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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 있는 문화 이야기 6

에라스무스, 평화를 사랑한 최초의 세계시민

  • 박홍규 < 영남대 법대 교수 > sky3203@donga.com

에라스무스, 평화를 사랑한 최초의 세계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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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4세기, 마침내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나, 동시에 나라는 동서로 나뉜다. 동서 구분에 의해 기독교는 가톨릭과 그리스정교로 갈리고, 두 문명은 20세기의 냉전으로까지 이어진다. 동로마는 15세기 터키에 무릎을 꿇는다. 서로마는 북방민족의 침략에 의해 5세기 무렵 망한다. 그러나 북방민족은 로마식 통치를 이어갔으며 특히 교회를 통해 이념적 지배를 계속한다. 예컨대 지금 가톨릭 신부들이 입는 미사복은 로마 관리들이 입던 옷이다. 9세기 들어 서유럽은 오늘날 프랑스와 독일의 모태가 된 두 지역으로 분할된다. 그러나 독일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건 16세기에 이르러서다. 이에 따라 최근 독일에서는 독일사를 15세기 이후부터로 잡는다. 뒤이어 나타난 16세기의 영웅이 바로 루터다.

16세기경 독일 인구는 약 1000만명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늘 “주여, 저희들을 페스트와 굶주림, 전쟁으로부터 구원해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전쟁은 기아를 낳고, 기아로 약해진 사람들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그런 위기 속에서 지배자였던 교회와 세속 권력은 반목을 거듭하였으며 마침내 독일이라는 민족이념이 발생한다.

민족이념이 발생한 것은 독일뿐만이 아니었다. 유럽 전역에서 나타났다. 독일의 경우에는 휴머니스트나 정치가가 아닌 종교개혁가 루터에 의해 민족이념이 확립된다. 이에 제동을 건 사람이 에라스무스(1469~1536)다.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은 13세기부터 나타났다. 루터도 오직 성서와 신앙을 통한 신의 은총을 주장하며 면죄부 판매, 영혼의 부정한 거래, 성직자들의 권력 남용,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교회의 독점권 등을 부정한다. 다른 종교개혁가들과 달리 루터는 권력의 지지를 받아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고 그를 통해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 이바지했다.

루터는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래서 이미 당시 사람들로부터 ‘독일의 헤라클레스’로 불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독일은 하나의 국가가 아닌 분산된 지방권력을 뜻하며, 따라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민족국가의 형성을 촉진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형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빚었다.



우리는 세계사 수업을 통해 루터와 에라스무스 모두 그저 ‘종교개혁가’라 배우나, 사실 두 사람의 사상은 적대적이다. 에라스무스에 대한 또 한가지 ‘암기사항’은 그가 ‘우신 예찬’을 쓴 휴머니스트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 책은 ‘바보’라는 이름의 여자가 뻐기는 이야기다. 바보 여자의 바보다운 제 자랑 수다인 것이다. 책의 본래 이름도 ‘바보 자찬’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바보를 왜 ‘우신(愚神)’이라는 이상한 말로 번역했는지, 또 ‘자찬’을 왜 ‘예찬’이라고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책이 세계사 시간에까지 등장하는 것일까?

“바보의 말을 들으라”

이 책은 40세의 에라스무스가 이탈리아를 돌아보고 와 지은 것이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본 것은 르네상스의 찬란함이 아니라 낭비와 사치에 젖은 온갖 타락이었다. 그 실망감을 장난스럽게 표현한 소품이 ‘바보 자찬’이다.

에라스무스는 학문적으로 심각한 내용의 두터운 저서도 많이 남겼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잊혀져 버렸으며 남은 것은 이 작고 무례한 풍자집, 치기 어린 방종과 경망스러움이 가득한, 순간의 바람기로 생긴 사생아 같은, 바보를 예찬한 책 한 권뿐이다. 이는 볼테르가 180여 권의 저서를 남겼지만 남은 것은 역시 짧은 풍자소설 ‘캉디드’뿐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바보 자찬’에 무슨 특별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바보니까 바보 같은 소리만하는 게 당연한 일이겠다. 그러나 또한 바보이기에 정상인이라면 할 수 없는 소리도 곧잘 한다. “나 없이는 세상에 어떤 집단도, 어떤 사회도 편안하게 유지될 수 없다. 내가 없이는 민중이 군주를, 주인이 하녀를, 선생이 학생을, 아내가 남편을 … 즉 인간이 인간을 견뎌내지 못한다. 상인은 그저 돈을 과대평가하는 일을 하고, 작가는 우쭐한 명예 때문에 글을 쓰고, 군인은 과대망상 때문에 싸운다. 따라서 나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바보는 자신을 예찬한다. “삶 속에서 우둔함에 사로잡혀 있는 자만이 진실로 인간이라 불릴 수 있다.”

이 책은 에라스무스가 언제나 이중적이었던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대담하면서도 종종 불안해하고, 대단한 추진력으로 밀고 나가다가 마지막 결단에서는 우유부단해지며, 정신은 투쟁적이나 가슴은 평화를 추구하고, 저술가로서 자만하나 인간으로서는 비굴해보일 만큼 겸손하고, 이상주의자이면서도 회의적이다.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음이나, 역시 중요한 것은 언제나 보편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또한 이 책은 가톨릭에 대한 설명에서 별안간 비수를 던져버림으로써 종교개혁의 불씨가 된다. ‘역사적 저술’로 탈바꿈한 것이다. 에라스무스 자신은 가톨릭에 대한 반란을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평화와 합일의 종교를 꿈꿀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바보를 통해 던진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꿨다. 그것이 ‘바보 자찬’이 세계사 시간에 등장하는 이유다.

세계사 교과서는 그를 휴머니스트로 소개한다. 휴머니스트란 무엇인가? 번역하면 인간(중심)주의자 정도인데, 그렇다면 인간주의란 또 무엇인가? 흔히 중세의 신 중심주의에 반대되는 것이라 하는데 인간 세상에 인간주의란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거기에 무슨 심오한 사상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공정성, 인류의 가장 높은 이상

에라스무스는 독창적인 사상가나 혁명가가 아니다. 면죄부를 비판하고 ‘종교개혁’을 달성한 루터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로 유명한 ‘팡세’의 파스칼, 또는 ‘자연상태’니 ‘사회계약’이니 하는 개념으로 유명한 ‘에밀’의 루소가 여러 이미지를 갖고 있는 점에 비해, 에라스무스는 그다지 특징적인 면을 갖고 있지 못한 사상가다. 한마디로 말해 그에게는 혁명의 열정이나 사상적 심오함이 없었다.

홀바인이 여섯 번, 뒤러가 두 번이나 그린 그의 초상화는 그저 단호한 지식인의 느낌만을 준다. 그림에서 그는 언제나 글을 쓰고 있다. 연약한 우울증 환자였던 그는 그러나 일을 할 때만은 거인이었다. 하루 무려 20시간씩 일을 했다. 이를 통해 11권에 이르는 대형 저작과 성서 및 신학, 문법, 수사학, 교육론, 역설과 웃음의 문학작품, 문명비판 등 지극히 넓은 분야를 섭렵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요사이 우리가 인문학이라 부르는 전분야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이다. 휴머니스트를 인문주의자, 인문학자라고도 하는데 에라스무스는 그야말로 ‘휴머니스트의 왕자’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그의 관심 분야가 넓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가장 혐오한 적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투쟁 및 전쟁을 일삼는 것이었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본질적으로 헤게모니와 권력을 잡고자 하고, 그 과정에서 파벌 다툼을 벌인다. 휴머니스트는 어떤 권력, 파벌, 투쟁에도 가담해서는 안된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행동함에 있어 편파적인 것이 권력투쟁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휴머니스트는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고와 행동의 자유를 지킨다. 인류의 가장 높은 이상인 공정성은 자유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휴머니즘이란 어디에도 얽매임 없이 사고하고 이해하며 타협하고 결합하는 활동방식을 뜻한다. 편협함 속에 사는 옹졸한 자나 증오 속에 적의를 품고 사는 자는 휴머니스트일 수가 없다.

또한 휴머니스트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며 그 세상을 사랑한다. 당연히 이데올로기에 매일 이유가 없다. 세상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휴머니스트는 그 다양성을 무시하고 억지로 공통점을 찾아내 모든 가치를 획일화하고 통일시키려는 태도에 맞서 싸운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휴머니스트는 때로 반민중적일 수 있다. 휴머니스트다운 낙관주의는 보통 지배하는 집단의 것이지 지배받는 민중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문교육을 받은 자들에 의한 과두정치나 귀족정치를 선호하기도 한다. 이는 결국 ‘허위의 정신(精神)제국’일 뿐이다.

에라스무스와 마키아벨리는 모두 1469년생이니 500년도 더 전의 사람들이다. 알베르티보다 65년, 레오나르도보다는 17년 늦게 태어났다. 알베르티가 죽었을 무렵 태어났고 레오나르도와는 한 세대 차이가 난다. 알베르티, 레오나르도와 함께 마키아벨리는 모두 이탈리아 태생이나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 태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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