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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나는 히딩크에게 야망을 배웠다”

2002한일월드컵 축구국가대표팀 박항서 코치

  • 이계홍 < 작가·용인대 겸임교수 >

“나는 히딩크에게 야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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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코치는 히딩크를 ‘히딩크 감독님’이나 ‘감독님’으로 호칭했다. 그에 대한 존경이 신념이 된 듯, 이름만을 부르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이미 떠난 사람,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편하게 호칭할 수 없느냐”고 농담을 던져보았지만 “그럴 수 있습니까”라며 눈을 부릅뜬다.

“감독님이 처음 부임했을 때의 일입니다. 전체 식사 자리에서 ‘어떻게 호칭을 하는 게 좋겠습니까’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미스터’라고 부르라고 하시더군요. 외국에서는 그게 경칭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뉘앙스가 다르잖아요. 지시는 지시니까 한동안 그렇게도 불렀는데, 영 어색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말로 감독님이라고 부르겠다’고 했죠. ‘님’자는 존경심을 담는 존칭어라는 설명도 했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계속 우리말로 불렀습니다.”

- 히딩크 감독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한데, 그만큼 존경할 만한 분입니까. 요즘 한마디로 ‘히딩크 난리판’인데. 이러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자’가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비아냥거리기 위한 수사법이 아니다. 신문과 방송에 하루에 몇 번이나 히딩크라는 이름이 나오는지 세어보면, 아마 건국 이래 고유명사로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물론 지도자로서 장단점이 있지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허점이 있게 마련이고요. 그러나 저는 축구지도자라는 면에서 히딩크 감독님을 ‘완벽하다’고 평가합니다. 그저 관성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답습하는 식으로 안이하게 일하곤 했던 우리들에게 좋은 교훈이 됐고요. 그분에게서 좋은 지도자 교육을 받았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 최악의 조건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수완, 목표를 달성해가는 야망과 집념 같은 것은 정말 본받을 만했어요.”



- 히딩크 감독의 관리 능력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선수단은 선수 23명, 스태프 25명 등 50명에 가깝습니다. 선수에 비해 스태프가 더 많죠. 스태프에는 한국인 코치 3명과 외국인 코치 1명, 체력코치 1명, 국내외 의료진 5명, 언론담당 외국인과 내국인 1명, 행정 2명, 장비 2명, 외국인 비디오분석관 등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다국적군이었지요. 이들을 지휘 감독하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지요.”

히딩크는 선수들에게 늘 자율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책임과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특히 규칙을 어기면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집으로 돌려보낸다. 스태프들에게도 이러한 원칙은 똑같이 적용된다. 자질구레한 간섭은 없는 대신 각자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한다.

정신적 실수 용납 못해

- 대표팀에서 코치가 맡는 역할은 어떤 겁니까.

“선수단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해 코치는 선수보다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같이 뛰고 같이 넘어져야 하지요. 물론 인간이니 만큼 앞에 나서고도 싶고, 대표팀에서 내보내고 싶은 선수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친구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감독님께 보고한 적도 있지만 들어주지는 않았지요.

그러고 나서 잊어버리려고 애썼는데, 아무래도 제가 문제삼은 선수를 더 많이 관찰하게 되더군요. 그런데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장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잘못 봤구나’ 하고 반성도 했습니다.”

선수를 보는 눈이야말로 박코치가 히딩크 감독에게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부분인 듯했다.

“감독님은 늘 세 가지 실수에 대해 말씀하시곤 합니다. 기술적 실수, 전술적 실수, 정신적 실수. 기술적 실수는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패스를 잘못해 역습 골을 허용했다든지, 볼 트래핑 기술을 시도하다 상대 수비진에게 걸리고 말았다든지 하는 것은 기분은 나쁘지만 문제삼지 않습니다. 또 전술적 실수도 대범하게 넘어갑니다. 전술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실수를 하는 선수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습니다. 몸싸움에서 밀리거나, 한 골 넣었다고 느슨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요. 센터링이 날아오는데도 집중하지 못해 포지션에서 밀리는 것은 절대 봐주지 않습니다. 축구는 도전인데, 그 마인드를 잃어버렸다면 선수로서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주저앉는 선수가 감독님이 가장 엉터리라고 평가하는 선수였습니다.”

-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처음 했다는 평가, 즉 ‘한국 선수들은 기술은 선진축구에 손색이 없는데 체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뚝심의 한국축구’를 믿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이었는데….

“저도 사실은 의아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우리 선수들 중 오른발 왼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선수가 많다며 놀라더군요. 유럽에도 그런 선수는 별로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전반전만 뛰고 나면 선수들이 헉헉댄다는 겁니다. 우리는 마늘을 먹은 배달민족이라 뚝심을 자랑으로 알았는데 전혀 아니라는 거였죠. 체격 조건이야 도리가 없다 해도 체력마저 밀리면 안된다는 게 히딩크 감독님의 지론이었어요. 문제는 힘이라는 거였습니다. 하드 트레이닝, 웨이트 트레이닝을 집중적으로 채택한 것도 그런 판단에서 비롯된 겁니다.

지적 사항이 또 있어요. 한국에 수비수 자원이 많은 줄 알았는데 너무나 빈약하다는 거였습니다. 대신 공격수는 많다는 겁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나이 많은 선수들이 대거 수비수로 기용됐던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 선수들이 덤비고 흥분하길 잘한다는 지적도 했어요.”

팀워크에 관해서도 얘기가 나왔다. 한국선수들은 개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의외로 의연한 반면 팀을 건드리면 선수들이 발칵 뒤집어지더라는 것. 물론 히딩크의 발견이다.

“우리 선수들이 프라이버시에 다소 둔감해 보이는 것은 ‘자신을 낮춘다’는 동양적 미덕과 유교적 풍습의 영향이라고 설명해드렸죠. 그 위에서 선후배 관계라든지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풍토가 조성된 것이라고도 말씀드렸고요.”

그러나 히딩크의 진단은 냉정했다. 그같은 미덕은 조직에서는 효용가치가 없다는 것. 팀을 욕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개인을 욕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유럽 선수들의 자세가 오히려 발전에는 긍정적이라는 게 히딩크의 생각이었다고 박코치는 말한다. 형식적 위계질서라는 것이 조직의 건강성에 얼마나 해로운가에 대한 히딩크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경기장에서 개인적 연고관계 때문에 후배가 선배에게 좋은 볼만 배급해주기 위해 노력한다면 팀워크가 흐트러질 수 밖에 없다. 볼을 잘못 주면 선배에게 혼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면 선수는 경기장에서 위축되거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상황은 절대로 묵과할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연습중에 숙소에서 자는 선배가 있으면 아무리 후배라도 가서 단호히 ‘Wake up!’하고 소리를 지르라는 거예요. 승리를 목표로 삼은 이상 선배가 늦잠을 자도 넘어간다는 식의 적당주의는 용서할 수 없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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