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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代 정권 대북협상 주역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충격 특강

“미국은 남북관계 호전될 때마다 북핵의혹 제기, 부시 정부는 협상 아닌 항복 얻으려 6자회담 열었다”

  •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3代 정권 대북협상 주역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충격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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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통일비용을 누가 먼저 계산했는지 아는가. 일본사람들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번 따져봐야 한다. 일본은 남북한 통일비용을 한껏 부풀려 놨다. 그리고 한국의 능력으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 돈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통일비용이 오늘날 10배, 20배로 엄청나게 늘었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이것저것 막 얹은 것이다.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교수는 일본에서 10년 동안 3600억달러 정도로 계산해놓은 통일비용을 4조달러까지 늘려놨다. 이것도 해줘야 하고, 저것도 해줘야 하고….

그 때문에 한때 우리 사회에는 통일회피 현상이 유행했다. “그렇게 많이 부담해야 한다면 통일은 겁나는 것이 아니냐, 골치 아픈 것 아니냐, 통일돼서는 안 되겠다”면서. 어른들은 고사하고, 부잣집 동네 어린아이들일수록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 참 비극이다.

미국의 예상과 달리 북한 정권이 오래가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우리는 항상 북은 악, 미국은 선이라고만 보고 대북관계를 정리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내가 친북은 아니다. 국제정치를 선악 개념으로 볼 수는 없다. 그래서는 답이 안 나온다.

내가 “북한의 주의·주장, 북한이 가지고 있다는 대량살상용 대한(對韓)공격용 무기는 기본적으로 협상용일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모 언론사는 사설에서 내 실명을 써가며 “북한을 대변해준다”고 비판해 아직도 친북좌파 비슷하게 돼 있지만 아니다. 실사구시 관점에서 북한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고, 북한이 전략전술 차원에서 나오면 그것은 그것대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부시의 ‘클린턴 정책 거부원칙’

미국과 북한, 누가 먼저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어쨌든 북한이 약속한 핵동결은 IAEA 사찰로 확인됐고, 미국도 중유를 제공했다. 하지만 경수로 공사가 계속 늦어졌다.

공사는 당초 1995년에 시작해야 했지만, 그 전에 약속하거나 합의해야 할 것이 많았다. 의정서나 부지사용에 관한 합의 등이 그것이다. 북한은 자기 땅에 건설하는 것이지만 자기들도 여러 가지 손해를 보면서 허용한 것이기 때문에 사용료를 내라고 했다. 우리가 개성공단 개발사용료를 내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래서 공사가 늦어졌다. 합의서를 만드는 과정에 북한이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상황을 꼬이게 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그 뒤 남북협정서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북한은 이쪽에서 제안하면 그걸 받아가지고 어디에 함정이 있는지, 독이 묻어 있지는 않은지 찾아내기 위해 무지하게 고민한다. 그러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결국 서명 3개월 이내에 공사를 시작하기로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공사는 1998년에 착공했다. 그런데 공사가 3~4년 늦어지면서 미국과 북한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시간이 또 흘러서 공사는 기초공사 조금 하다가 만 정도에서 그친다. 북한은 불평하기 시작했고, 이것을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썼다.

그러다 2001년 부시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ABC 정책’을 쓰면서 북핵문제가 꼬이기 시작한다. ABC는 ‘Anything But Clinton’의 약자로 ‘클린턴 정부가 한 것은 무조건 안 된다(클린턴 정책 거부원칙)’ ‘클린턴을 부정하고 당선된 정부이기 때문에 그때 이야기 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도 정돈(停頓·나아가던 것이 막힌)상태로 들어간다.

2001년 3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여러 가지 요구와 주문을 한 것이 본격적으로 노정되면서 남북관계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2002년 1월13일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했다. 한미군사훈련도 재개됐다. 잘나가던 남북관계에 미국이 노골적으로 제동을 거는 것이 분명해지고, 자신들을 악의 축으로까지 규정하자 북한도 시큰둥해졌다.

문제가 자꾸 생기니까 2002년 4월 김대중 대통령은 임동원 외교안보특보를 특사자격으로 북한에 보내 김정일과 직접 대면하게 했다. 긴 시간 대화를 나눈 끝에 김정일 위원장이 “좋다. 남북관계 원상회복하자”고 말하면서 그해에 33차례 남북대화가 이뤄지고, 그 과정에 남북간의 교역은 6억4000만달러로 크게 확대됐다. 인적 왕래도 전년도 8500명에서 1만4000명으로 늘었다.

미국, HEU 문제제기 2개월 전 예고

남북관계가 원상회복된 그해 10월에 또다시 핵문제가 불거진다. 이에 앞서 8월28일 서울에 온 네오콘 강경파 존 볼튼 차관이 최성홍 외무장관에게 “북한이 지금 핵과 관련해 뭔가 위반하고 있다. 문제가 있으니까 곧 터질 것이다”고 예고했다. 그리고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에 가서 “고농축우라늄 계획(HEU)을 추진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다”고 폭로한다.

북한은 처음에는 “없다”고 부인하다 갑자기 태도를 바꿔 “있다, 어쩔래? 증거를 대라”고 반박했고 미국은 “증거는 네(북한)가 더 잘 알 테니까 네가 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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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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