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7월 서울지법 형사30부는 최씨에게 재산국외도피 등의 혐의를 적용한 검찰의 공소사실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징역5년에 추징금 1965억원을 선고했다. 그해 10월 최씨는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올 1월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부)는 징역3년을 선고했으나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추징금은 2192억원으로 1심 때보다 늘었다. 이 소송은 최씨의 상고로 대법원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대한생명을 부당하게 뺏겼다고 여기는 최씨는 법원에 부실금융기관 결정처분 취소 소송과 감자 및 증자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두 사안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도 청구했다.
법적으로 위임명령을 제정할 수 없는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가 만든 규정에 터잡아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한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는 주장이다. 또 증자 및 감자 결정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가 있어야만 하는데 이사회에서 처리했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 두 소송은 현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각각 계류돼 있다. 최씨는 여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대세는 기울어진 상태. 9월23일 공적자금위원회는 논란 끝에 한화 컨소시엄을 대한생명 인수자로 결정했다. 한화 컨소시엄은 10월28일 예금보험공사와 본 계약을 맺고 정식으로 대한생명을 인수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초대 대표이사 회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권이 끝난 뒤 말하려 했는데…”
사정이 그런데도 최씨는 여전히 대한생명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그 의지의 표출이라 할 만하다. 서울 양재동에 있는 횃불선교원은 그의 부인 이형자씨가 원장을 맡고 있다. 전 이사장이기도 한 최씨는 이곳에서 흡사 망명정부의 수반처럼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기독교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횃불선교원은 현 정권과 검찰을 만신창이로 만든 옷로비사건이 잉태된 곳이기도 하다. 1998년 12월 하순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져나간 소문, 곧 “김태정 검찰총장의 부인 연정희가 이형자에게 옷값 대납 요구를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유언비어의 진원지가 바로 이곳이다. 유언비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 사건에 대한 네 차례 수사(사직동팀, 서울지검, 특검, 대검 중수부)와 국회 청문회 조사, 법원 판결을 통해 공통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연씨가 옷값 대납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이형자씨는 1998년 12월17일 이 선교원에서 배정숙씨(당시 통일원장관 부인)로부터 “연정희씨가 앙드레 김 의상실 등에서 2200만원어치의 옷을 샀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남편이 구속될까봐 크게 걱정하고 있던 이씨는 배씨의 얘기를 옷값 대납 요구로 받아들였다. 연씨에 대한 이씨의 오해(?). 이것이 바로 옷로비사건의 출발점이다.
최씨 주장 중에는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이 적지 않다. 그에 따라 기사를 두 부분으로 나눴다. 본 기사에서는 최씨 주장을 대부분 그대로 소개하되, 관련자 또는 관련 기관의 반론이나 사실관계 검증이 필요한 부분은 부속 기사로 따로 처리했다.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는데, 같은 주제에 관한 질의와 답변은, 대화의 흐름에 지장을 주는 경우를 빼고는, 순서에 상관없이 하나로 묶어 처리했다.
재계 인사 중에 최씨만큼 현 정부에 한이 맺힌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이 정권이 끝난 다음 말하려고 한 것인데…” 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가지로 구분해야 해요. 내가 구속된 사건과 대한생명을 뺏긴 것은 전혀 별개의 사건이라고요. 사람들은 이걸 혼동하고 있어요. 이 정부가 내 사건을 기회로 삼아 대한생명을 뺏어 가버린 거예요. 내가 잘못한 건 잘못한 거지만, 대한생명을 억울하게 뺏긴 건 따로 봐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