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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냉담이 단일화 불렀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협상 막전막후

  • 글: 박성원 swpark@donga.com 글: 김정훈 jnghn@donga.com

박근혜 냉담이 단일화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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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여론조사’ 대(對) ‘대의원 조사’라는 양측의 팽팽한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민주당과 통합21의 단일화협상단은 이날 저녁 비공개리에 서울 시내 N호텔의 한 객실에서 자리를 마주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무거웠다. 통합21측 협상단장인 이철 조직위원장이 민주당측 협상단 간사인 이호웅(李浩雄) 의원에게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일화가 안된다면 대선은 하나마나다. 노무현 정몽준이야 후보니까 떨어져도 다시 솟아날 수 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뭐가 되겠나. 정치생명을 걸고 두 사람을 납치해서라도 단일화시켜야 한다.”

이에 이의원은 “민주당에는 정후보의 불투명한 정체성과 정책 노선을 내세워 단일화 자체에 반대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노후보가 국민경선 방식에 의한 단일화 주장을 접고 정후보측이 제기한 국민여론조사 방식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정후보가 이를 거부하고 ‘대의원 상대 여론조사’ 카드로 맞선 것은 단일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은 이날 민주당 이해찬 협상단장과 유인태(柳寅泰) 전의원, 통합21 박범진(朴範珍) 기획위원장과 오철호(吳哲鎬) 정치특보 등 양당 6인이 참석한 협상을 마친 뒤 “바둑이나 한판 두자”며 남았다가 내친 김에 술한잔 걸치며 답답한 심경을 서로 위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협상 도중 한바탕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이의원이 9일 있었던 양측 협상단의 첫 회동 직후 기자들에게 “단일화는 ‘국민이 참여하고 호응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며 노후보가 요구해온 국민경선 실시를 정후보측이 수용한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했다고 이위원장이 항의한 게 발단이었다.

사전 각본에 따른 충돌



이위원장은 “협상을 하자는 거냐, 말자는 거냐. 협의도 안 된 사실을 언론에 흘리는 것은 협상을 깨자는 것밖에 더 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거듭되는 이위원장의 호통에 고개를 숙이며 연신 미안한 표정을 짓던 이의원도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맞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싸움은 사실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 협상 시작 직전 이위원장이 이의원과 따로 만나 “우리 캠프 내부에서 나를 (민주당쪽 입장에 경도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난처하니 오늘 연극을 좀 해야겠다. 내가 당신한테 고함을 지를 테니 당신도 맞고함을 지르고 멱살잡이 일보직전까지 가는 광경을 보여달라”고 귀엣말을 했다. 이의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각본에 동의했으나 막상 ‘연극’이 시작된 뒤 ‘순진한’ 이의원이 이위원장의 호통에 고성으로 맞장구를 치지 못하고 진짜 미안한 표정을 지어버리는 바람에 작전은 ‘미수’에 그쳤다. 그러고도, ‘화해’를 빙자해 따로 남은 것은 교착상태에 빠진 단일화 협상의 실마리를 되살려보자는 데 이심전심 의기투합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사실 오랜 친구 사이다. 이의원이 서울대 정치학과 69학번이고, 이위원장은 사회학과 같은 학번이다. 나이는 이위원장이 한 살 많지만 함께 운동권에서 잔뼈가 굵은 동지다. 이의원은 1969년 3선 개헌 반대투쟁을 하다 무기정학을 받았고, 이위원장은 군에 끌려간 뒤 1972년 유신선포 이후 민청학련 조직을 주도하다 사형선고를 받았다.

끈끈한 인연을 가진 두 사람은 양당의 입장 차이 때문에 협상이 겉도는 와중에도 매일같이 비공식적으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자기 당의 속사정을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는 등 물밑 조율 작업을 계속해왔다. 이위원장은 특히 87년 대선 당시 김대중(金大中) 평화민주당 후보와 김영삼(金泳三) 통일민주당 후보 간 야권후보 단일화 추진에도 앞장섰던 경력을 갖고 있다. 이의원의 회고.

“노무현-정몽준 후보간의 단일화 논의 역시 양김씨간 ‘민주세력 단일화’ 요구와 마찬가지로 ‘민주평화세력의 승리’라는 나름의 명분을 내걸었지만 본질적으로는 한쪽의 출마포기를 전제로 한 ‘제로섬 게임’ 성격을 띠고 있다. 이에 양 후보측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안만 내놓으며 밀고당기는 바람에 협상은 난항에 난항을 거듭했다.”

시작은 됐지만 진척이 없던 단일화 논의가 구체적인 양자 협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6일 정후보가 한국미래연합 박근혜(朴槿惠) 대표와 전격회동해 연대 제의를 했다가 ‘딱지’를 맞은 직후부터다. 박대표와 연대 무산으로 정후보의 지지도가 빠질 조짐을 보이던 7일, 통합21 이철 조직위원장, 박범진 기획위원장 등 핵심 당직자들이 ‘후보단일화 대책위’와 협상단을 구성, 민주당 측에 협상을 공식 제의함에 따라 단일화 논의는 양자협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정후보가 12일 ‘후보자간 직접 회담’을 전격 제의하면서 단일화 방안을 놓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던 협상에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중매결혼이라도 얼굴은 봐야지”

12일 오전 8시 서울 여의도 통합21 당사 9층 정후보 사무실. 일일전략회의를 마친 정후보는 전날 있었던 민주당측과의 단일화 협상결과 민주당측의 국민여론조사 방식과 통합21측의 대의원 여론조사 방식이 맞서 진전이 없다는 보고를 받고는 말문을 열었다.

“제가 노후보를 만나보겠습니다. 노후보는 나와 생각도 다르고 성장배경도 다르지만 사실 우린 차 한잔 같이 마셔본 적이 없어요. 만나봐야 서로 이해도 하고 단일화 이후에도 협력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에 이철 위원장이 “준비를 하고 만나셔야지 자칫 성과 없이 이견만 확인하고 끝난다면 안 만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라며 신중론을 폈다. 그러나 정후보는 “단일화 방안은 단일화대책위에서 충분히 연구해주시면 저는 100% 그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중매로 결혼을 한다 해도 상대방과 직접 만나 차라도 한잔 나누며 솔직히 얘기를 해봐야 서로 신뢰가 쌓이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조건없이 만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정후보는 또 단일화를 위한 방안으로 노후보측이 제기한 국민여론조사를 일부 수용할 뜻을 밝히며 협상 타개 의지를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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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성원 swpark@donga.com 글: 김정훈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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