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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조선의 호걸, 철학자, 정치인 정도전을 다시 본다

재상 중심의 완벽한 내각제 꿈꾼 야심가

  • 글: 최상용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 syongchoi@korea.ac.kr

조선의 호걸, 철학자, 정치인 정도전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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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호걸, 철학자, 정치인 정도전을 다시 본다

조선시대 사대부는 직업정치가의 전형이다. 사진은 TV드라마 ‘용의 눈물’의 한 장면.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사상가요 정치가였던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1337~98)의 정치사상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삼봉정도전선생기념사업회’ (회장 한영우 한림과학원 특임교수)는 11월29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제1회 삼봉학 학술대회를 열고, 성리학적 민본국가인 조선의 탄생을 주도한 삼봉의 정치·사상적 업적을 기렸다. 한영우 교수는 삼봉에 대해 “당대 호걸 중의 호걸로 정치·경제·국방·사상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변화와 혁명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그 위치가 남다르다”고 평가하면서 “삼봉학이 율곡학, 퇴계학, 다산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학자층이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축사를 한 고려대 윤사순 명예교수는 “지금까지의 삼봉 연구는 역사 분야가 주도했고 철학에서 몇 편의 논문이 나온 정도에 불과하나 삼봉은 정치가, 혁명가로서 가장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다”면서 “정치학 분야에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했다. ‘신동아’는 이날 발표된 4편의 논문 가운데 고려대 최상용 교수의 ‘정치가 정도전을 생각한다’를 요약해 싣는다(편집자).]

삼봉 정도전(고려 충혜왕 3년~조선 태조7년)은 14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정세변화 속에서 주자학이라는 이념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을 거쳐 새로운 정치공동체-조선왕조-를 탄생시킨 정치가였다. 그에 대한 연구는 1973년 국사학자 한영우 교수의 ‘정도전 사상의 연구’를 계기로 철학,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간헐적으로 이어져왔다. 그러나 TV사극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이 부각된 이래 이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필자는 정치가의 자질과 유형, 정치적 인격의 형성, 정치이념과 권력의 제도화 등 현대정치학의 개념으로 정도전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한국사에 한정하지 않고 서양사로까지 확대하여 정치가 정도전의 위상을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인간은 권력을 매개로 다양한 정치공동체를 만들어왔다. 신과 야수는 정치사회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은 인간과 정치, 인간과 권력의 관계를 적절히 표현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동물’은 정치적 인간의 원초적 표현이다. 러셀의 정의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에 의하면 인간과 동물의 욕망의 차이는, 욕구가 충족되면 활동을 정지하는 동물에 비해 인간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무한하다는 것이다. 그 욕망 가운데 최고의 것이 권력욕이다.

정치적 인간은 권력추구를 향해 인격을 형성하는 사람인데 권력을 추구함에 있어 선택하는 역할과 기능은 다양할 수 있다. 인격형에 착안해 정의 내린 정치적 인간이란 ①존경에 대한 생래적 욕구 ②가치박탈에 의한 정치화 ③사적동기의 공적목표에로의 전환 ④정치적 자질의 소유 등의 요건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 역사에서 사대부 계층은 존경에의 욕망이나 사적 동기를 공적 목표로 전환하려 한다는 점에서 누구나 정치적 인간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더구나 권력투쟁 과정에 참여한 사대부들이 나름의 ‘가치박탈’ 체험을 갖고 있다.

정도전은 가치박탈에 의한 정치화를 경험했고, 발군의 정치적 자질을 소유한 정치가였다.

직업정치가의 전형, 조선 사대부

직업정치가는 정치에 대한 헌신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함으로써 내면적인 균형과 자기만족을 취하는 사람이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직업정치가의 첫 번째 범주로 군주의 참모가 있다. 그는 스스로 국가와 정치의 주인이 되려 하지 않고 군주의 봉사 역을 자임한다. 서양의 직업정치가들은 대체로 라틴어와 그리스어 해독이 가능했던 인문주의자들로 군주의 정치고문이 되거나 정치적 문서의 기초자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정치에서는 그다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반면 중국·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직업정치가들의 행보는 서양과 사뭇 달랐다. 고전 교육을 받고 과거시험에 합격한 인문주의적 문학자들이었던 이들은, 인문 교양 수준에서는 르네상스시대 서양의 인문주의자들과 비슷했으나 정치적 영향력은 서양보다 훨씬 컸다. 베버는 중국을 대표하는 직업정치가로 청나라 말기 최고의 실력자이며 탁월한 문장가였던 리훙장(李鴻章)을 꼽았다.

베버의 분류법에 따르면 조선시대 정치일선에 있던 사대부들은 직업정치가의 범주에 속하며, 그 중에서도 정도전은 직업정치가의 전형이라 하겠다. 정도전은 근대 이전에 생존했던 문인 정치가이면서도 근대국가의 필수조건인 군사력과 관료제의 존재이유를 예견했고, 실제로 조선왕조의 건설을 위해 국가수준의 군사훈련을 위한 병법과 중앙집권적 관료제도를 정비했다.

정도전 자신은 문무를 모두 갖추고 있었는데, 조선의 사대부가 평시에는 문인정치의 지도자이면서 전시에는 전장의 군사적 지도자로 활약했던 점을 감안하면 정도전은 베버가 말하는 군주의 보좌역에 머물지 않고 정치목표의 설정과 실천의 전면에 나선 직업정치가라고 할 수 있다. 또 베버는 ‘지도적 정치가’가 예로부터 군주의 실질적이고 권위있는 정치고문의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대표적 인물로 중국의 리훙장을 들 수 있고, 그밖에 근대 이전 터키 왕국의 총리와 16세기 마키아벨리 시대에 인문적 교양을 습득하고 외교술에 조예가 깊었던 정치가가 이에 속한다. 정도전은 14세기에 생존했던 지도적 정치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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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상용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 syongchoi@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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