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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일제침략·독립운동사 연구 태두 신용하 백범학술원장

“골수 친일파 700명 토지 환수해 매국사상 뿌리뽑아야”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일제침략·독립운동사 연구 태두 신용하 백범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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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와 김구 선생의 비교는 수많은 논문이 나올 수 있는 주제이지만 다음 질문을 위해 짧은 문답으로 끝냈다.

신용하 원장은 필자와 사진기자에게 2002년 백범학술원이 펴낸 ‘백범일지’를 한 권씩 선물로 주며 “동아일보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백범이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虹口) 공원 의거로 일제의 현상금이 붙어 도피 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은 상하이(上海)에서 끼니를 제대로 못 잇는 고통을 겪었다. 백범의 모친은 밤이 이슥해지면 야채상의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배추 겉대를 골라 찬거리로 삼았다. 중국에서 먹고살기가 어려워지자 모친은 손자(김신)를 데리고 인천항을 통해 귀국했다. 인천에서 여비가 떨어진 모친은 동아일보 인천지국에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했다. 인천지국에서는 서울 갈 여비와 차표를 사드렸다. 서울 동아일보 본사를 찾아가자 황해도 사리원까지 보내드렸다(백범학술원 간행 ‘백범일지’ 370쪽).

동아일보는 당시 백범 모친과 아들이 귀국했다는 기사를 사진과 함께 실었다.

한일협정 비밀문서 완전 공개해야



-정부가 30년을 훨씬 넘겨 묻어두고 있던 한일협정 관련 외교문서를 공개했습니다. 정부는 재판에서 질 수밖에 없으니까 공개했다고 하지만, ‘박정희 때리기’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한일협정 문서를 완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일협정은 원래 미국이 동북아시아 지역에 중국·소련에 대항하는 반공의 띠를 두르기 위해 추진한 프로그램이었어요. 미국은 30년이 지난 1996년 1월1일자로 한일협정 관련 문서를 공개했어요.

미국 CIA 도쿄지부 책임자가 미국 대통령과 CIA 국장에게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한국측 대표가 일본 11개 재벌로부터 6600만달러의 기부금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그 돈을 주로 공화당 정치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CIA 보고서에 이 뇌물 때문에 한일협정이 일본측 주장대로 체결된 것처럼 돼 있어요.

한·일간 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대표단이 일본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은 심각한 잘못입니다. 국익을 훼손하는 협정을 체결하는 일이 다시 없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대외협정 때 상대국에서 뇌물을 받는 부패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한일협정 비밀문서들은 완전 공개돼야 합니다.”

-일본군위안부는 정부가 1993년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생활안정지원법’을 만들어 보상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도 국가보훈처에서 보상하고 있지요. 그러나 징병·징용 피해자의 경우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포괄적으로 배상금을 받아 떼어먹었다는 논리도 성립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한일 기본조약엔 한국정부가 포괄적 배상을 받은 범주로 징용·징병만 기록돼 있습니다. 협정문에 원폭 피해자와 일본군위안부는 빠져 있어요. 일본정부는 협약문에 없는 건 다 배상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징병·징용 피해자들에겐 일본정부가 안 해주면 한국정부에서라도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상으로 받은 3억달러는 경제협력 자금으로 포장됐는데 이번에 공개된 협정문을 보니까 징용·징병자 중 사망자와 부상자들에 대한 배상금이었어요.

정부가 떼어먹은 것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징용·징병자를 찾아 배상해줄 의도가 없이 받아온 것입니다. 3억달러는 1966∼75년 10년 분할로 약 3000만달러씩, 그것도 현금이 아니라 일본 제품으로 받았습니다. 수리하는 부속품도 일본제를 사 가는 조건으로 들여온 것이에요. 포항제철과 고속도로 건설에 썼다고 하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이고, 실제로는 거기에 물자가 조금씩 들어갔을 뿐입니다. 포항제철은 배상금이 아니라 대부분 차관과 내자로 건설됐습니다.”

1996년 독도연구보존협회 창립

-일본 외무성 아시아 국장이 협상과정에서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폭파시켜 없애버리면 차라리 문제가 없을 것이다”고 발언했는데요.

“한일협정 이전에는 평화선이 존재했어요. 평화선은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전제에서 독도와 일본 오키시마(隱岐島) 중간에 그어졌어요. 독도를 폭파해버리면 울릉도와 오키시마의 중간에 선이 그어져야죠.

1999년 한일 어업협정 때는 한국정부가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기점을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로 잡았어요. 그리고 독도를 한일 공동관리 수역이라고 하는 중간수역 안에 포함시키는 우를 범했죠. 한국이 후퇴한 겁니다. 이제 일본은 ‘독도를 폭파하자’는 소극적 입장을 버리고 독도를 뺏으려는 적극적 공세로 나오고 있습니다.”

1994년 유엔에서 자국 영토를 기점으로 200해리까지의 수역을 EEZ로 규정하는 신해양법이 공포됐다. 일본은 1996년 2월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 EEZ의 기점이라 발표하고 울릉도와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의 중간선을 한일 양국의 EEZ 구획선으로 하자고 한국에 제안했다.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외교 공세에 놀라 독도수호를 표방한 단체가 여럿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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