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이재철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의 총선 관전기

몽골 기병 초원을 달리듯 국민 품속으로 뛰어들다

  • 글: 이재철 변호사 mdlaw1@hanmail.net

    입력2004-04-27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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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대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은 부정부패와 지역주의를 청산하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지역간, 보수·진보간, 세대간 갈등을 끌어안고 상생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열풍이 언제 태풍으로 바뀌어 열린우리호(號)를 뒤집을지 모른다.
    이재철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의 총선 관전기

    4월13일 오후 김근태 우리당 원내대표의 김포시청앞 유세.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선거는 거의 언제나 돈과 조직에 좌우돼왔고, 비록 그 의미와 강도는 조금씩 달랐지만 항상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제17대 총선처럼 다양한 형태의 바람이 불어 유권자의 표심이 요동친 선거는 없었다.

    그 중에서도 탄핵바람은 유권자의 지지성향과 정치판도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은 태풍이었다. 3월12일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그리고 자유민주연합은 국민의 70% 이상이 반대하는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193대2라는 유신체제하에서나 있었을 법한 몰표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탄핵발의가 통과된 직후만 하더라도 탄핵결의를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은 물론 탄핵결의를 지켜보며 통곡하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조차도 탄핵바람이 이렇게까지 기존의 정치판도와 선거판도를 완전히 뒤집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탄핵풍 본질은 부패정치에 대한 분노

    기존 당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아니한 상태에서 팽팽하던 유권자의 지지도는 급변해 한때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도가 50%대로 치솟고 의석수가 200석에 달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예측까지 나오게 됐다. 이러한 탄핵 폭풍 속에 진행된 제17대 총선 결과, 열린우리당이 지역구 129석과 비례대표 23석을 합해 과반수가 넘는 152석을,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었고,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얻어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이에 비해 오랜 역사를 가진 새천년민주당은 국회교섭단체 구성도 할 수 없는 9석에 그쳤다.

    탄핵 역풍이 불기 전에도 열린우리당은 개혁성향과 당대표로 선출된 정동영 의장의 상대적으로 젊고 신선한 개인적 이미지, 그리고 정치안정을 바라는 민심의 향배로 선전이 예상되기는 했지만 탄핵바람이 없었다면 과반수 의석을 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정치판도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탄핵바람의 실체는 무엇인가. 탄핵바람의 실체를 ‘당리당략에 얽매여 민생은 뒷전에 두고 정쟁이나 일삼던 국회의원들이, 그것도 차떼기 등으로 부패의 온상으로 매도되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축이 돼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다수의 힘에 밀려 통곡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표출된 것’ 정도로 보는 것은 너무 피상적인 관찰이다. 탄핵바람은 차떼기로 상징되는 부패정치, 말뚝도 꽂으면 당선된다고 하는 지역주의, 이에 터 잡은 패거리정치, 민생을 무시한 채 당리당략에 눈멀어 타협을 거부하는 대결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회오리바람이었다. 그리고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은 비록 탄핵사태로 촉발돼 폭풍으로 변했지만 지난 대선 때부터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어떤 당인가. 영남이라는 탄탄한 지역기반 위에서 40년 이상 이 땅의 정치를 좌지우지한 주역이 아니던가. 한나라당은 3월2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탄핵의 주역인 최병렬 대표를 퇴진시키고 박근혜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박 대표는 차떼기 부패의 상징인 여의도 당사를 떠나 급조한 천막당사로 옮겨 당 간판을 걸었다. 그리고 국민 앞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조계사에서 사죄의 108배를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탄핵바람에 반격을 개시했다. 박근혜 바람(朴風)은 탄핵풍에 침몰 직전까지 간 한나라호(號)가 121석의 탄탄한 제1야당으로 항해를 계속하게 하는 데 성공적인 역할을 했다.

    새천년민주당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개혁적 여장부라는 이미지를 가진 추미애 의원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추 의원은 4월3일 전남 도청에서 망월동 민주화 묘역까지 ‘3보1배’의 고행을 하면서 호남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당의 결속력이 약했고 무엇보다도 한나라당과 공조해 탄핵안을 가결시킨 행위에 대한 호남 민심의 격렬한 반감에 부딪쳐 추미애 바람(秋風)의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원내교섭단체에도 못 미치는 9석을 겨우 건졌다. 한때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의 한 사람으로 거명되던 추 의원은 지역구 낙선으로 자신마저 낙마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인생은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승승장구하던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의장이 4월1일 어느 인터넷 방송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의 투표참여를 강조하면서 ‘60세 이상 노인은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는 비유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야당들은 이를 절호의 반격 기회로 삼아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여론몰이를 했다. 이로써 탄핵바람을 역류시키는 노풍(老風)이 불기 시작했다.

    노풍은 탄핵바람으로 궁지에 몰린 야당이 정동영 의장의 실언을 물고 늘어지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시작된 세대간 갈등이 재연된 정치현상일 뿐이다. 정동영 의장은 공인의 언행이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를 교훈으로 남긴 채 끝내 공동선대위원장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탄핵역풍 덕분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가. 열린우리당은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로 갓 태어난 정당이고 지역적 연고주의와 패거리 부패정치 청산의 기치를 들었다는 점에서 노쇠한 이미지의 야당들과는 뭔가 달라 보였다. 몽고족이 바람처럼 빠른 기마병의 기동력으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고, 로마제국이 간편한 전투복과 짧은 단검을 무기로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듯이 열린우리당은 지역기반과 과거 집권당이 누리던 자금력이나 권력의 보호 없이, 마치 몽고족이 황량한 초원을 달리듯이 지역구도와 흑색선전, 부패와 금권정치로 표상되는 구태정치 청산을 목표로 매진했다.

    당사 전세보증금의 일부에 불법선거자금이 유입된 것이 확인되자 주저 없이 영등포 가건물로 옮기고 국민참여경선으로 후보자를 선출하는 등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민심에 발 빠르게 부응했다. 그것이 열린우리당 약진의 또 다른 이유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회 주류세력으로서 달라진 민심에 신속히 대응하기에는 사고력과 조직의 유연성에 한계가 있었고, 민심에 따라 기득권을 버리기에는 그들이 누려온 과거의 영광과 안이함이 너무 컸다. 그 결과 거함 한나라호(號)는 비록 지역주의 부활과 거여견제 심리로 기사회생하긴 했지만 한때 침몰 직전까지 기울었고 민주당은 원내교섭단체의 구성에도 못 미치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개혁성·도덕성에 비중

    이번 선거는 공천과정에서부터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다. 당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다양한 형태의 공천이 이루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지역주의에 결부된 하향식 밀실공천이 후보자 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정당개혁의 발목을 잡아온 게 사실이다. 한두 사람의 보스가 정치헌금 형태로 공천대가를 받는 등으로 공천권을 행사했고, 국회의원은 공천권을 쥔 보스의 의사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이다.

    각 당은 상향식 개방 공천방식을 채택해 공천의 민주화와 투명화를 시도했다.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해 거기서 후보자를 선정하고 일부 후보자는 경선을 통해 결정하는 시스템을 가동했다. 경선방법으로는 당원 직접경선에서부터 당원과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참여경선, 당원과 시민을 아예 구분하지 않는 완전개방형 국민경선, 유권자 여론조사, 심지어 인터넷 공모까지 다양한 방법이 도입되었다.

    상향식 개방공천이라는 공천개혁에 있어서도 열린우리당은 다른 당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열린우리당은 국회의원 7명, 당료 3명, 대학교수 4명, 소설가 1명, 화백 1명, 변호사 1명, 시민단체장 출신 1명 등 18명으로 구성된 ‘공직후보자 자격심사위원회’에서 후보자를 심사했다. 심사위원회는 제출된 서류와 지구당 실사자료를 토대로 후보자의 병역, 전과관계, 납세실적, 당적변경, 출마경력 등을 면밀히 점검하고, 일부 지구당의 경우 후보자들에 대한 집단 인터뷰를 실시하기도 했다. 심사위원들간에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에는 투표로 결정했다. 당선가능성을 우선 고려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개혁성, 도덕성에 비중을 둬 개혁과 깨끗한 정치를 지향하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인물을 선정했다.

    경선지역이 전체의 40% 이상이었고, 경선 방식은 100% 국민참여경선으로 치러졌다. 이 점에서 순수 국민참여경선이 아니라 여론조사 방식 또는 당원동원 경선으로 치른 다른 당들과 크게 차별화됐다.

    열린우리당은 ‘공직후보자 자격심사위원회’라는 공적 기관에서 후보자를 검증하고 광범위한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후보자를 결정함으로써 공천의 투명성과 상향식 개방공천이라는 공천혁명을 일궈냈다.

    얼마나 고대했던가, 돈 안 쓰는 선거

    이번 선거에서부터 효력을 발휘한 개정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개혁적인 선거법이다. 정당연설회·합동연설회 등 가두집회가 금지되고 후보자를 포함해 6명 이상이 한꺼번에 다니면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후보자만이 어깨띠를 할 수 있고 명함도 돌릴 수 있다. 당 대표나 유력 인사도 지원연설을 하려면 연사로 등록해야 한다. 향응을 받은 유권자가 발각되면 50배의 과태료를 물어야 되고 금품을 받고 신고하면 25배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부정선거를 하다가 발각되면 당선무효를 각오할 수밖에 없다는 법의식이 보편화됐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번 선거를 가장 깨끗한 선거로 만들었다. 운동원들끼리 식사할 때도 밥값은 따로따로 냈고 후보자가 음식값을 내기는커녕 대접을 받았다. 지나친 규제로 청중보다 후보와 운동원 수가 많고, 심지어 운동원보다 선관위 직원과 경찰, 시민단체를 비롯한 감시원이 더 많은 진풍경도 벌어졌다. 선거 초반부터 선거법위반 혐의자에 대해서는 소속 정당에서 후보자격을 박탈하거나 후보자가 스스로 사퇴하는 등 종전에는 볼 수 없는 깨끗한 선거가 이루어졌다.

    지나친 규제는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능력을 검증하지 못한 채 막연한 선입견으로 투표할 가능성이 있고, 정상적인 선거운동까지 위축시킴으로써 유권자의 무관심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돈 안드는 선거, 흑색선전이나 불법 없는 선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이번 선거에서 세몰이, 돈봉투, 흑색선전, 조직 동원이 크게 줄어든 점은 가히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 것이다.

    17대 총선의 두드러진 특징은 세대교체와 여성 정치인들의 약진, 그리고 진보정당의 국회입성이다. 당선자 가운데 3선 이상은 51명에 불과한 반면 국회에 첫발을 내디딜 초선은 129명이나 된다. 여성 의원들도 39명에 이른다.

    이는 부패정치와 지역주의로 대변되는 구 정치인에 대한 반감의 결과다. 여성의 정계 진출 확대는 각계각층에서 약진을 거듭하는 여성들의 활약상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 대표로 박근혜 의원이 선출되고, 민주당에서 법적 대표인 조순형 의원 대신 추미애 의원이 선대위원장으로 나선 것은 여성 지도자 시대의 신호탄으로 볼 만하다. 정당대변인도 모두 여성들이 차지했고, 243개 지역구에서 66명의 여성후보가 출마했으며, 비례대표중 반수가 여성으로 정해지는 등 여성파워가 두드러졌다.

    여성이 정계에 많이 진출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국민의 절반이 여성이므로 대의정치 본질에 합당하고, 상대적으로 비리나 부정부패에 연루될 가능성이 낮은 데다,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연고주의 끈이 약하기에 정치풍토를 질적으로 바꿔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열풍이 언제 삭풍이 될지

    의정사상 처음으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제2 야당으로 떠오른 점도 괄목할 만한 변화다. 진보정당의 제도권 진입은 거의 대척점에 있는 정치적 견해들이 국회라는 민의의 마당에서 합법적으로 어우러질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번 선거로 한국정치계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오랫동안 정치세력을 양분해온 새천년민주당이 군소정당으로 추락하는 이변이 일어났고, 1985년 실시된 제12대 총선 이후 19년 만에 집권여당의 과반 의석 확보가 이루어졌다. 비록 영남 대 비영남이라는 부정적 형태를 띠긴 하나 호남 대 비호남의 지역주의 망령이 깨졌고, 열린우리당이 영남에서 지역의 벽을 크게 넘지는 못했지만 정당지지도에서 30%가 넘는 지지를 받음으로써 우리 정치는 40년 만에 정치발전을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할 전국정당 출현이라는 꿈(?)을 현실로 맞게 됐다. 보수, 중도 개혁, 진보의 정책대결이 펼쳐질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17대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은 부정부패와 지역주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민심의 참뜻을 알고 지역간, 보수·진보간, 세대간 갈등을 끌어안고,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상생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세상도 사람도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깊이 새겨 개혁에 조급하지 않아야 한다.

    백성은 물과 같다고 말한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키기도 한다. 열린우리당에 분 열풍이 언제 다시 살을 에는 삭풍이 되고 태풍이 돼 열린우리호(號)를 뒤집을지 모른다.



    지역주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렸고 감정을 자극하는 선거운동이 전개되는 등 부정적인 요소도 있었지만, 이번 17대 총선은 국가발전과 정치발전 측면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평가할 만한하다. 당선된 의원들에게 축하를 보내면서 모든 정치인이 국민 전체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지혜를 모아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펼쳐나갈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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