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멀리서 본 동해선 복구현장은 삼국시대 전쟁터의 진(陣) 같다
불과 다섯 시간 산행만으로 주술에 걸린 듯 멍한 상태에 빠진 건 기자만일까. 산을 내려와 마음 둘 데 없어 멀리 금강산 주봉인 비로봉을 넋 놓고 바라보는데 안내원들은”힘들여 왔으니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교예를 꼭 봐야한다”고 채근한다. 어차피 다른 코스 탐승이 불가능해 공연장에 들어섰는데, 어럽쇼, 그 감흥도 만만치 않다.
한복 미인이 북측 특유의 가성으로 교예단원들을 `공훈배우'니`인민배우'니 하고 소개할 때만해도 객석 반응은 밋밋했다. 그러나 세 사람이 숨가쁘게 던지는 접시를 한 사람이 받아 챙기는 공연이 여러 차례 실패하고 끝내 다음 공연으로 넘어가면서부터 객석도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널뛰기 재주부리기와 그네 타기 순서에 들어가자 비명과 타성이 교차돼 흘러나왔다. 봄ㆍ가을ㆍ겨울 산을 배경으로 때론 백조처럼, 또 때론 표범처롬 율동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 못지 않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는다. 자연이 빚은 최고의 경치를 산에서 보았으니 인간이 만드는 최고의 경지도 보아달라는 자부가 거기에 있었다.
금강산 자락에 밤이 내렸다. 공연장에서 온천장으로 이동하며 문득 하늘을 보니 깨알처럼 박힌 별이 금세라도 쏟아질 듯 반짝인다. 온정리를 둘러싼 수정봉ㆍ관음연봉의 거대한 실루엣은 시시각각 컴컴한 어둠에 묻혀간다. 갑자기 몰려드는 정적, 그리고 어둠 앞에서 자연과 사람은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
이튿날, 삼일포에서

▲ 봉래대에 올라 삼일포를 굽어보면 신선이라도 된 듯 절로 흥이 인다
삼일포는 외금강과는 또 다른 마력을 지녔다. 강릉 경포대, 양양 낙산사 등과 함께 관동8경으로 유명한 절경답게 산과 호수와 섬,나무와 바위의 조화가 일품이다. 비로봉ㆍ옥녀봉에서 동쪽으로 밀려 내려오는 외금강과 고성평야, 그리고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도 출중해 삼일포를 내려보는 봉래대 위에 서면 신선이라도 된 듯 흥이 절로 인다.
호수 가운데 섬과 정자, 연꽃 모양 누각과 차곡차곡 포개진 너럭바위 등을 느긋이 보며 걷다보니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떴다. 이름 모를 들꽃이 예뻐 고개를 숙이다보니 가슴에 단 패찰이 흔들린다. 북측이 발부한 금강산 관광증이다. 사진 바로 옆에는 입국 허가 도장이 선명히 찍혀 있다.
그렇지, 허가받아야만 오는 땅이이었지. 문득 그리움이 세차게 밀려든다. 삼일포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등에 업고 외금강 봉우리들을 눈에 넣을 듯 쳐다보며 그 이름을 나직이 외워본다. 남측 관광객들은 한 장면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