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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수사 풀 스토리

용의자 3700명 DNA, 청바지 정액과 대조… 2인 이상 면식범, 보름달 아래 옷 벗겼다

  •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수사 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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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양은 수영 강습을 받기 직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강습 끝나면 데리러 올 수 없느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볼 일이 늦게 끝나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이것이 노양과 어머니의 마지막 통화다.

172cm의 키에 긴 생머리를 한 노양의 모습은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버스정류장 주변 상점 주인들이 기억할 만큼 또렷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노양은 이날 청바지에 연보라색 면 티셔츠, 검은색 카디건을 입었다. 어깨엔 2개의 작은 가방을 둘러멨다. 채 물기가 마르지 않은 긴 머리카락에선 상큼한 샴푸향이 풍겼다.

수영을 마친 노양은 오후 8시25분 태안읍 화성복지관 정류장에서 경진여객 34번 버스에 올라탔다. 앞에서 세 번째 의자에 앉은 그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누나 금방 (집에) 갈게”라고 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에게도 “늦어지면 두 사람이 함께 귀가하라”며 차례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노양이 집에서 2km 가량 떨어진 와우리공단 정류장에 내린 시각은 오후 8시35분. 버스 안의 CCTV는 하차하는 노양의 마지막 모습을 찍었다. 이곳에서 ‘화성’ 택시를 타면 봉담읍에 있는 집까지 5~10분 걸린다. 그런데 이후 노양의 행적은 묘연해졌다.

누가 노양을 차에 태웠을까. 범행에 사용된 차종은 무엇일까. 범행 장소는 어디일까. 이 모든 의문을 풀기 위해선 목격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노양이 행방불명된 와우리공단 정류장은 200여개의 상점이 밀집한 번화가다. 납치행각을 벌이기엔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지역인 것. 한편 노양의 귀갓길과 유류품이 발견된 곳은 43번 국도로 향하는 도로로, 이곳 역시 보통리 저수지를 둘러싸고 카페와 식당 등이 들어서 있어 일반인이나 아베크족 차량의 왕래가 적지 않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에 큰 기대를 걸었다.

수사 결과, 이날 밤 노양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4명의 목격자가 나왔다. 그러나 이들의 진술은 모두 엇갈렸다. 정류장에서 그를 목격한 시각도, 주변에서 봤다는 차량의 종류도 다 달랐다. 버스에서 노양과 함께 내린 승객조차 그가 어디로 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허위 제보와 역술인의 예언

와우리공단 버스정류장 맞은편에서 마트를 경영하는 30대 손모씨는 평소 과일을 사러 자주 들르던 노양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노양을 목격한 시점이 실종 당일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여대생이 버스정류장 옆의 콘크리트 받침대에 앉아 있었어요. 앞뒤로 다리를 흔들면서…. 오후 8시40분에서 9시 사이쯤 되려나. 에스페로나 세피아 같은 승용차가 근처에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다른 목격자, 대리운전기사 김모씨의 진술은 약간 다르다.

“차를 몰고 정류장을 지나다가 봤는데, 머리 긴 여학생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주변에 RV차량이 있던 걸로 기억해요. 그게 오후 8시55분에서 밤 9시12분 사이쯤일 겁니다.”

국과수는 11월5일, 노양과 함께 버스에서 내린 여성 Y씨(31)와 당시 노양이 탑승한 버스의 운전기사 김모(48)씨에 대해서도 최면수사를 벌였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실낱 같은 희망은 무거운 절망으로 내려앉았다.

경찰은 우선 목격자들이 지목한 승용차 및 RV 차량을 모두 수사대상에 올렸다. 노양의 부모는 “딸이 택시를 탄 것이 틀림없다”며 지역택시 운전기사들을 중점 수사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지역 일대의 렌트카 차량 이용자, 지역 택시운전기사 등도 모두 용의선상에 올랐다. 수사대상이 된 차량만 무려 2154대였다.

목격자들의 엇갈린 진술로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졌다. 경찰은 시민 제보전화를 기다렸지만 수사본부가 설치된 화성경찰서 정남지구대로 100일간 걸려온 제보전화는 고작 80여통. 다른 사건에 비해 턱없이 적을 뿐 아니라 걸려온 전화도 대부분 신빙성 없는 것이었다.

“여기 서울인데요, 우리 헬스클럽에 다니는 한 남자가 수상해요. 노양이 실종된 이후 몸에 상처가 생겼거든요. 한 번 수사해보세요.”

“우리 동네에 의심스러운 사람이 최근 귀국했는데, 평소 행동도 불량스럽고 행적도 의심스러우니 잡아가이소. 여기 어디냐고예? 부산입니더.”

전국 각지에서 날아든 엉뚱한 제보들은 ‘혹시나’ 하는 수사팀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개인적인 원한을 풀고자 자신의 영업권을 침해하며 불법으로 렌트카 영업을 해온 업체를 신고하기도 했다.

게다가 ‘연쇄살인의 도시’로 악명 높은 화성지역 주민들이 마음을 닫아버리면서 수사는 더욱 어려워졌다. 경찰이 탐문수사를 벌일라치면, 주민들은 “남편이(혹은 아버지가)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랬다”며 대답을 피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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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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