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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 하고 놀자’

르네상스 시대에도 명품족 있었네 ‘상품의 역사’

  • 글: 장석주 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르네상스 시대에도 명품족 있었네 ‘상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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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 침대 휘장, 벽장식, 화려한 의상, 동양의 융단, 긴 의자, 조각된 팔걸이가 있는 등받이 의자, 천장의 화려한 놋쇠 샹들리에, 벽면에 부착된 베네치아제 볼록거울, 갖가지 놋제품들은 오만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조금 더 주의 깊은 관찰자라면 여자의 얼굴과 표정이 그림 속 다른 사물들과 거의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다른 호화스런 가재도구와 마찬가지로 아내조차 이 부유한 남편의 자부심을 드높이는 소유의 한 표상임을 말해준다.

실내에 배치된 사치스러운 물품들은 이 인물화를 주문한 사람의 소유물만은 아니고 그 지역의 다른 상인에게서 빌려온 것들이 뒤섞여 있다. 인물을 중심에 놓고 꼼꼼하게 묘사되어 배치된 이 값진 소유품들은 이 그림이 두 인물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소유물에 대한 긍지와 찬양, 부와 안락에 대한 과시적 예찬임을 증명한다.

구매력과 위엄의 동일시

리사 자딘은 서쪽의 기독교 세계에서 동쪽의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을 아우르며 교역의 양상과 새롭게 싹튼 다문화주의·소비주의를 조명한다. 명문가의 귀족들과 새로 부를 쌓은 상인들은 가문의 권력과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화가들에게 호화로운 그림을 주문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귀족과 상인들은 부와 권력을 과시하고픈 욕망이 시키는 대로 화가들에게 집안을 장식할 그림을 주문하고 이국적인 상품의 구매에 열을 올렸다. 르네상스시대 사람들에게 값비싼 보석과 장신구, 그림, 태피스트리, 인쇄본, 능라(綾羅)와 다마스크 비단, 청동상 듬은 인간의 위엄과 능력을 보여주는 물질적 현존이며 수호신이었던 것이다.

국제무역의 상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동안 국제무역은 활성화되고 동서를 잇는 교역로는 확대된다. 그 교역로를 통해 오간 무수한 상품들은 풍요로운 물질생활의 향락에 푹 빠져버린 르네상스 소비자들의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자꾸만 커지는 그 욕망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 물질적 욕망은 인간적 위엄에 대한 욕망과 겹쳐진 것이다. 위엄을 갖춘다는 것은 욕심나는 물건을 구매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것과 동일시됐다.

값비싼 물건을 사들이고 즐기는 동안 물질에 대한 감성과 기호는 나날이 고급화하는 반면 수입을 초과하는 명품의 구매로 사치스런 소유물이 쌓이는 만큼 빚도 늘어났다. 값비싼 물건을 사들이고 풍부한 물질생활을 누리려는 욕망에는 부자와 귀족들뿐만 아니라 교황이나 추기경도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외 없이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곤차가 추기경의 소유품 목록은 아름다운 보석에서 필사본까지 휘황찬란했지만 그가 죽자 엄청난 빚이 드러났다. 결국 호화스런 소유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채권자들의 손에 넘어갔다. 교황 바오로 2세도 마찬가지로 사후 엄청난 빚을 상환하기 위해 값진 보석과 예술품들을 모두 팔아야만 했다.

아무튼 국제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상인이나 은행가들은 르네상스의 명품족을 상대로 하는 대부업을 통해 더 막대한 부를 일구었다. 쿠엔틴 메치스의 ‘빚 회수자들’이란 그림은 빚이 당시의 풍부한 물질생활과 더불어 일상적 부분임을 증언한다.

카를로 크리벨리의 ‘수태고지와 성 에미디우스’라는 그림에서 시작된 서술은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로 끝을 맺는다. 리사 자딘의 문체는 사실의 고증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건조하고 둔중하다. 리사 자딘은 르네상스 사람들의 소비행태에서 다름 아닌 오늘날 명품족의 모습을 집어낸다. 리사 자딘은 이렇게 쓴다.



“무자비한 경쟁, 강렬한 소비주의, 탐험과 발견, 그리고 혁신이라는 보다 넓은 지평에 대해 끊임없는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 즉 비열한 민족주의나 종교적 편협함에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고 또한 그러한 것들에 대한 숭배도 거부하는 오늘날의 이 세계는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이 그대로 배어 있는 세계인 것이다.”

신동아 200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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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석주 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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