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조선의 奇人·名人 ⑤

‘꽃의 달인’ 유박|“깊은 밤 홀로 꽃 사이에 서니 옷깃 가득 이슬과 향기에 젖어…”

  • 글: 안대회 영남대 교수·한문교육 ahnhoi@yumail.ac.kr

‘꽃의 달인’ 유박|“깊은 밤 홀로 꽃 사이에 서니 옷깃 가득 이슬과 향기에 젖어…”

2/7
[그러니 그 누가 기원(綺園)의 주인보다 낫겠는가? 기원 주인은 몇 이랑의 땅을 개간하여 이름난 화훼(花卉)를 죽 심었다. 붉은 색, 녹색, 자주색, 비취색, 옥색, 담황색, 단향목색, 흰색, 얕은 멋, 깊은 멋, 성글게 심은 꽃, 빽빽하게 심은 꽃, 새로운 꽃, 묵은 꽃, 일찍 피는 꽃, 늦게 피는 꽃, 저물 때 피는 꽃, 새벽에 피는 꽃, 갠 날 피는 꽃, 비 올 때 피는 꽃 등등. 온갖 꽃이 찬란하게 어우러져 빛깔을 뽐낸다. 이렇게 진짜 정취(情趣)로 진짜 빛깔을 대하니 그 무엇이 우열을 다투겠는가.

그렇지만 주인은 화훼의 위치를 안배하고, 심고 접붙이고 물을 뿌리고 물길을 터주며, 흙을 북돋고 가지를 쳐내는 고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멍청하고 완고한 들 늙은이가 한 해 내내 목 뻣뻣하게 베개 높이고 누웠다가, 기원 동산에 꽃이 한창이라는 소식을 듣고서 흔연히 찾아가서는, 온종일 마음 편하게 구경하는 행복에는 비교할 수 있으랴!]

꽃을 가꾸는 기원의 주인이야말로 비단을 짜는 여인보다도, 조화의 비밀을 표현해내는 시인보다도 더 자연이 선사하는 진정한 빛깔, 진정한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요지의 글이다. 가끔 화원을 찾아가 꽃을 감상하는 행복을 최상의 자리에 올려놓은 이 글에서 꽃에 대한 이 시대 사람들의 탐닉과 열정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렇듯 꽃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당대의 마니아 가운데 단연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이가 오늘의 주인공인 화훼전문가 유박(柳璞, 1730∼87)이다. 꽃에 대한 사랑과 전문적 지식에서 그를 따를 자가 많지 않다. 이제 화벽(花癖)의 유박, 유박의 화벽에 얽힌 옛이야기를 만나보자.

유박은 영·정조 시대의 화훼전문가다. 본인이 직접 백화암(百花菴)이란 화원을 경영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화암수록(花菴隨錄)’이란 화훼 전문서를 지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이 책은 조선 전기에 강희안(姜希顔)이 저술한 ‘양화소록(養花小錄)’과 짝을 이루는 그야말로 소중한 저술이다.



유박은 문화 유씨(文化柳氏)로 1730년에 태어나 1787년에 죽었다. 자는 화서(和瑞), 호는 백화암(百花菴)이다. 부인은 파평 윤씨로 윤석중(尹錫中)의 딸이다. 아래로는 딸만 셋을 두어 각기 신세창(愼世昌), 이정륜(李廷倫), 조항규(趙恒奎)에게 시집갔다. 일반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인물이지만, 실학자로 유명한 유득공(柳得恭)의 7촌 당숙이라는 점을 알고 나면 조금은 친숙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꽃과 함께 살리라

그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과거에 오르지도, 벼슬을 하지도 않았다. 황해도 배천군 금곡(金谷)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그의 주변에는 명사들도 별로 없었다. ‘화암수록’에 실려 있는 자작시를 근거로 그가 1778년에 배천군 향교를 이전하는 공사를 감독한 사실과 가끔 서울에 들른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꽃을 가꾼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런 기록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한 일을 밝히고 그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저명한 문인들 사이에서 그의 애화벽(愛花癖)이 회자되었고 그 또한 자신의 취미와 행적을 감추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시골에서 화원을 경영하는 그였지만 문인들로부터 받은 시와 산문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따라서 ‘화암수록’과 문인들로부터 받은 글의 도움을 받는다면 유박의 독특한 삶과 내면은 복원이 가능하다.

유박이 살았던 곳은 황해도 배천군 금곡이지만 그 전에 어디서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젊은 시절엔 한때 서울에 머물렀던 것 같다. 그는 20대 초반에 금곡에 정착한다. 금곡은 배천군 군치(郡治)로부터 동쪽으로 25리 떨어진 곳이다. 유명한 벽란도(碧瀾渡)의 안쪽에 있는 포구로 경기와 해서지방의 해상교통을 중계하는 요충지이며 해서의 전세(田稅)가 모이는 금곡창(金谷倉)이 있었다. 유득공은 ‘상량문’에서 그가 이곳으로 이주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꽃의 주인은 누구인가? 유아무개 선생이다.헌원씨(軒轅氏)의 먼 후예로서 조선에 사는 한 포의(布衣)라네.작은 녹봉 얻자고 허리 굽히지 않고 귀향한 것은 문 앞에 버들을 심은 도연명(陶淵明)을 본받음이요,계책 하나가 남아 홀연히 바다에 뜬 것은 배를 타고 황금을 베푼 범려(范?)를 사모함이네.남과 나의 시시비비는 모두 잊었으니 나비가 장자가 되고 장자가 나비가 된 격이요,귀천과 영욕을 입에 올릴 필요가 있으랴, 엄군평(嚴君平)이 세상을 버리고 세상이 엄군평을 버린 것과 같다.그리하여 소요하고 노니는 생활로 세월을 보내는 방법을 삼았네.

2/7
글: 안대회 영남대 교수·한문교육 ahnhoi@yumail.ac.kr
연재

조선의 기인·명인

더보기
목록 닫기

‘꽃의 달인’ 유박|“깊은 밤 홀로 꽃 사이에 서니 옷깃 가득 이슬과 향기에 젖어…”

댓글 창 닫기

2022/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