 방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그의 식성은 유별나다. 육고기 중에서 한국사람이 즐기는 개고기와 돼지고기는 입에 대지 않는다. 양고기는 냄새도 맡지 않는다. 닭고기도 삼계탕은 쳐다보지 않지만,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치킨은 곧잘 먹는다. 오리고기는 외면하지만, 베이징덕(북경오리구이)은 먹는다. 돼지고기는 원래 안 먹지만, 고급 소시지와 햄은 즐긴다.

    이런 식성을 뜯어보면 일관성이 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생겨난 이 땅의 천한 음식, 곧 이것저것 되는 대로 넣고 끓이는 꿀꿀이죽 방식, 어울리지 않는 재료를 되는 대로 섞어버린 음식이 그에게 걸리면 십중팔구 경을 친다.

    본인 천성 탓도 있지만 이런 까다로움은 어릴 적부터 그의 어머니 이정순 여사(84)가 길러준 것이다. 전북 신태인 출신인 그의 어머니는 친정이 1930년대에 승용차를 굴릴 정도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이런 부잣집에서 자란 어머니는 바느질과 음식 솜씨가 최고였고 유난히 깔끔한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는 아들에게 학교에서 눈에 띌 정도로 좋은 옷만 입혔다고 한다. 해방 이후, 그렇게 물자가 귀하던 시절에도 어머니는 손수 옷감을 끊어다 솜씨 좋은 바느질로 아들에게 옷을 해 입혔다. 어머니 정성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의 감각도 빼어났다.



    어머니의 정성은 옷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도시락 반찬을 쇠고기 장조림, 굴비 등 당시로서는 가장 호사스런 음식으로 마련했다. 박항치씨는 어릴 때 몸에 밴 이런 식성 때문에 지금도 순두부 하나를 먹더라도 최고의 음식점을 찾는다. 그가 만약 평범한 직업을 택했더라면, 까다로운 입성과 먹성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가가 되었으니, 어머니가 길러준 까다로운 입성과 먹성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박항치씨는 이제껏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다. 어머니가 곁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니까, 지금도 아쉬울 것이 없단다. 그의 집에서 손님이 찾아왔을 때 대접하는 된장자장면은 어머니가 독창적으로 개발한 음식이다.

    이 음식의 유래는 이렇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그의 고향 전북 김제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없었다. 교육가였던 선친은 당시 문맹 퇴치가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뜻 있는 사람들을 모아 중학교 설립에 나섰다. 그의 선친은 여러 면을 돌면서 학교 설립 기금을 모았다.

    그렇게 돌다가 점심때가 되면 사람들을 몰고 집으로 들이닥쳐 밥상을 차리라는 것이었다. 전화가 없던 때니 미리 연락할 수도 없었다. 이때 개발한 음식이 된장자장이다. 이 된장자장면을 만들어내면 모두들 기가 막히게 맛있다며 몇 그릇을 비워내더라는 것이다.

    까다로움이 요리와 패션을 창조한다
    된장자장의 재료는 춘장 대신 된장, 녹말가루 대신 밀가루, 콩기름, 돼지고기나 쇠고기(국거리나 찌개용이면 좋다), 감자, 양파, 대파, 풋고추 등이다. 먼저 밀가루는 미리 물에 풀어서 죽처럼 만들어놓는다. 고기와 감자, 양파, 대파, 맵지 않은 풋고추를 모두 같은 크기로 썰어놓는다. 모든 재료를 깍두기 크기로 썰어도 되고, 3cm 길이로 채썰어도 좋다. 재료들을 너무 잘게 썰어 기름에 볶으면 부서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것이 좋다. 단 매운 풋고추만은 다져서 준비한다.

    이렇게 재료를 준비한 뒤, 밑이 오목한 튀김용 프라이팬에 고기 재료가 잠길 정도로 기름을 넉넉히 붓고 가열해서 끓인다. 기름이 끓으면 대파의 하얀 부분을 넣고 갈색이 될 때까지 익힌다. 이렇게 하면 파의 향긋한 향이 기름에 배서 느끼한 맛을 싫어하는 한국 사람 식성에 맞게 된다. 이 파기름에 고기를 넣고 익힌다. 고기가 익으면 된장을 넉넉히 넣고 볶다가 감자를 넣고 볶는다. 감자가 익으면 잘게 다진 매운 고추를 넣고, 볶다가 양파를 넣는다. 이렇게 볶다가 물을 조금 붓고, 다시 끓인다. 보글보글 끓으면 밀가루 개어놓은 것을 넣고 걸쭉하게 만든 뒤, 마지막에 파를 넣고 조금 끓이다가 불을 끈다. 이렇게 하면 된장자장이 완성된다. 이 된장자장을 준비한 국수나 밥에 비벼먹으면 된다.

    젊은 시절 박항치씨는 배우였다. 그는 극단 ‘자유’에서 한창 배우의 꿈을 키우다가 패션이라는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에게 가장 열심히 ‘패션디자이너’라는 꿈을 북돋운 사람은 디자이너 이병복씨와 연극배우 김금지씨다.

    이들의 열성은 빨간 스웨터와 청바지를 즐겨 입던 연극배우 지망생을 한국 최고의 남성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박항치씨는 1971년께부터 본격적인 디자이너로 나섰다. 그는 1973년 명동에서 디자이너 브랜드 옥동(玉東)을 열고, 30년 가까이 외길을 걷고 있다. 현재 옥동은 전국에 매장 9개와 직원 50여 명을 두고 있다.

    한국 고급패션의 1번지가 된 청담동도 사실 그가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1987년께 박항치씨가 제일 먼저 청담동에 정착하면서 이곳은 패션거리로 변했다. 이제 청담동이라는 지명은 브랜드를 능가하는 고급패션의 대명사가 되었다. 동네명이 고유브랜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청담동은 대한민국 요리 1번지이기도 하다. 가장 선진적인 레스토랑이 이곳에서 문을 열고, 한국 최고의 미식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 모든 도시들이 다 그렇다. 최고의 패션 거리 곁에는 최고의 요리가 따라붙는 법. 요리와 패션은 그렇게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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