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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 특집|4·15 여의도 대지진, 그후

‘기사회생’ 노무현의 그랜드디자인

개혁强功 미루고 ‘일단 껴안기’로 相生 리더십 구상

  • 글: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기사회생’ 노무현의 그랜드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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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이 탄핵 문제 때문에 입당도 하지 못한 데다 권한정지 기간 중에 치르는 선거여서 총선 승리에 노 대통령의 공이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문성근씨의 ‘잡탕’ 발언은 개혁당 출신들이 비례대표 순위에서 많이 밀린 데 대한 감정의 표현으로 안다. 총선 뒤에 당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은 대통령이 당을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총선 뒤에는 정동영 의장이나 김근태 원내대표가 노 대통령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

청와대측이 이번 총선 기간 중에 노인폄훼발언으로 당내의 사퇴요구에 직면했던 정동영 의장을 끝까지 지지하면서 ‘정동영 체제’ 유지에 집착한 것도 주요정책에서 제각기 딴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열린우리당과의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이 과거처럼 여당 총재로서 당을 장악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결국 당내에 확고한 대리체제가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2002년 대선 때부터 노 대통령에 대한 충실한 지지자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던 정 의장은 열린우리당 내에서 노 대통령의 가장 적절한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을 통해 노 대통령은 집권 2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았지만,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은 결국 노 대통령의 선택지를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강공 드라이브보다는 전체 정치권과의 협력정치를 유도하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듯하다.

이러한 정치적 환경에서 노 대통령은 일단 ‘껴안기’를 통해 정국을 이끌어가려 할 것이라는 게 청와대 인사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비록 과반 의석을 확보했지만, 과거처럼 날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야당의 동의를 얻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확실한 정국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는 야당을 자극하기보다 껴안는 ‘상생(相生)정치 프로그램’을 제시할 것이란 얘기다.



‘한나라당 입당’은 뼈 있는 농담

1차적 조치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결과 나타난 정치권과 재계의 전비(前非)를 대사면하는 화합조치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권력 운용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책임총리제가 가장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지역구도 완화를 전제로 국회 다수정파에 총리 지명권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정치권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은 반드시 책임총리제를 실시할 것이다”고 장담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바라는 것은 여야의 의석수 분포를 떠나 ‘합리적인 세력’이 지배하는 국회이며, 그런 조건만 충족된다면 안정적인 개혁정책의 추진을 위해 권력을 나누는 데에 결코 인색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총선에서 영남지역을 석권하면서 2당의 위치를 차지한 한나라당의 경우 공천과정에서 구시대 중진 정치인들이 대부분 퇴출된 만큼 당이 합리적인 신진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상황으로 재편된다면 협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농담이긴 하지만,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가 “노 대통령이 총선 후에 한나라당에 입당할 것”이라고 한 얘기도 그냥 흘려 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늘 의표를 찌르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에 비춰볼 때 2002년 대선 당시 한때 제안했던 것처럼 법무부 장관과 같은 핵심 장관직에 야당 쪽 인사를 기용하는 파격적인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탄핵소추를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개헌저지선(100석)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개헌저지선을 확보하지 못하면 집권 2기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따라서 국무총리는 물론 상당수의 장관직을 야권에 넘겨주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권력 운용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해 11월 대통령정무수석실이 충남 태안군의 안면도에서 가졌던 1박2일간의 합숙토론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안면도 합숙토론에서는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의 개선문제가 주요 의제였다. ▲중대선거구제 도입 ▲소선거구제+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1대1 혼합형 ▲도시지역은 중대선거구제를 적용하고 농촌지역은 소선거구제를 적용하는 도농복합선거구제 등 다양한 대안이 검토됐고, 각각의 방안에 따른 각 정당의 의석점유비율에 대한 세밀한 시뮬레이션 작업도 이뤄졌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당시 합숙토론에서 ‘DJP 공동정권’의 권력분점 양태에 대한 벤치마킹도 이뤄졌다는 점이다. DJP 공동정권의 경우 김대중 대통령이 권력 반분 합의에 따라 자민련에 국무총리직을 넘겨줬지만, 실제 내각 구성에서는 18개 부처 가운데 자민련 몫은 3분의 1 정도인 6~7개 정도였던 만큼 총선 이후 국회 다수정파와 공동내각을 구성할 경우 그때의 전례를 따르면 되지 않겠느냐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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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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