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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⑮

仙道 맥 잇는 계룡산 일사(逸士) 정재승

“가고 또 가면 알고, 행하고 또 행하면 깨달으리라”

  •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仙道 맥 잇는 계룡산 일사(逸士)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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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수입도 없다. 수입이 없지만 아직까지 굶어죽지 않고 산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몸에서 궁티가 나지 않는다. 계룡산 산신령이 보살펴주는 것인가. 옛부터 불가의 승려들 사이에서는 ‘흉년이 들어서 세상사람 1000명이 굶어죽은 후에야 비로소 눈이 먼 중이 1명 굶어죽는다’는 말이 떠돈다. 그만큼 산에서 사는 사람은 굶어죽기도 힘들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정 선생은 눈이 커서 좀스럽지 않고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몸집도 커서 한눈에 대장부라는 느낌이다. 키 180cm에 몸무게 90kg으로 우람한 풍채를 지닌 호남형이다. 이만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면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데 아직 독신이다.

-왜 산에서 살게 됐나.

“하다 보니까 그리 되었다.”

이태백의 한시에 나오는 ‘문군하사서벽산(問君何事棲碧山·당신은 무슨 일로 청산에서 사는가)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웃으면서 대답을 하지 않으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하다)’ 구절과 비슷한 대답이다.



선도의 가풍 따르는 형제들

-산에서 혼자 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선도(仙道)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무엇인가.

“우리 온양정씨(溫陽鄭氏)는 대대로 낭가(郎家)의 전통이 이어져온 집안이다. 어릴 때부터 조부님은 ‘우리 집안은 단군 때부터 낭가의 전통을 이어왔으니, 이 가풍을 명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뿐 아니라 집안 형제들 모두 낭가의 가풍을 익히며 자랐다. ‘낭가’의 ‘낭’은 ‘화랑(花郞)’이라고 할 때의 ‘낭’자다. 즉 선교와 선도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조부께서도 직접 낭가 공부를 하셨는가. 집안 이야기가 궁금하다.

“조부님 함자는 정낙훈(鄭樂勳)이다. 이승만 정부에서 충북지사와 농림부 장관을 지내셨다. 직접 선도 수련을 하지는 않았지만, 집안의 선도 관련 유적과 자료를 잘 보관하고 정리하셨다. 광복 후 선교와 낭가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선도관련 자료의 귀중함을 알고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셨다. 아버지(정승희·鄭承熙)도 관료(국무총리실 연구실장) 생활을 하시느라 입산수도는 못했지만, 할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자식들에게 가풍을 이어야 한다고 당부하시곤 했다.”

-형제들도 선도에 관심이 많나.

“우리 집은 다섯 형제다. 큰형님이 이화여대 중문과 정재서(鄭在書) 교수다. 한자문화권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집이라 할 수 있는 ‘산해경(山海經)’을 번역한 바 있다. 이 책은 신조(神鳥) 토템의 신앙을 가졌던 동이족(東夷族)과 관련이 깊다. 신조 토템이란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원시신앙이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선도 사상과 기본 골격이 유사하다. ‘산해경’이 태동한 산둥반도 일대는 한족보다는 동이족과 인연이 많은 곳이다. 중국의 사마천은 산둥반도 지역에서 태동한 ‘산해경’을 이질적인 문화권으로 간주했고, 그래서 자신의 저술에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형님이 ‘산해경’을 번역한 계기도 선도의 가풍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에 낸 ‘이야기 동양신화’라는 책도 기본적으로 선도와 도교의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셋째형님인 정재겸(鄭在兼)도 현재 독신으로 계룡산에서 같이 공부하고 있다. 막내동생인 정재형(鄭在亨·동국대 연극영화과 교수)은 선도와 관련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낭가의 전통을 재구성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보면 다섯 형제 가운데 넷이 선도와 직간접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정 선생의 집안은 선교(仙敎)의 명문가다. 유불선 삼교 가운데 집안이 이어지는 경우는 주로 유가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으니 집안이 이어질 수 있다. 불가는 출가해서 자식을 낳지 않지만, 그 대신 제자를 길러 법맥을 잇는다. 더구나 사찰과 ‘승가’라는 조직이 있으니 오늘날까지 1000년이 넘게 전승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선가 집안이 가장 귀하다 할 수 있는데, 정 선생의 집안이 바로 희귀한 선가의 맥을 이어온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벼슬을 하면서도 선도를 닦은 두 집안이 있다. 바로 온양정씨와 양천허씨(陽川許氏)다. 양천허씨라면 허균과 허미수 집안을 가리킨다. 신선에 관심이 많아 방외지사들과 자주 어울린허균은 전라도 함열 태생으로 선도를 닦아 80대에도 얼굴에 대춧빛이 돌던 도인 남궁두(南宮斗)를 만나, 그의 수도과정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남인의 영수로, 63세에 처음 벼슬길에 오른 이인 허미수(許眉?)도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에 선도인(仙道人)으로 입전된 수암(守菴) 박지화(朴枝華)의 계보와 관련이 있다. 허미수의 아버지가 박지화 밑에서 공부한 것이다. 박지화는 화담 서경덕의 제자다.

또 허미수의 외조부가 그 유명한 임백호(林白湖)다. ‘조선의 장자(莊子)’로 비유될 만큼 평생 전국을 호방하게 유람한 임백호의 외손자였으니, 그 가풍을 미뤄 짐작할 만하다. 허미수는 평생 기인, 달사들과 교류하며 전국의 명승지를 수백 군데 직접 탐사했다. 겉으로는 유학자이지만 내면으로는 선도인이기에 그런 삶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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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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