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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MBC 연기대상 한꺼번에 거머쥔 고두심

고운 여자 애틋한 엄마, 따뜻한 사람

  • 이나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byeme@donga.com

KBS·MBC 연기대상 한꺼번에 거머쥔 고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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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는 탁자에 엽차 한 잔 놓으며 ‘예’ 하고 고개 숙이는 역할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갈대’라는 드라마에서 김혜자, 이정길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정숙한 교수 부인 역을 맡으면서 마침내 시청자들에게 ‘고두심’ 이름 석 자를 알리게 됐다.

“맨처음 주연부터 아예 유부녀였으니까…. 서른이 되기 전부터 내처 아줌마였고, 마흔이 안 됐을 때도 노인 역이 들어왔어요. ‘정화’의 김만덕 할머니(보릿고개에서 제주도민을 구한 18세기 여성갑부)나 ‘설중매’의 인수대비 역이 그랬지요.”

1990년에 가야금 명인 이금화의 삶을 그린 ‘춤추는 가얏고’를 찍었다. 고두심은 외할머니 사진을 책상 위에 붙여놓고 매일 뚫어져라 바라보며 어릴 적 할머니의 말투, 걸음걸이와 행동거지 따위를 되새기려 무섭게 집중했다.

“할머니들 특유의 구부정한 자세 있잖아요. 그 미묘한 움직임을 작품 속에 녹여낼 수만 있다면 내일 바로 늙어 꼬부라진대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러나 누가 뭐래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두심은 ‘우리 시대의 맏며느리’였다. 1981년 시작해 2002년에야 막을 내린 ‘전원일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그렇게 왈가닥이었던 거 생각하면 지금 나는 도무지 내가 아닌 것 같아요. 가끔 거울 보며 그래요. ‘너는 누구니, 어떤 사람이니, 니 인생 자체가 위선 아니니?’ 하고. 뭐랄까… 가끔은 내 진짜 삶은 그만 없어져버린 것 같은 게, ‘전원일기’의 정숙한 맏며느리가 찍어 누르는 힘 때문에 어느샌가 시청자들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만 움직이게 돼버렸거든.”

그녀는 화가 나면 잠을 잔다.

“사람들이 그래요. 화가 나는데 어떻게 잠이 오냐고. 그런데 난 어떠냐면, 내 직업의 특성상 자칫 잘못 행동했다간 도마 위 생선처럼 난도질 당하기 십상이거든요. 그러니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그저 자기만 하는 거예요. 뒤집힌 속 안 보이려고, 약하고 흐트러진 모습 감추고 싶어서.”

귀한 아들을 홀로 제주도로

가끔은 확 피어버리고 싶다, 망가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느냐고 했다. 그녀는 “생각으로야 별거 다 해 봤지만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어설퍼.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 그게 편하고 자유스럽고 좋다면 그렇게 해 보겠는데 아마 불편할 거예요. 아마 죄의식까지 느낄걸. 그래서 연기가 좋은 거예요. 배역 속에서 마음껏 분출할 수 있거든. 실제로는 할 수 없는 일도 연기 속에서는 다 기회가 오잖아요.”

연기로 인해 숨막힌 삶을 살았지만, 숨통을 틔워주는 것 또한 결국 연기뿐인 인생인 셈이다.

전원일기의 종영, 그리고 이어진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와 영화 ‘인어공주’, 또 다른 드라마 ‘한강수타령’이며 ‘그대는 별’에서 그녀는 한결같이 ‘어머니’가 되었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먼 길’에서도 어지럼증 때문에 차를 타지 못해 막내딸 결혼식장까지 3박4일을 걸어가는 칠순 어머니를 연기한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난생 처음 올곧이 혼자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어머니’란 말이랑 ‘엄마’랑 말은 굉장히 다르게 다가와요. ‘어머니’가 말 그대로 전통적 어머니, 나는 없고 오직 헌신 봉사만 하는 사람이라면 ‘엄마’는 왠지 ‘그래, 나도 있고 너도 있는 거지’ 하고 말하는 이 같아요. 아마 요즘 여자라면 스스로도 그저 ‘엄마’ 정도로만 불리고 싶을 걸.”

그녀 또한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엄마’였다. 아이가 아파 열이 40도씩 되어도 촬영장 가느라 대문을 나서면 거짓말처럼 싹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일을 했겠어요. 하지만 난 늘 내 어머니를 닮으려 노력했어요. 그거, 노력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차이가 무척 크거든요. 아이들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보기보다 냉정한 엄마이긴 했지만, 아이 곁을 늘 지키지 못했다 해서 죄의식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에 가 보면 세상 어느 것도 정답은 없거든요.”

고두심은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뒀다. 25살 난 딸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해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19살 난 아들 또한 꽤 오래 전 같은 곳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녀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을 제주도 제 이모 집에 보내 1년 반 동안 지내게 한 일이 있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거든요. 지금도 예뻐 죽겠어. 그러니 내가 참 독한 에미지요. 그걸 자연을 알아야 한다고, 사촌 세 명과 부대끼는 생활 속에서 뭔가 다른 걸 좀 배워오길 바라며 보내버렸지요. 처음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장에 ‘엄마 보고 싶다’ 넋두리를 해대더니 나중에는 굉장히 잘 적응하더라구요. 지금도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 타고 학교 가던 그 시절이 많이 그립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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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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