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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만 잘 먹어도 잔병 안걸린다

생태공동체운동가 황대권씨의 ‘녹색 건강법’

  • 글: 박윤희 자유기고가 gogh1028@hanmail.net

야생초만 잘 먹어도 잔병 안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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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만  잘  먹어도 잔병 안걸린다

서울 여의도 생태공원에서 야생초를 둘러보는 황대권씨

도인술과 명상법도 책을 통해 그 방법을 터득했다. 도인술은 단전호흡을 병행한 간단한 체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손으로 눈·코·입·귀를 차례로 비벼주고 이어 팔과 다리 비비기, 몸통 돌리기 등을 15분 가량 한다. 도인술은 기(氣) 순환 및 혈액 순환에 좋다고 하는데 특정 동작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체질에 맞게 자기 몸이 좋아하는 동작을 재창조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는 감옥에서 매일 30분∼1시간 가량의 명상도 빼놓지 않고 실행했다. 이때 ‘몸관찰’과 ‘마음관찰’을 통해 자신도 하나의 우주라는 자각이 서서히 싹텄다고 한다.

“사람의 몸은 정신과 물질의 통합체라고 생각해요. 몸관찰은 가만히 제 몸 내부를 세포 하나하나까지 상상해보는 거죠. 그러면 하나의 세포부터 시작해서 몸 전체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축소판이란 느낌이 들어요. 몸이 우주의 축소판이자 내가 곧 우주라는 말이죠. 그런 자각이 일면 나와 내 앞에 있는 야생초, 쥐, 거미 등의 생명체도 똑같은 몸이고, 그 몸도 우주의 축소판이고 더 확대하면 우주가 됩니다. 결국 나와 다른 생명체는 우주적 근원에 연결돼 있는 동질의 생명입니다.”

그는 이런 체험을 통해 단순히 자신의 몸만 치유한 게 아니라 야생초와 실천적 교감을 이뤄내고 서서히 ‘생태주의자’로 변모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비자연적이고 반인간적인 감옥이 그에겐 ‘생태학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과거 ‘나는 어떻게 조작간첩이 되었나’라고 항변하던 그가 이제는 ‘생태공동체연구모임(www.commune.or.kr)’의 대표로 활동하면서 ‘나는 어떻게 생태주의자가 되었나’라는 주제로 국내외 강연을 다니게 된 것도 모두 이른바 ‘법무부 생태학교 졸업장’ 덕이다.



그렇다고 그가 풀 먹고 명상하면서 마치 도인처럼 생태주의자로 거듭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업료를 처절하게 치렀다.

처음 감옥에 갇히고 그후로 5년 동안 그에겐 풀 한 포기 살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 억울한 누명을 벗고 나갈 수 있을까?’가 최대 고민거리였다. 그는 1989∼90년이 가장 힘든 고비였다고 회고한다.

“아내와는 미국 유학중 만나 결혼했는데 제가 ‘간첩’으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아내도 취직이 안돼 생계가 막연한 상태였어요. 말로는 연좌제가 없지만 국가보안법에 걸린 무기수 가족들은 사회생활을 도저히 해나갈 수 없거든요. 배우자가 무기수면 합의하지 않아도 이혼이 됩니다. 징역살이도 힘겨운데 이혼당하고 가정마저 파괴되니까 몸과 정신이 급속도로 피폐해지기 시작했어요.”

수포로 돌아간 ‘결전의 날’

국가보안법이란 거대한 포식자가 아내와 자식으로 표현되는 그의 마지막 희망까지 삼켜버렸다. 이때 그가 겪은 고독과 절망감의 크기를 비슷하게나마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는 무조건 감옥에서 뛰쳐나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고 토로한다.

“어떻게 하면 법정에 다시 서서 ‘나는 어떻게 간첩으로 조작되었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까 궁리했어요. 그러려면 다시 법정에 설 수밖에 없는 죄를 저질러야 하잖아요. 어차피 무기징역을 받은 상태니까 징역이 추가된다고 해봤자 ‘바다에 물 한 방울 추가하는 것’이라 생각했죠.”

1991년 어느 봄날, 그는 1주일에 한 번 있는 안동교도소 내 종교집회를 ‘결전의 날’로 정했다. 종교집회에는 재소자뿐만 아니라 외부인사들도 참석해 교도소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간이다.

“그때는 서화반에 출역을 나갔는데 출역 때 모은 종이로 밤새워 ‘삐라’를 만들었어요. 1주일 내내 ‘국가보안법 철폐하라’는 내용의 삐라를 100장 정도 만들었으니까요. 혼자 하면 죄형이 가벼울까봐 일반 재소자 2명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마침내 다가온 결전의 날! 그는 종교집회가 열리는 단상을 점거한 후,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전향제를 폐지하라”고 절규했다. 그리고 한지에 붓글씨로 그의 주장을 적은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감옥 안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극단적 행위였으니만큼 채 3분도 지나지 않아 그의 시위는 강경진압으로 마무리됐고 가혹한 형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도소측에서는 조작 간첩을 법정에 세워봤자 자기네들만 귀찮다고 생각했겠죠. 저를 기소하지 않고 징역살이의 최대 처벌인 ‘징벌방’에 두 달 동안 가두었어요. 굵은 포승으로 두 손을 꽁꽁 묶고 머리 위엔 24시간 감시카메라를 작동시켰죠. 포승으로 엮은 뭉치가 등 뒤에 있어서 제대로 누울 수도 없고 손을 움직일 수조차 없어 소위 말하는 ‘개밥’을 먹었어요.”

그는 징벌방에 있는 두 달 동안 밥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 신에게 기도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 ‘왜 나를 이렇게 내치십니까?’하고 원망해도 신은 꿈속에서조차 해답을 주지 않았다. 계속된 침묵뿐이었다. 결국 그는 ‘침묵하는 하느님’을 버렸고, 감옥에서 나가겠다는 ‘욕망’을 버렸다.

“이때 유일신만 존재한다는 관념을 지우고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신을 믿게 됐죠. 풀이나 하찮은 미물에서 신성을 찾게 됐지요.”

그는 ‘흐름’을 강조하는 도덕경·장자 등 도가 경전에 심취하면서 도가적 사유체계를 세워나갔다. ‘나’를 없애고 ‘교만’을 다스리면서 야생초를 만나 ‘생명의 교감’을 시작했다.

‘아무리 화사한 꽃을 피우는 야생초라 할지라도 가만히 10분만 들여다보면 그렇게 소박해 보일 수가 없다. 자연속에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있을지언정 남을 우습게 보는 교만은 없거든. 우리 인간만이 생존경쟁을 넘어서서 남을 무시하고 제 잘난 맛에 빠져 자연의 향기를 잃고 있다. 남과 나를 비교하여 나만이 옳고 잘났다며 뻐기는 인간들은 크건 작건 못생겼건 잘생겼건 타고난 제 모습의 꽃만 피워내는 야생초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다.’(‘야생초 편지’ 중 ‘딱지꽃’ 일부).

이렇게 그가 야생초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기 안의 ‘만(慢)’을 다스리고자 하는 깊은 뜻도 숨어 있다. 야생초와 친해지면서 감옥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더이상 감옥은 투쟁의 장이 아니었어요. 징역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존재를 실현하는 장으로 바꿔나갔죠.”

마침내 그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묵내뢰(默內雷). 겉으론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속으론 우레와 같다고…(중략)…평화란 절대적 평온, 정지, 무사, 고요의 상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부단히 움직이고 사고하는 동적 평형(動的平衡) 상태라는 것이지. 사회가 평화롭다, 두 사람 사이가 평화롭다고 할 적에는 내부적으로 부단히 교류가 이루어지고 대화가 진행되어 신진대사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야생초 편지’ 중 ‘주름잎’ 일부).

그가 신의 구원과 욕망을 버리고 ‘묵내뢰’식 평화에 길이 들 무렵, 희한하게 그의 주변을 둘러싼 문제가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에서 그를 ‘세계의 양심수’로 지정, 각종 지원이 들어왔고 영국 펜클럽 명예회원이 돼 외국과도 서신 왕래를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영국 펜클럽협회에서 그의 석방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갔다.

마침내 1998년, 영어(囹圄)의 몸에서 풀려났다. 그는 감옥에서 이미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부모님께 이런 의사를 밝히고 출소한 지 5개월 만에 전남 영광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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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윤희 자유기고가 gogh10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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