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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를 만드는 사람들 (1)

세계 최대 TFT-LCD 개발한 삼성전자 석준형 전무

“어정쩡하게 만들 바엔 시작하지도 않는다”

  • 성기영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ky3203@donga.com

세계 최대 TFT-LCD 개발한 삼성전자 석준형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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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P도 TFT-LCD처럼 두 장의 얇은 유리기판을 붙여서 만드는 것은 같지만, 유리판 사이에 액정이 아니라 혼합가스를 주입하고 이온가스를 방전시켜 화면을 구성하기 때문에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을 만드는 데는 LCD보다 유리하다. PDP TV는 동급의 브라운관 TV보다 두께는 10분의1, 무게는 3분의1 수준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초대형 TV로는 안성맞춤이다. 삼성전자가 PDP를 기존의 TV를 대체할 전략사업으로 내세운 것도 이처럼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PDP는 삼성 계열사 중 삼성전자가 아닌 삼성SDI에서 주로 생산한다. 삼성이 영상 분야의 차세대 주력사업을 PDP로 하느냐 TFT-LCD로 하느냐를 놓고 계열사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당연하다.

화질 면에서는 LCD TV가 PDP와는 경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우위를 점한다. 지난해 개발에 성공한 40인치 LCD도 현재 시판중인 42인치 VGA급 PDP 제품에 비하면 화소의 수가 두 배나 더 많다. 그러나 LCD TV가 가격이나 시장성 면에서는 PDP에 한참 뒤진다는 것을 석전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부품과 회로가 어지럽게 얽혀있는 벽걸이형 PDP TV와는 달리 LCD TV는 뒷면이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어 두께를 줄이는 데 훨씬 유리하다. 또한 LCD는 PDP와 달리 2∼3년 단위로 백라이트만 교체하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디스플레이 화면의 크기만 PDP만큼 키울 수 있다면 PDP를 한꺼번에 대체해버릴 수도 있는 ‘신무기’로 꼽힌다.

그러나 LCD TV의 수요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올해 LCD TV 생산규모가 180만대 수준이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LCD 모니터가 2900만대인 점을 감안하면 LCD를 TV에 채용하는 작업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형편이다.



“솔직히 올해는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40인치 LCD를 삼성이 만들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만 집중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내년 이후에는 한번 승부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세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어볼 테니 두고 보십시오.”

석준형 전무의 ‘최고’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오는 9월을 목표로 또 하나의 ‘세계 최고’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세계 최초로 TFT-LCD의 5세대 라인을 가동시키기 위해 막바지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5세대 라인 세계정복 도전

석전무가 추진하고 있는 5세대 라인은 ‘마더 글래스(mother glass)’라고 불리는 LCD 제조용 기판 유리의 크기를 1100×1250mm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의 경우 미세회로 기술을 향상해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LCD는 유리 패널을 대형화함으로써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

5세대 라인이 가동되기 시작하면 하나의 유리기판에서 42인치짜리 유리판 2개를 만들어낼 수 있다. 79×920mm 크기의 기존 4세대 라인에서 40인치 1개만을 만들어낼 수 없는 데 비하면 비용을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는 획기적 기술이다. 비용을 절반으로 줄이면 이익도 두 배로 늘어나게 마련. 또한 외국의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들이 삼성전자의 5세대 제품을 표준으로 선택한다면 그 시너지 효과 또한 엄청날 전망이다.

따라서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세계적 디스플레이업체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마더 글래스’를 국제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다. 석전무가 이끄는 삼성전자 LCD개발팀은 이 경쟁에서도 이미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5세대 라인 가동을 준비중인 천안공장과 기흥공장을 발이 부르트도록 오가는 석준형 전무에게 또 하나의 ‘최고’ 작위(爵位)가 주어질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 기록 경신을 위해 칼을 갈고 있는 석전무는 정작 ‘최고’라는 찬사에 부담스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의 말 어디에서도 엘리트의식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초우량기업 IBM에서만 20년 가까이 연구해 온 엘리트 엔지니어는 더 이상 자기 앞에서 ‘세계 최고’라는 말을 꺼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세계 최고요? 그거 골치 아파요. 다음엔 또 뭘 만들어야 하나 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고…. 내 본분은 뭐니뭐니해도 15인치와 17인치 LCD생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캐시 카우(cash cow), 다시 말해 돈 버는 겁니다. 당장은 회사 먹여살리고 나라 먹여살리는 게 중요한 것 아녜요?”

신동아 200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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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영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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