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기반이 안정화되면서 지난 1년간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됐던 국회와의 관계도 훨씬 부드러워질 것이다.
임기 첫 해에 벌어졌던 극단적인 대결의 쟁점들이 총선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서 상당부분 해소됐고, 따라서 17대 국회와 보다 합리적인 협력관계를 형성하기가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분당(分黨) 배신론’을 펴면서 탄핵소추라는 비수를 꽂았던 민주당 역시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과의 공조가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탄핵공조로 인해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퇴출 위기상황을 맞은 민주당으로서는 한나라당과의 공조에 선뜻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17대 국회가 절대적인 의석수에 있어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라는 양당제의 모양새를 갖췄지만,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다당제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노 대통령에게는 유리한 변수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중요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정책적 연합 또는 합종연횡이 가능한 다당제 구도가 오히려 정국을 리드하기 용이한 구도다. 다소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할 때는 민노당이 보수정파인 한나라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고, 다소 보수적인 정책을 관철시키려 할 때는 한나라당의 협조를 얻어 민노당과 노동계의 반발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변수’가 노 대통령에게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노동계의 제도권 진입으로 인해 극한적인 장외투쟁이나 대립이 완화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으로서는 자칫하면 우파인 한나라당의 공격뿐 아니라, 비록 소수파지만 좌파의 비판도 동시에 받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향후의 정치적 지형은 노 대통령이 헌재에서 기각결정을 받아내 복권(復權)된다 하더라도 적지 않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간이 많지 않다. 노 대통령이 17대 국회의 개원 시점과 비슷한 5월 말이나 6월 초쯤 복권된다고 가정할 때 잔여 임기는 3년9개월 정도다. 그렇지만 실제로 자신의 개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2년여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남은 임기는 길어야 2년6개월
이번 총선 이후의 전국 단위 선거로는 2006년 6월 지방선거가 있다. 그리고 지방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은 2007년 12월의 대선을 향해 유력한 대선 예비후보들을 중심으로 각개 약진하는 소용돌이의 시기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노 대통령으로서도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후계구도 문제와 자신의 개혁정책이 차기 정권에서도 계승될 수 있도록 하는 마무리작업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실제 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힘을 갖고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짧게는 지방선거 이전까지 2년, 길어야 2007년 초까지 2년6개월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 기간은 노 대통령의 전체 임기 중 절반 정도가 된다. 특히 선거바람에 구애받지 않고 소신껏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비교적 평온한’ 의미있는 시기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역사의 평가도 결국은 이 시기의 성과와 업적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노 대통령으로서는 복권 이후 권한정지로 인해 ‘잃어버린 수개월’의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서라도 빠른 속도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갈 길 바쁜 노 대통령이 곧바로 속도전에 돌입하기에는 모든 조건이 충족됐다고 할 수 없다. 비록 열린우리당이 1당을 차지했으나, 이는 ‘탄핵 후폭풍’의 반사적 이익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회의 탄핵소추로 권한정지와 청와대 관저에 사실상 유폐생활을 하는 수모를 겪은 노 대통령이 복권이 되더라도 과연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다.
특히 헌재가 탄핵소추를 기각하면서도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탄핵에 찬성하고 4명이 탄핵에 반대하는 결과가 벌어질 경우에는 상황이 다시 복잡해진다. 비록 탄핵요건(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은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노 대통령의 리더십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노무현 최적의 파트너 정동영
노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탄탄대로’만은 아닐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다른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원내 1당이 된 열린우리당이 과연 노 대통령에게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인가의 문제도 변수다. 당장은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와 개혁 드라이브에 힘을 실어주는 전위대 역할을 하겠지만, 당내에서는 차기 대권을 향한 물밑 경쟁이 조금씩 치열해질 것이다.
과거처럼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하는 구조도 사라졌기 때문에 차기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열린우리당 내에서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한다고 해도 노 대통령의 리더십은 약화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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