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판단을 하는 데 있어 인상은 요즘의 외모지상주의와는 사뭇 다르다. 인상학이란 과거로부터 내려온 철학적 기초가 담긴 학문이며 우주원리를 담고 있다. 이에 비해 외모지상주의는 외모가 개인과 개인의 우열과 성패를 가름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루키즘(Lookism)이다. 미국에서 건너온 것 같지만 일찍이 어느 나라 어느 인종에서건 있었다.
과연 외모가 ‘승부사’일까. 성형의사인 필자는 자주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곤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얼짱 문화’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성형외과와 인터넷 리크루트 회사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1264명의 예비취업자 가운데 98%가 “외모가 취업에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으며, 이들을 뽑는 기업의 인사담당자 584명 중 94%가 “채용시 외모를 고려한다”고 밝혔다. 또 제일기획이 13∼43세 여성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파란통신 라이브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68%가 “외모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답했으며, 78%는 “외모 가꾸기는 멋이 아니라 생활의 필수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남녀를 불문하고 현대인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상당한 중압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외모를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외모를 더욱 가꾸게 한다. 날씬함에 대한 강박관념은 다이어트 열풍을 일으키며 건강을 해칠 정도에 이르렀다. 비만도와 관계없는 다이어트 강박현상까지 만들어냈었다. 성형이나 다이어트를 한 뒤 심각한 부작용으로 건강을 잃거나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종종 보도된다.
이런 상황을 단지 한 개인의 책임으로만 몰 수는 없다. 외모지상주의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매스미디어, 미용성형과 비만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나 다이어트 산업계는 여성의 아름다움은 꾸미기 나름이며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위적인 성형과 살 빼기를 자기관리의 능동적 실천인 양 의미화하고 자기계발이라는 식의 허위의식을 유포한다.
외모지상주의는 다양한 문화가 부채질한 게 사실이지만, 대중매체와 기성세대는 그러한 신드롬을 방치했다. 많은 사람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신문, TV, 라디오, 잡지, 사이버 공간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성형 정보를 접한다. 또 기업의 광고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기에 광고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장면들로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외모가 출중하고 인기 높은 연예인들을 출연시킨다. 이러한 사회현상으로 인해 모방심리가 작용, 성형수술 과소비 등의 폐해가 나타난다.
외모의 기준은 있는가
외모의 기준은 무엇인가. 탤런트 송혜교나 김희선이 기준인가. 아니면 서양 미인인 캐서린 제타 존스나 니콜 키드먼이 그 기준인가. 우선 미의 기준을 정하는 척도가 있다면 그것이 과연 어느 정도이고 그러한 외모를 살리기 위해 수술이 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아름다운 여성의 기준으로 작고 흰 얼굴에 쌍꺼풀 진 눈과 높은 코를 가진, 마르고 키 큰 여성을 든다. 이는 서구문화가 우리 사회에 들어오면서 대중매체를 통해 널리 전파된 것으로, 특히 수많은 상품광고에서 무차별적으로 반복돼 보여져왔다.
그러나 외모를 중시하는 이런 분위기는 늙어가는 몸에 온갖 성형을 하고 다이어트의 결과로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해도 일시적일 뿐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고 필연적으로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여성을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빠지게 만든다.
외모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자는 진부한 말은 애당초 하지 않겠다. 그러나 외모의 다름을 다양함과 개성으로 인정할 수는 없을까. 획일화된 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외모 강박증의 출구는 어디일까. 제한적이나마 수술을 통해 사랑스러운 얼굴이 된다거나 콤플렉스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실제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성형에 대한 지나친 기대야말로 금물이다.
개성시대라는 요즘도 여전히 성형외과를 찾아 어떤 연예인처럼 성형해달라는 이들이 있다. 얼굴뼈에서부터 그 분자구조와 세포크기가 다 다르고 수십 년을 그 얼굴로 살아왔는데 수술을 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을까. 그들이 내미는 사진을 보면 최근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끄는 연예인이거나 서양 모델, 영화배우로 얼굴선과 코의 모양이 비교적 잘 다듬어진 얼굴이다.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참고자료로 가져온 것 같지만, 실제로 자기 동일시와 모방심리에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다.
수술로써 도울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외형의 변화이고 뼈와 연골과 연부조직의 덧셈과 뺄셈일 뿐 미적분이 아니다. 때문에 덧셈과 뺄셈뿐인 초등학교 수준의 수술방법에는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된다. 물론 현대 성형수술의 수준이 낮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미 있는 변화를 요구하는 환자의 외모 콤플렉스를 똑같이 찍어내거나 흉내내기로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그와 유사하거나 자신의 매력 포인트에 맞게 맞춤설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이야말로 역기능과 순기능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 성형 의술이 지향해야 할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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