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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평

현대사 홍수’에 허우적대는 한국 영화

향수, 패러디, 공포, 판타지에 가려진 역사적 진실

  • 김경욱 영화평론가 nirvana1895@hanafos.com

현대사 홍수’에 허우적대는 한국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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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홍수’에 허우적대는 한국 영화

‘실미도’는 북파공작요원들을 1970년대라는 ‘역사의 희생’이 아니라 ‘역사를 위한 희생’으로 몰아넣는다.

여기서 질문하고 싶은 것은 ‘실미도’가 끔찍한 실화를 다루고 있음에도 어떻게 그토록 대중의 관심을 끄는 영화가 됐는지다. 영화는 군사독재 시절 ‘실미도 난동사건’으로 불리며 지난 30여 년간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다뤘다.

1968년 1월21일 일어난 남파 공작원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건을 계기로 684 북파공작원 부대가 창설됐고, 실미도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던 부대원들이 정치적 상황 변화로 오히려 제거대상이 되자 탈출을 시도, 서울로 진입했다가 대부분 자폭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사건 초기, 당국은 무장공비 21명이 침투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가 나중에는 공군이 실미도에서 관리하던 특수범 23명의 난동이라고 정정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이 꽤 있고 부대원 가운데 생존자도 있기 때문에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다른 여러 사건이 그랬듯이 ‘카더라 통신’을 통해 사건의 이면에 대한 얘기가 은밀하게 회자됐다.

영화가 개봉되고 ‘실미도 사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시도들(예를 들어 제물포고교 황재순 교감이 인천광역시 교육청에 공개한 ‘실미도사건 일지’가 있고, 영화 제작 이전에는 MBC가 1999년 12월19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방영한 ‘실미도 특수부대’가 있다)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사건의 전말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영화와 밝혀진 사실을 비교하면, 부대원들은 영화에서보다 훨씬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훈련중 사망자가 영화에서는 세 명이지만 실제로는 일곱 명이며, 영화 속 인물과 실재인물의 행동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영화 ‘실미도’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며, 자막을 통해 일부 내용을 각색한 사실을 알리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각색과정에 생성된 가해자와 희생자에 대한 관점이다. 주인공 강인찬(설경구 분)은 월북한 아버지 탓에 연좌제에 걸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렵자 조폭으로 활동하다 살인미수로 수감돼 사형선고를 받는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 앞에 최재현 준위(안성기 분)가 찾아와 ‘이 칼, 나라를 위해 다시 잡을 수 있겠냐’고 말한 뒤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한다.

다음 장면에서 교수형이 집행되는 인물은 강인찬이 아니라 한상필(정재영 분)이다. 한상필이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죽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장면 다음에 실미도로 향하는 배가 나타난다. 조 중사(허준호 분)를 비롯한 군인들을 제외하고 그 배에 탄 31명의 남자 중에 강인찬과 한상필이 보인다. 영화에서는 684북파공작원부대에 소속될 31명의 남자는 모두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극악한 범죄자임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반인과 공군 출신이 절반이었다고 한다.

실재 사건을 영화화하는 과정에 극적 장치를 위해 허구의 인물이 만들어질 수 있고 실존인물이 다소 각색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을 빨갱이의 아들로 설정하고 684부대원 전원을 사형수로 각색해 대중에게 호소하는 심리적 효과는 무엇일까.

강인찬은 “그 새끼(아버지) 찾아가서 머리통에 구멍 내서 빨갱이 피는 어떻게 다른지 내 눈으로 꼭 볼 거야… 김일성 모가지 따서 그 새끼 앞에 들이대려면 나 북한 가야 돼” 같은 대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아버지를 뼛속 깊이 증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일 빨갱이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자식을 버린 아버지라 해도 ‘그 새끼’라는 표현이 가능했을까. 남북한의 화해 분위기가 상당히 진전된 2003년의 남한에서 거듭 반복되는 ‘김일성 모가지를 딴다’는 대사와 형언할 수 없는 빨갱이 혐오증은 역사의 상처를 깊이 자극한다.

고민 없는 냉전논리 차용

강인찬은 연좌제나 분단의 현실을 불평하거나 북파공작의 부당성을 돌아보는 대신 빨갱이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만한 일생일대의 소임이라고 믿는다. 다른 대원들도 사형수의 멍에를 걷고 당당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북한에 가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받는다. 심지어 그들은 정치적 상황 변화로 북한행을 가로막는 기간병들에게 ‘무조건 보내만 달라’고 한 목소리로 절규한다.

여기서 영화의 기이한 논리가 성립한다. 문제의 초점이 북파공작을 펼친 ‘잘못된’ 정책에서 684부대원들을 북한에 가지 못하게 막은 ‘잘못된’ 정책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국의 정책 변화는 대립 일변도의 남북관계가 대화를 통해 완화될 조짐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684부대원 제거 공작에 관련된 중앙정보부 차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실미도 난동사건 진상보고서’를 옆으로 치우고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준비보고서’를 집어든다. 이와 동시에 영화의 비극은 완성된다.

그러나 영화는 남북간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끝내 684부대가 월북해 주석궁을 기습했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한반도 전체가 불바다로 초토화할 수 있는 끔찍한 가정에 대해 영화는 단 한 번도 질문하지 않는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한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그리고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인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실미도’는 역사의 상처와 분단의 현실을 매개로 한 냉전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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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영화평론가 nirvana1895@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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