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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서해교전은 김정일의 ‘6·15 격침작전’이었다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 hoon@donga.com

6·29 서해교전은 김정일의 ‘6·15 격침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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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 김윤심은 서해함대사령관 자리에서 중장으로 진급하고, 다섯 달 후인 1997년 4월14일 같은 자리에서 상장 계급을 달았다. 김윤심이 다섯 달 만에 중장에서 상장으로 진급한 것은 당시의 해군사령관 김일철(金鎰喆·69) 대장의 승진과 관련 있다.

김윤심이 상장이 되던 날 김일철은 차수로 진급하며 인민무력부 1부부장이 되었다. 그리고 두 달 후인 1997년 6월 김윤심 상장이 공석이 된 해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 김윤심의 전임자인 김일철은 1998년 9월 이후 지금까지 인민무력상을 맡고 있으며 2000년 9월25일 남북국방장관 회담을 위해 제주를 방문한 바 있다. 북한 해군이 대패한 1999년 6월의 연평해전은 김일철 인민무력상-김윤심 해군사령관 시절에 일어난 것이다.

김윤심 상장 후임으로 누가 서해함대사령관이 되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부 정보 관계자들은 김윤심이 해군사령관과 서해함대사령관을 겸임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계급의 고하(高下)보다 중요한 것이 최고 실력자와의 관계다. 북한에서는 특히 이러한 현상이 심각한데, 김윤심과 김정일 관계는 매우 좋은 것으로 보인다.

김윤심은 상장 계급을 달고 해군사령관을 하던 1998년 12월, 김정일을 수행해 군 공훈합창단과 군악단의 합동공연 관람하였고, 1999년 1월에도 김정일을 수행해 군 공훈합창단의 신년 경축공연을 관람하였다. 그리고 연평해전 발생 3개월 후인 1999년 9월, 김정일을 수행해 군 공훈합창단 경축공연을 관람함으로써 그의 해임을 예상했던 우리 정보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정보 중에서 정보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6·29교전이 일어나기 두 달 전인 2002년 5월1일 김정일이 해군사령부를 방문한 사실이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이같은 사실을 상세히 보도하였다. 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은 작전지휘실에 들어가 해군사령관으로부터 정황보고를 받고, 해군력을 강화 발전시키는 데 지침이 될 수 있는 강령적인 과업들을 제시했다고 한다. 또 방송은 김정일이 “전사들에 대한 사상 교양에 언제나 선차적인 관심을 돌려온 결과 우리 군대가 필승불패 사상의 강군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정보 관계자들은 김정일이 해군사령부를 방문함으로써, 북한 해군은 6·29 도발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 북한정보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연평해전에서 패전했다고 책임을 물어 해군지휘부를 교체했으면 북한 군부에서도 동요가 일어났을 것이다. 김정일은 말끝마다 ‘영용(英勇)한 조선인민군’을 들먹이며 ‘선군(先軍) 정치’를 강조해왔으니, 군부를 껴안는 아량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차에 최고사령관 동지가 몸소 해군사령부를 방문했으니, 해군은 충성심을 갖고 보복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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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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