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별연재|美 비밀문서로 본 격동의 80년대①

광주민주화운동 발발과 미국의 오판

글라이스틴 “‘2등 시민’ 전라 도민의 지역주의가 폭동 불렀다 ”

  • 글: 이흥환 美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광주민주화운동 발발과 미국의 오판

2/7
자신의 표현대로 글라이스틴은 ‘한국전 이후 가장 심각했던 평화시 위기’ 상황을 미국을 대표하는 대사 자리에 있을 때 맞았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발생한 지 반 년 뒤로, 연이어 터진 12·12 군부 쿠데타의 여파로 긴장 상태였으며, 계엄령 하에서 ‘1980년 봄’의 사태 추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때였다.

비밀문서에 따르면, 19년 후에 발간한 저서에서 광주사태를 10·26이나 12·12보다 더 심각한 위기라고 평가했던 글라이스틴은 사태 초기에는 그 심각성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국무부에 타전한 대사관 비밀 전문에는 5월18일 유혈 진압이 시작된 지 사흘이 지난 5월21일까지도 광주 상황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 실시된 첫날인 5월18일 오전 9시, 주한 미 대사관이 워싱턴의 국무부로 타전한 3급 비밀 전문(제목 : 5월18일 오전 9시 현재 한국 상황)은 ‘오전 4시 통행금지가 해제된 후 서울은 예전처럼 조용하다’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오전 4시 통행 금지가 해제된 후 서울은 예전처럼 조용함. 착검한 소총으로 무장한 군 병력이 경계를 서고 있는 정부 주요 건물에 무장 병력 수송 차량이 주둔. 오전 2시, 군 병력에 대학 구내 진입 지시 하달됨. 일부 인사가 체포되었다는 보고 들어옴. 김대중씨 부인과 접촉했던 서방 기자들에 따르면, 다수 군인이 김대중씨 집을 샅샅이 수색한 후 김대중씨를 연행해 갔음.」

이 문서는 김대중씨 외에 김종필 공화당 총재,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문익환 목사 등 주요 인사들의 연행 사실도 전하면서, 전문 마지막 부분에 광주를 언급하고 있다.



「5월18일 오전 4시 이후 AFKN 방송을 통해 한국 내 미국 시민들에게 활동 자제와 계엄령 준수를 주의시키는 대사 명의의 성명이 방송되고 있음. 광주, 부산, 대구 소재 미 문화원 보고에 따르면 모든 것이 평온함.」

소문 소문 소문…

5월18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에 국무부로 타전된 또 하나의 전문 역시 광주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5월18일 서울, 학생/대학 상황’이라는 제목의 이 전문에는 ‘5월18일 자정 직후 서울의 모든 대학이 군 병력의 통제하에 들어갔다’는 내용만이 들어 있을 뿐이다. 이 시간 광주에서는 이미 시위 군중에 대한 무력 진압이 자행되고 있었다.

광주에서 시위 군중을 상대로 특전사 병력의 진압작전이 실시된 시간은 5월18일 오후 3시였다.

이날 오전 10시 전남대 정문 앞에서 학생 50여명이 특전사 부대원과 대치하던 중 투석전이 벌어졌으며, 오전 11시 금남로 가톨릭센터 앞에서 시작된 시위대의 연좌시위는 오후 2시가 넘어서면서 시위 군중이 1600여명으로 불어났다. 경찰이 진압에 실패하자 특전사가 투입됐다.

주한 미 대사관이 국무부로 발송한 전문에서 광주사태가 처음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5월19일 오후 5시부터다. 다음은 ‘5월19일 오후 5시 한국 상황’이라는 제목의 전문 가운데 주요 부분이다. 이 전문은 광주사태 초기 상황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미국의 이런 시각은 이후에 전개된 광주사태 전반에 대한 인식의 바탕이 되고 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5월19일 하루 종일 광주를 제외하고 서울과 한국 전역이 조용함. 서울의 공공건물과 언론사에는 병력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음. 신민당과 공화당 중앙당사에도 군 병력이 배치되어 있음. 서울에서 학생 시위가 있으리라는 소문이 있으나 오후 5시 현재 아무 징후 없음.

5월18일 광주에서 발생한 폭동(riots)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며, 오후 3시 현재 수천 명의 군중이 길거리에서 시위중인 것으로 알려짐.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학생 한 명이 무장병력 수송 차량에 깔려 죽음.

광주 폭동과 관련해 서울에까지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특전사 병력이 착검한 소총을 사용했으며, 이로 인해 학생 희생자가 다수 발생했음. 일부 광주 시민은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떤 북한인보다 진압군이 더 무자비하다(ruthless)고 말한 것으로 알려짐.

교토통신 보도와 광주 미문화원 보고에 따르면, 상당수의 일반 시민이 학생과 함께 시위에 가담하고 있음. 오후 5시 현재, 3000명 가량의 시위대가 군인 한 명을 인질로 잡았다는 경찰 보고가 있음. 잔인한 진압 소문에 대해 경찰은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음. 이런 소문들은 서울 및 기타 지역의 학생 및 일반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음.

견해 : 서울에서 우리가 만나본 사람들 대부분은 계엄령 확대 조치에 실망하고 있음. 재야인사들도 실망감을 안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며 군부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입장임.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에는 이미 시기를 놓쳤으며, 일부 소수 인사들은 정치인들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음.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미국이 군인들을 병영으로 복귀하도록 만들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재결집해 군부 통제를 흔들 수도 있으리라고 보고 있음. 광주 폭동은 광주가 김대중씨의 출신지라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되고 있음.

보안사령부의 나중 보고에 따르면, 광주 폭동에 관련된 숫자는 소문보다 훨씬 적으며, 사실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함. 」

이 문서는 광주사태에 대한 글라이스틴 대사의 초기 상황 파악과 관련해 중요한 점 세 가지를 알려준다.

첫째, 글라이스틴 보고가 사실이라면, 그는 광주사태 첫날에 발생한 특전사 부대의 무력 진압 사실을 하루가 지난 뒤에야 소문 차원에서만 알고 있었다. 글라이스틴은 자신의 책에서 ‘광주 미 문화원 보고를 통해 주한 미 대사관이 광주에서 일이 터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간은 5월18일 밤’이라고 적고 있다. 18일 밤에 첫 보고를 받았고, 이튿날 소문을 듣기 시작한 셈이다. 광주 미 문화원의 첫 보고가 글라이스틴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시킬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은 앞으로 더 살펴볼 문서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2/7
글: 이흥환 美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목록 닫기

광주민주화운동 발발과 미국의 오판

댓글 창 닫기

2021/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