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北은 MD 구축 최대 명분… 부시는 ‘악수’를 원치 않는다

美 대선과 MD, 그리고 한국의 딜레마

  • 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civil@peacekorea.org

    입력2004-04-28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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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MD)의 핵심요소인 탄도요격미사일 탑재 이지스 구축함을 9월부터 동해에 상주 배치할 계획임이 확인되었지만, 한국 정부는 사전통보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을 앞두고 ‘MD의 완성을 통한 절대안보체제 구축’을 핵심의제로 삼으려는 부시 행정부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한반도 안보환경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000년 MD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 양국간에 빚어졌던 이견과 마찰은 2004년 미 대선을 앞두고 재현되는가.
    北은 MD 구축 최대 명분… 부시는 ‘악수’를 원치 않는다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미국 본토에 사상 초유의 테러가 발생한 2001년 9월11일을 1·2차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세계사의 전환점’이라고 기술할지 모른다.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상징하던 쌍둥이 빌딩과 펜타곤이 민간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당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날 이후 세계가 너무나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방전쟁에 입각한 부시 독트린과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악의 축’ 발언 및 뒤이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9·11 이후의 세계를 표현하는 키워드다.

    그런데 우연치고는 묘하게도 당초 이날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현재와 미래의 위협과 문제’라는 주제로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에 대해 연설할 예정이었다. 당일 대형테러가 발생하는 바람에 지하 벙커에 몸을 숨겨야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라이스가 이날 연설에서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4월1일, ‘워싱턴포스트’는 라이스의 연설문 일부를 입수해 1면 머릿기사로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연설문에는 테러위협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는 반면, 탄도미사일을 미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이라고 규정하고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미국 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국에게 가공할 공포와 피해를 안겨준 위협의 실체는 부시 행정부가 그토록 강조했던 탄도미사일이 아니라 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가 납치한 민간 여객기였다. 위협에 잘못 대응했던 부시 행정부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9·11 테러 직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유력 언론과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가 안보의 최우선 순위를 잘못 선정했다며 MD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쏟아냈다.

    잘못된 우선순위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사상 초유의 국가안보 위기를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두 가지 발 빠른 조치를 취했다. 하나는 “여객기로 공격한 테러집단이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을 사용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며 MD를 정당화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과 알 카에다의 연계를 주장해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쌓아가는 것이었다.

    이는 MD와 이라크 점령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었으나 MD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은 국가안보를 절대시하는 당시 분위기에 눌려 일제히 입을 닫아야 했다. 결국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를 WMD 위협을 부각시켜 MD와 이라크 침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정권의 위기’를 ‘제국주의의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순조로워 보였던 부시 행정부의 ‘제국을 향한 행진’은 최근 들어 커다란 벽에 부딪히고 있다. 이라크에서의 미군 사망자가 2003년 5월1일 부시 대통령의 종전선언 이후 오히려 늘어나면서 미국인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데다,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후세인과 알 카에다의 연계나 WMD는 이라크가 아닌 ‘부시의 마음’ 속에 있었던 것이 속속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점령과 MD 계획에만 집중한 나머지 테러위협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미국을 더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문제제기도 힘을 얻고 있는 추세다.

    MD, 미 대선 핵심쟁점 되나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부시 행정부는 거꾸로 MD 구축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실제적인 작동 여부와 관계없이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미국 안팎에 배치하게 되면, ‘절대안보’를 실현한 지도자 이미지를 미국 국민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산 역시 제대로 맞아떨어지지 않고 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부시 행정부가 MD 구축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그 동안 침묵해왔던 미국 언론과 민주당이 비판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막대한 예산낭비, 미사일 위협의 적실성, 기술적인 결함, 생산·배치 이전에 면밀한 실험평가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 의회법 등을 제시하면서 MD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직 합참의장과 해군제독 등이 포함된 49명의 미국 퇴역장성들까지 가세해 부시 행정부의 MD 구상에 비판을 쏟아냈다. ‘뉴욕타임스’ 역시 4월1일자 사설을 통해 ‘펜타곤이 2004년 대선을 앞두고 2000년 부시 후보의 MD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바보같이 돌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부시 행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무리하게 MD를 강행하면 할수록 이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이에 따라 11월 대선의 핵심쟁점 가운데 하나로 MD가 부상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가열되고 있는 MD 논란을 ‘강 건너 불 구경’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북쪽’을 MD의 최대 명분이자 1차 목표물로 규정하고 있고, ‘남쪽’은 MD 시스템의 최우선 배치지역이자 포섭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반도 문제는 MD의 최대 변수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4년 전, 한반도를 중심에 놓고 벌어졌던 일련의 ‘MD 논쟁’을 다시 살펴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의회와 전문가그룹의 많은 사람들은 북한과의 거래가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구축의 명분을 약화시킬 것이라 우려하며 북미 정상회담에 반대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회고록 ‘마담 세크러테리(Madam Secretary)’(2003년)에서 이같이 밝힌 2000년 당시 미국 내 상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2000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후보가 승리한 직후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방북은 무산되고 말았다. 올브라이트는 그 이유 중 하나가 ‘북미관계가 개선될 경우 NMD 구축에 차질이 생길 것을 두려워한 미국 내 강경파들의 반대’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NMD는 미국 본토로 향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하기 위한 것으로서, 부시 행정부는 이를 해외주둔 미군 및 동맹국 방어용인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와 통합해 미사일방어체제(MD)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부시의 MD 구축계획과 대북정책, 점차 가열되고 있는 미국의 대선을 2000년 상황과 비교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위협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 진영에서는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촉구하면서 MD를 ‘대선용’이라고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복잡하기만 한 ‘북-미 대결’ 구도에 MD와 대선 변수가 추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한국정부가 북핵과 MD 사이의 긴장관계를 제대로 짚지 못하면 2000년 미국의 정권교체기 때 빚어졌던 오류가 그대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반도 문제와 MD, 그리고 미국 대선이 모두 한반도의 안보를 둘러싸고 복잡한 함수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남-북-미 삼각관계를 되돌아볼 필요도 여기에서 나온다.

    남북정상회담에 좌초한 MD

    김대중 정부는 2000년 4월, 16대 총선을 불과 13일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했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발표된 직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북한은 정말 위협적인가?’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최대의 명분으로 삼아 추진되었던 NMD에 직격탄을 날렸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NMD를 추진했던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만난 것이다.

    ‘스타워즈’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레이건 행정부의 ‘전략방위구상(SDI)’이약 1000억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날리고, 소위 ‘악의 제국’이라 불렸던 소련이 붕괴되면서 미국의 미사일방어 구상도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1991년 걸프전에서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 한 방이 미군 막사를 명중시켜 약 30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미사일 방어 구상은 미국 내에서 다시 힘을 받기 시작했다.

    냉전의 해체로 생존의 기로에 서 있던 군산복합체들은 의회와 보수적 싱크탱크 등을 앞세워 미사일방어체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클린턴 행정부에 압박을 가했다. 특히 북미간의 제네바합의 체결 직후 실시된 미 의회 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하면서 클린턴 행정부를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이 같은 안보 공세에 직면한 클린턴 행정부는 우선 TMD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러한 당시 상황은 왜 공화당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제네바합의를 그토록 ‘증오’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을 제시해준다.

    부시의 ‘마지막 이벤트’

    한편 클린턴 행정부는 TMD를 추진하는 동안에도 이보다 사업 규모가 훨씬 큰 NMD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을 미사일로 공격할 나라가 있는 것인지, 괜히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해 새로운 군비경쟁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총알로 총알을 맞추는 것만큼 어렵다는 미사일 요격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수천 억달러를 이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등 다양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갈팡질팡하던 NMD 구상은 1998년 8월 들어 두 가지 사건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하나는 ‘금창리 핵의혹 시설’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선진국에서나 가능하다는 3단계 로켓체(광명성 1호)를 쏘아올린 일이다. 이 사건들은 NMD 추진파들에게는 ‘광명’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이에 클린턴 행정부는 ‘3년간의 실험평가를 통해 3년간 초기 NMD를 실전배치한다’는 이른바 ‘3+3 계획’을 발표했다. NMD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는 한반도 정세는 NMD가 탄탄대로를 걷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NMD의 가장 큰 명분, 즉 ‘북한 위협론’이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갈팡질팡하던 클린턴 행정부는 ‘페리 프로세스’에 바탕을 둔 대북포용정책에 시동을 걸었고, 대신 NMD 구축 여부는 차기 정권으로 넘겨버렸다. 남북정상회담 3개월 후이자 미국 대선을 2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클린턴이 NMD를 취소하지 않고 유보하기로 한 것은 대선을 앞두고 이를 취소하면 부시 진영으로부터 안보공세에 직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어쨌든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촉진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미국 매파의 오랜 꿈인 NMD를 ‘일단’ 요격한 것이다. 그리고 2000년 대선의 최대쟁점 중 하나가 될 것이 확실했던 NMD 문제는 클린턴 대통령의 ‘유보’라는 모호한 발표를 통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그러나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 내 강경파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눈앞에 다가온 ‘스타워즈’의 꿈을 클린턴의 평양행 비행기와 함께 날려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강경파들은 부시의 당선을 계기로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고 앞서 인용한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설명대로 클린턴의 방북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ABC(Anything But Clinton)’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사실상 전면폐기했다.

    그로부터 4년 가까이 지난 지금 2000년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북미관계와 MD, 미국 대선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복잡한 함수관계를 형성하면서 흥미로운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출범과 함께 ‘북한 위협론’을 앞세워 재미를 본 부시 행정부는 대선을 한달 앞두고 ‘마지막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비등하는 국내 반대여론과는 상관없이, 2004년 9월30일까지 알래스카에 있는 포트 그릴리에 6기, 캘리포니아의 반덴버그 공군기지에 4기의 요격미사일을 배치해 10월1일부터 작전에 들어간다는 진행일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예정대로 ICBM을 요격할 수 있는 MD가 배치될 경우 부시 행정부는 ‘이제 미국 본토는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안전해지게 됐다’며 이를 대선 유세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부시 행정부가 핵문제 해결을 비롯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꺼리는 것에는 MD 구축의 명분을 놓치지 않으려는 계산도 들어 있다’는 주장에 대해 적지않은 이들은 ‘음모론에 불과하다’며 일축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을 보면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언급한 “대북 협상의 유망한 요소”를 완전히 무시하고 북한 위협론을 전면에 내세우며 MD 구축을 선언하는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2001년 3월 DJ의 방미를 앞두고서는 “한국이 MD 참여를 약속하고 오면 한미정상회담은 분위기가 좋을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대량살상무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9·11 테러를 ‘대량살상무기 위협 극대화’의 명분으로 활용했고, 그 가장 큰 본보기를 북한으로 들면서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이라고 규정했다.

    北核 앞세워 동맹국 참여 유도

    2002년 10월 이른바 ‘북핵 파문’이 불거진 이후 부시 행정부는 이를 MD구축 강화 및 동맹국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근거로 적극 활용해왔다. ‘동맹의 현대화’를 앞세워 노무현 정부에게 MD 참여를 종용하는 한편 2003년 8월에는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를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했다. 또한 일본의 MD 정책도 미국과의 공동연구개발에서 16기의 PAC-3와 이지스함에 장착할 수 있는 스탠더드미사일-3(SM-3) 등 미국제 무기를 직구매해 2007년까지 배치하는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호주도 MD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북핵을 앞세워 동맹국들의 참여를 이끌어내 막대한 양의 자국 무기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입장에서 볼 때 이미 상황이 완료된 것은 아니다. 실전배치에 들어간 PAC-3나 탄도미사일 궤도를 추적할 수 있는 이지스함으로는 미국 본토를 방어할 수 없고, 이에 따라 미국민에게 미치는 정치적 효과도 그리 크지 않은 까닭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ICBM 요격이 가능하다는 지상요격체제(GMD)를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에 배치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아직 실험일정도 채우지 못한 지상요격체제를 예정대로 배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에 걸맞은 ‘위협’이 계속 존재해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부시 행정부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대선 전까지도 북한과 진지한 협상에 나서는 대신 ‘시간 끌기’로 일관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이라크, 이란, 리비아 등 다른 ‘깡패국가들’의 핵미사일 위협을 거론하기에는 더 이상 적실성이 없고, 그렇다고 중국을 직접 언급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큰 상황에서, 핵과 미사일이 결합된 ‘억제력’을 공언하고 있는 북한이야말로 지상요격체제 구축의 거의 유일하면서도 핵심적인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부시 행정부는 자신의 강력한 정치기반인 군산복합체에 막대한 이윤을 보장하고, 상대방의 보복 능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선제공격전략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미래의 경쟁자인 중국을 사전에 억제할 수 있는 군사적 기반이며 21세기 패권주의의 보고(寶庫)인 우주를 군사적으로 선점하는 데 이르기까지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이렇듯 긴요한 MD의 명분이 약화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과의 협상을 추구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美 국방부도 MD 효용성에 의문

    그러나 이 같은 부시 행정부의 전망이 순조롭게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월말 공개된 국방부의 ‘무기 프로젝트 연례보고서’는 “지상요격체제가 아직 기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며 “9월30일 배치 이전에 더 많은 실험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국방부 일각에서조차 MD의 효용성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집권 이후 대대적인 세금감면과 대폭적인 국방비 증액으로 적자예산을 자초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예산 적자폭이 무려 5200억달러에 달할 것이 분명함에도 또다시 국방예산을 증액하려 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마련한 2005년도 국방예산안 총액은 전년보다 7%가 증액된 4017억달러로, 여기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재건 및 작전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특히 MD 예산의 경우 전년도보다 20% 늘어난 102억 2000만달러로 책정해놓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대선후보인 존 케리는 “신뢰할 수 없는 무기산업에 엄청난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며 공세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참고로 케리는 MD에 대해 조건부 찬성 입장을 갖고 있다. 그는 미국 국가안보의 일환으로 MD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부시 행정부가 파기한 ABM(탄도탄 요격미사일 협정) 유지, 투명한 절차와 실험을 통한 유효성 입증, 동맹국 및 주요 강대국들과의 사전협의 등을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일방적이고 초법적인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부시의 MD 구상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 ‘안보 문제를 대선의 최대 이슈로 삼겠다’는 부시의 대선전략과 맞물리면서 민주당 케리 후보의 입지는 상당히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북핵 문제가 미국 매파들의 21세기 세계전략의 핵심인 MD 문제를 거쳐 미 대선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관심의 초점은 2000년과 흡사한 상황이 재연될지 여부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클린턴으로 하여금 MD 구축을 차기 정권으로 넘기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당시의 교훈은, 6자회담 구도로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어렵다는 문제의식과 맞물려 ‘2차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한 남북한 대타협 추진’ 등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MD 구상에 있어서 북한이 단순히 명분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은 북한을 MD를 통한 무력화의 대상으로 첫손 꼽고 있다. 이는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부시 독트린에 북한을 포함시킨 것과도 관계가 깊다. 때문에 ‘MD문제에서 북한은 단순한 구실일 뿐이고 결국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일부의 평가는 보다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올해 말 對北 1단계 MD 구축

    현재 추진중인 계획대로 MD가 진행되면 미국은 올해 말 북한에 대한 1단계 MD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지난해 8월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를 남한에 배치한 미국은 9월에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할 수 있는 이지스함을 동해에 배치할 예정이다. 또한 10월1일부터는 ICBM을 요격할 수 있는 지상요격체제를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에 배치하게 된다.

    PAC-3 수십 기를 일본에 배치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양국은 2005년에는 한층 강력한 미사일방어망을 갖추게 될 것이다. 개발 및 실험평가 막바지에 다다른 스탠더드미사일-3(SM-3)는 우선 10기가 이지스함에 장착될 예정이고 미국 본토 방어를 위한 지상요격체제 역시 20기로 늘릴 예정이다.

    北은 MD 구축 최대 명분… 부시는 ‘악수’를 원치 않는다


    남한에 배치된 PAC-3가 주로 북한의 스커드미사일을 겨냥한 것이라면 이지스함과 일본에 배치될 예정인 PAC-3는 주로 북한의 노동미사일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 미국 본토 방어용 지상요격체제는 혹시라도 북한이 갖고 있을 수도 있는 대포동2호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MD 배치 계획이 상당부분 완료되면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상당부분 무력화할 수 있는 군사적 수단을 갖게 된다. 이는 선제공격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상당부분 파괴시키는 ‘선제공격 전략’으로 뒷받침되기도 한다. 미국이 추진중인 MD 전략의 요체는 날아오는 미사일을 맞추는 ‘사후방어’보다는 공격작전을 통해 미사일이 발사되기 전에 파괴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살펴봐야 하는 것이 바로 ‘주한미군 재편(USFK transformation)’ 문제다. ‘장비 현대화와 새로운 작전개념 실행을 통해 전투력을 향상시키고(enhance), 전력구조를 최적화하기 위해 역할과 임무를 정하며(shape), 지속적인 주둔을 위해 기지와 병력을 재배치한다(align)’는 재편 과정을 통해 주한미군은 보다 막강한 대북 타격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이 계획이 마무리될 2007년 무렵이면 미국은 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C4I)와 공격력은 대폭 강화한 반면, 유사시 미군의 피해는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주한미군이 북한의 장사정포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게 되면 북한의 대미 억제력은 사실상 미사일 하나만 남게 되는 셈이다.

    1994년 상반기 이른바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폭격 일보직전까지 갔었다는 사실은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충분히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수 차례에 걸친 워게임 시뮬레이션 결과, 개전 초기 3개월 동안 미군 사망자가 5만에서 1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가공할 시나리오가나오자 미국은 북폭을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같은 예상피해 규모는 물론 북한의 장사정포와 미사일이 가진 공격력에 근거한 것이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북미간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한미군 재배치와 MD 현실화를 통해 북한의 공격력이 무력화될 경우 미국은 ‘부담 없이’ 북폭을 결정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지독한 역설의 딜레마

    결국 주한미군 재편과 MD 구축 진전을 통해 한반도에서 조성될 수 있는 위기국면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북미간 적대관계 해소’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MD 추진의 명분이 약화된다는 점에서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한미 양측 모두에서 제기된 ‘주한미군 감축·철수론’과 ‘NMD 계획 차질’을 목도한 미국 내 강경파들이 이러한 상황을 용인할 가능성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MD와 한반도 안보 사이에 얽혀 있는 지독한 역설의 딜레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핵 카드를 비롯한 북한의 군사주의 노선도, 군사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남한의 자주국방 비전과 한미동맹 재조정도 위와 같은 ‘미래의 불안’을 해소하는 올바른 대응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북한의 그 같은 상호배제적인 국가전략은 오히려 미국의 패권주의를 강화시키면서 한반도를 더욱 불확실한 위협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



    결국 남북한 정부는 보다 큰 차원에서의 전략 수립이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 목표는 미국 주도의 한반도 정세 틀에서 벗어나 남북한 구도 중심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복원·발전시키는 데 있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MD를 좌초시켰던 것처럼 2004년의 MD 또한 유사한 돌파구가 필요한 것이다. 단순히 미국 대선에서 ‘행운’이 일어나기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평화지향적 민족공조’가 절실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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