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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슈

싱가포르大 교수의 도발적 문제 제기

“한국 재벌개혁은 잇속 차리는 외국인, 공허한 신자유주의자, 적과 동침한 노동세력 합작품”

  • 글: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경제학 ecssjs@nus.edu.sg

싱가포르大 교수의 도발적 문제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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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전 한국 기업들에서 나타난 현상은 영업이익률은 유지되는데 경상이익률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제조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1990~95년 평균 7.1%였는데, 1996~97년에는 7.3%로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경상이익률은 1990~95년간 평균 2.3%였는데, 1996년에 1.0%, 1997년엔 마이너스 0.3%로 급락했다. 이자와 같은 금융비용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융위기 이전 한국 기업들의 수익률 관련 지표를 종합적으로 보면, 한국 기업부문의 핵심 문제는 사업의 효율성이 아니라 차입금 및 금융비용 관리에 있었다. 이는 재벌의 영업에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재벌의 또 다른 구조적 문제라는 고(高)부채비율은 어떤가. 한국 정부와 IMF(국제통화기금)는 높은 부채비율이 구조적 문제라며 금융위기 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재벌에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도록 강요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구조적 문제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한국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이 유달리 높았다고 하기 어렵다. 세계은행이 1980∼91년 기간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369%), 프랑스 (361%), 이탈리아(307%)의 기업 부채비율은 한국(366%)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스웨덴(555%), 노르웨이(538%), 핀란드(492%)는 한국보다 높은 500% 안팎에 달했다(1970년대 일본의 기업 부채비율은 500% 수준이었다).

1990년대의 추세를 보더라도 한국 기업의 부채비율이 구조적으로 악화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1990~95년 동안의 부채비율은 과거 수준에 머물렀다. 이 때에는 금융위기가 없었다. 그러나 1996~97년에 급격히 높아졌다. 따라서 금융위기의 원인을 구조적 부채비율에 돌리기보다는 1990년대 중반에 부채비율이 왜 과거 평균보다 갑자기 높아졌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한 가지 답은 세계화의 도전과 그에 대한 국가의 체제적 대응 실패다. 재벌의 비효율성을 강조하는 논자들은 재벌체제의 취약성과 비효율성이 세계화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화의 도전은 이보다 훨씬 복잡했다.



소련 정부 설득한 현대그룹 협상력

시장개방에 따라 재벌이 국내시장에서 격화된 경쟁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화는 다른 나라들, 특히 신흥시장에 새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재벌의 대응은 대우그룹 슬로건으로 유명해진 ‘세계경영’으로 요약된다. 국내시장을 지키기 위해 국내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한편 새로운 시장 기회를 포착하려 해외에도 과감하게 투자해 본격적인 다국적기업으로 부상하려는 것이다. 이 시도는 당연히 재벌의 경영능력에 부담을 줬고 금융 위험도 증대시켰다.

그렇지만 한국의 재벌은 1970~80년대의 성공으로 위험부담을 짊어지고 새로운 투자를 전개하는 데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쌓았다. 재벌이 정부의 보조와 지원을 많이 받아왔음에도 1990년대 들어서 ‘경제자율화’를 강력히 주장하며 정부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도 이러한 자신감의 발로다.

특히 신흥시장을 개척하는 데에는 재벌 구조가 유리한 측면이 있다. 단일 품목을 생산하는 독립 기업이 신흥시장에 투자하기는 매우 어렵다. 현지에 전후방 연관산업이 발전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재벌은 신흥시장의 정부나 기업들과 다양한 ‘패키지 거래’를 할 수 있다. 가령 자동차 공장을 지을 때 전방산업인 기계사업과 제철사업 관련 계열사를 함께 진출시킬 수 있다. 또 제품을 많이 팔기 위해 계열금융사를 활용해 소비자금융을 제공할 수도 있다. 재벌의 다각화된 구조는 개발도상국에 시장을 창출하면서 진출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개별 기업보다 더 많은 이점을 갖고 있다.

필자는 1989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한·소 경제협력사절단의 일원으로 구소련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소련에 대한 현대그룹의 협상력이 제너럴 모터스(GM)나 IBM 같은 세계 유수의 대기업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느꼈다. 당시 소련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소비재였다. 그러나 소비재를 수입할 외화가 없었다. 현대그룹은 현대종합상사를 통해 소련에 소비재를 공급해주고, 외화를 받는 대신 현대건설을 통해 소련의 건설공사를 따내거나 현대종합상사가 소련의 천연자원개발에 참여하는 협상을 진행했다. 그룹 구조를 갖고 있기에 가능한 거래였다. GM과 같은 기업은 아무리 규모가 커도 단일기업이라는 단점 때문에 그런 거래를 할 수 없었다.

이런 강점 덕분에 한국은 1990년대 중반까지 아시아뿐 아니라 전세계의 여러 개발도상국과 체제이행국(인도네시아, 베트남,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큰 투자국이었다. 한국 기업의 대(對)선진국 투자는 매출증가에도 저수익률 혹은 순손실을 보인 반면 신흥시장 투자는 괜찮은 수익률을 유지하면서 매출도 급증했다. 그러나 1997년 초부터 시작된 동남아 금융위기는 한국 재벌이 신흥시장에서 과감하게 벌인 사업들이 쉽게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인식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줌으로써 한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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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경제학 ecssjs@nus.edu.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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