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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 특집|4·15 여의도 대지진, 그후

이문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의 총선 관전기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내 눈을 탓하노라”

  • 글: 이문열 소설가

이문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의 총선 관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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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 자신의 안목이나 이해력에 대한 믿음을 잃기는 했지만 이번 선거를 구경하면서 얻은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번 선거의 성격과 지난 대통령선거 때부터 변화가 감지되어 오던 정치판의 중요변수 하나를 나름으로 확인하고 이해하게 된 일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무엇보다도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투표로 표현되는 국민의사의 성격이었다. 달리 말해 이번 선거가 순수한 의회구성원을 뽑는 선거가 될 것이냐, 아니면 지난 대통령 선거의 보선(補選)이라는 의미를 더 강하게 띨 것이냐 하는 점이 궁금했다.

만약 유권자들이 선거전에 거세게 불었던 탄핵 바람과 무관하게 소속 정당의 정강정책과 인물 본위로 투표한다면 이번 선거는 원래의 목적대로 국회의원 총선이 된다. 하지만 탄핵바람에 그대로 휩쓸려 선거를 치른다면 이는 본질적으로 지난 대통령 선거의 보완 또는 추인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 우리는 아마도 2002년 12월15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를 이제야 겨우 마무리한 듯하다.

냉정하게 따져 보면 지난 1년의 정치적 갈등은 거의가 대선 불복(不服)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야당뿐만 아니라 그 지지자들에게 2002년 대선은 좀체 믿기지 않은 악몽 같은 것이었다. 1998년 정권교체 이후 5년 중 4년 11개월 동안 우세를 누리다가 마지막 한달의 극적 반전에 또다시 3% 미만 표차로 정권 탈환에 실패하자 그들은 도무지 그 패배에 승복할 수 없었다.

거기서 만들어진 것이 ‘15% 사기극’ 논리일 것이다. 곧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 15% 미만의 지지자를 밑천으로 후계자를 제대로 기르지 못한 호남정권의 양자로 들어가 33%의 호남세력을 꾸어왔다고 본다. 그러나 자기 지지세력 33%로 자민련 15%를 꾸어와 집권한 김대중 정권보다 집권 전망이 불투명하자 다시 어수룩한 정몽준을 끌어들였다고 한다. 거기다가 야당 쪽에서 보면 ‘머피의 법칙’이 몇 번 중복되어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해도, 그것은 겨우 15%밖에 안 되는 지지자를 밑천으로 한 ‘대 국민 사기극’이었다는 주장이다.



다분히 억지스런 말이고 다수결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나지만, 야당과 그 지지자들은 자기위로를 대신해 그 말을 믿고 싶어 했다. 의회에서는 아직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도 그 같은 믿음을 갖는 데 한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대통령이 검찰권으로 자기들을 압박해오자 그 믿음은 차츰 전의(戰意)로 불타올랐다. 대통령 취임 몇 달도 되기 전에 ‘탄핵’이란 말이 야당의 입 끝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도 허약한 지지기반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한 근거가 검찰권을 활용한 자기보강이다. 지난 한 해 동안의 검찰활동이 우연이 아니라 기획된 것이라면 그 기획은 너무도 정교하고 철저하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 차례 측근비리를 털어내고 다시 대북송금, 정치자금 등의 수사를 통해 자신과 과거를 공유하는 민주당의 부정과 부패를 털어냈다.

용인 땅, 장수천 생수 등에 이어 권노갑 박지원을 비롯한 민주당 실세의 수사와 구속으로 반년이 지나갔다. 공정한 검찰이라는 인상과 자신에게 엄격한 대통령이란 인상을 주기에 넉넉한 검찰활동이고, 기간이었다. 그러다가 재신임 발언과 더불어 한나라당에 ‘차떼기’로 치명타를 주게 되는 대선자금 비리수사에 들어간다.

검찰에 포착된 혐의에 따라 수사를 하다보니 그와 같은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주장한다면 당장은 반론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 하지만 나중에는 700여 억원까지 불어났고, 필요하면 1000억원도 넘길 수 있었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한나라당 대선자금 비리혐의는 정말 9월 이전에는 전혀 검찰에 포착된 바 없었을까. 허약한 지지기반, 특히 민주당과의 분당으로 더욱 심화된 의회에서의 열세를 행정 권력으로 보완하려는 유혹은 대통령에게 전혀 없었을까.

검찰과 친여 언론들의 ‘차떼기’ 십자포화가 몇 달에 걸쳐 무자비하게 한나라당에 퍼부어졌다. 대책 없이 침몰해가던 한나라당은 이미 길러오던 전의를 무서운 적의로 바꾸고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 그때 또 다른 이유로 배신감과 위기감에 내몰린 민주당 쪽에서 탄핵 발의를 제의해 왔다.

대통령 탄핵이란 사태의 엄중함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한나라당은 처음엔 민주당과의 공조를 주저했다. 마지못해 공조에 들어간 뒤에도 의원들 개별적으로는 미온적이었으며, 가결 전망도 불투명했다. 하지만 일단 발의에 동의한 이상 그 다음 단계로의 진행은 필연적이었다. 칼은 이미 칼집에서 뽑혔고, 두 당은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게다가 대통령의 사과 거부가 마지막 남은 타협의 여지를 지워버렸다. 아니 대통령의 담화는 오히려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자극적이서 그때까지도 탄핵을 부정적으로 보던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과 관망하던 자민련까지 탄핵 표결에 가세하게 했다. 그리하여 야당이 숨겨오던 불복의사는 갑작스럽고도 극적인 탄핵 가결로 표출되었다.

그런데 개표결과는 탄핵 반대 바람이 위력을 발휘해 탄핵 전만 해도 80석 정도를 목표로 삼은 열린우리당을 152석의 의회 과반 거대 여당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탄핵에 대해서는 열린우리당과 행보를 같이해온 민주노동당에 다시 10석을 주어 의회에 진출시킴으로서 탄핵반대의 프리미엄을 줬다. 여러 가지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국민들은 2002년 대통령선거가 15%의 ‘대 국민 사기극’에 속은 것이 아니었음을 투표로 명백히 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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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문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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