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표결에 기권하기로 하자 4월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옆 공원에서는 정부에 찬성 표결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필자는 파리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던 차에 유엔 인권위 결의에 참여하게 됐는데, 각국 국가대표들을 설득하는 일은 작년보다 좀더 수월했다. 지난해 채택된 결의 덕분인지 각국 대표들도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년처럼 대(對)북한인권 결의가 정치적 의도에서 취해진 조치라는 비판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는 프랑스의 국제인권연맹연합(FIDH)과 함께 북한인권보고서를 쓰면서 공동연구원들을 이해시키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때문에 비상식적인 북한의 인권상황을 국제사회의 이슈로 공론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주 이 문제를 거론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자료를 더욱 많이 발굴해 국제사회에 알려야 함은 물론이다.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구사하는 한국정부는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장래를 위해 낫다는 생각이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확산되어 있다. 이러한 국내 상황에서 채택된 유엔의 대북한인권 결의는 보편적 기준에 따른 북한인권 문제 공론화라는 관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지난해 북한인권 결의문이 채택되자 국내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국가기관이 마련한 인권전문가 간담회 자리에서는 “북한에서의 영아살해와 남한에서의 낙태가 무엇이 다르냐” “북한의 공개처형과 미국의 전기의자 사형은 단지 문화의 차이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것도 소위 ‘북한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입에서.
올해도 ‘북한에 정치범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하는 단체가 결의문 채택 반대로비를 벌였다. 그들은 ‘선정적이며 균형이 결여되어 있다’며 결의문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와 올해 연속해 유엔 인권위에서 결의문 채택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쓴다.
올해 유엔 인권위가 북한인권 결의를 채택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려먼 먼저 결의문을 작성·제출한 유럽연합(EU)의 대북한 인권정책과 지난해 북한인권 결의문을 채택한 뒤 유엔 인권기관이 취한 후속 조치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유럽연합은 자유·민주주의·법치와 함께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창설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 원칙들은 유럽연합의 정통성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정신으로 간주된다. 이 점은 1992년 채택된 유럽연합조약(마스트리히트조약)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적 가치는 유럽연합의 모든 활동영역에 투영되어 있으며, 대외정책의 초석이다. 아울러 1993년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유럽연합 정상회담은 ‘유럽연합 회원국이 되고자 하는 국가는 민주주의, 법치, 인권, 소수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보장하는 제도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EU의 대화 요청에 북한은 무응답
유럽공동체(EC)는 1995년 5월부터 제3세계 국가들과 양자간 교역이나 협력 협정을 맺을 때 인권에 관한 조항을 포함시켜왔다. 이후로 인권 조항들은 특정 부문에 관한 협정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양자 협정에 포함되었다. 때문에 유럽연합과 북한이 국교수립을 논의할 때 북한의 인권문제는 중요한 사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연합은 1999년 7월부터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그해 10월20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전후해 김대중 정부가 대북 수교를 적극적으로 권유함으로써 유럽연합 국가들은 북한과의 수교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연합은 그간 추구해온 대외정책상의 원칙에 입각해 북한의 인권문제를 주요 의제로 부각시켰다. 대북 수교를 서두른 독일, 영국과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특히 프랑스) 사이에 북한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견해 차이가 드러났다.
그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는 핵이나 미사일 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 해결, 남북한 관계의 실질적 진전, 그리고 외국의 NGO에 대한 구속 철폐 및 북한 정치범수용소 개방이 양국 수교의 선결 조건임을 분명히 했다. 결국 프랑스는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한과의 수교에 대해 유보 내지 거부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