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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는 정치적 거래 대상 아니다

한국식 인사청문회, 이대로 좋은가

  • 글: 이종수

총리는 정치적 거래 대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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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0년 6월23일의 일이다. 당시 임명동의안이 제출되어 있던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특별위원회도 이 법에 의한 인사청문회로 본다고 부칙에 명기하며 서둘러 도입된 법률이다. 이한동 서리 인준안은 찬성 139, 반대 30, 기권 및 무효 3표로 통과되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것도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성격을 띠고 있다. 부정과 부패 혹은 국정관리능력에 대한 검증은 내용적인 구성요소일 뿐, 청문회 제도의 도입 모멘텀은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에 있다. 그후 인사청문회법은 2002년 3월7일 개정되어, 이한동 총리 후임으로 지명된 장상(張裳) 이화여대 총장과 장대환(張大煥) 매일경제신문 사장을 청문의 대상으로 맞게 되었다.

장상 서리에 대한 인준안은 7월31일, 장대환 서리 임명안은 8월28일 각각 부결되고 말았다. 장상 서리는 허위 학력 표기와 재산증식과정에서의 의혹, 그리고 위장전입 혐의를 떨치지 못했고, 장대환 서리는 자식의 위장전입과 증여세 탈루 의혹을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또한 ‘3弘부패’로 일컬어지는 대통령 일가의 비리와 권력층의 부패에 일반 유권자들이 분노했고, 전통적인 DJ 지지자들마저 팔짱을 끼고 있는 상태였다. 그 좌절과 분노만큼 공직자의 청렴성에 대한 기대는 높아져 있었던 것이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장대환 서리까지 모두 37번에 걸친 총리인준 동의나 승인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경우는 모두 8차례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만 5차례나 있었는데 당시는 정치적으로 혼란기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총리인준이 잇따라 부결된 것은 1952년 10월 이윤영(李允榮), 같은해 11월 이갑성(李甲成)씨 이후 50년 만의 일이었다.

최근 두 번의 청문회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부정과 부패를 총리가 뒤집어쓰고 있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사실 총리라는 직위는 그만큼 혹독한 비판과 청문의 대상이 되기에는 억울한 자리다. 짧은 재직기간이나, 대통령제에서 얼굴마담 역할에 불과한 권한을 생각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최근까지도 총리는 기껏 ‘대독총리’ ‘방탄총리’ ‘의전총리’에 불과했다. 헌법과 정부조직법에 보장된 총리의 권한은 형식적인 요소가 적지 않고 사실상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에 국한되어 있다. 대통령제에서 내각책임제적 요소를 접목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총리이다 보니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가문의 영광’을 위한 고난

총리서리가 혹독한 부패와 부정의 의혹을 덮어쓰고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있다. 총리 못지않은 힘을 지닌 검찰총장, 경찰총장, 국가정보원장 같은 권력기관의 장에 대한 비판과 검증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같은 선출직 고위공직자에 대한 검증의 수준에 견주어 생각할 때도 그렇다. 어떤 시민은 청문회를 보면서, 개인의 명예 혹은 안동수 전 법무장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모를까 왜 저런 꼴을 당하느냐며 혀를 찼다.



장상씨와 장대환씨의 인준안이 부결된 이후 말들이 많았다. 일차적으로 지적된 부결의 이유는 두 총리지명자의 도덕성 시비. 위장전입, 재산증식, 불법대출, 자녀의 외국국적 취득 등이었다. 두 지명자의 대응태도도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어떤 이들은, 장상씨가 솔직히 과오를 시인하고 대범하게 양해를 구했으면 통과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장대환 서리 다음으로 청문회에 섰더라면 충분히 인준을 받았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여성계와 이화인들의 아쉬움은 극에 달했다. 이와 반대로, 그녀의 모습에 인간미가 없고 관료적이어서 거부감이 든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장대환씨의 경우는 장상씨보다 부드럽고 겸손하며 신사적인 인상을 주었다. 앞선 장상씨의 청문회에서 얻은 교훈에서 비롯된 전략일 수도 있다. 시청자들이 ‘저렇게 (장대환씨를) 추궁하는 의원들은 뭐가 더 나을 게 있어 저런 말을 내뱉을까’하고 느낄 정도의 인신공격성 추궁에도 그는 직접적인 반격을 삼갔다. 대신 “저는 이 나라의 평균적 정의의 수준은 된다”고 항변했다. 표현은 부드러웠지만, ‘국회의원 당신들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건 없는 사람들 아니냐’는 힐난같이 들렸다.

장대환씨의 경우는 장상씨의 경우보다 ‘돈의 규모’가 훨씬 컸기 때문에 장상씨가 부결된 마당에 통과시켜주기가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여성단체들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individual) 행위와 전략의 틀로 최근의 인준부결 사태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보다는 구조적(structural) 접근이 훨씬 용이하고 정확하게 사태의 본질을 설명해준다. 후보자의 도덕성과 대응태도가 개인적 행위의 차원이라면, 대선과 병풍(兵風) 그리고 정권말기는 인준부결사태를 설명하는 구조적 차원의 개념들이다. 언제나 개인적 행위의 차원과 구조적 차원이 결합되어 사회현상을 출현시키는 것이지만, 구조적 차원의 요소들이 인준안 부결사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부패와 부정의혹에 대한 민초들의 분노는 이러한 구조적 요인의 바탕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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