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호

英語와 나

  • 입력2005-04-25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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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英語와 나
    40년 이넘도록 영어로 밥벌이를 하다가 재작년에 정년을 맞았다. 강단에서 내려온 지 2년이 가까워오니 지금까지 더불어 살아온 영어가 나에게 무엇이었나를 성찰해볼 여유가 비로소 생겼다. 40년 가량이나 영어와 같이 지내왔으면서도 천학비재(淺學菲才)의 처지에 가르치기에만 바빠 한번도 그럴 필요성을 느껴보지 못했다. 영어가 무엇인 줄 모르고 그저 앞만 보며 달려온 세월이었다.

    아일랜드 출신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보면, 영국인 대학 교무처장이 램프에 기름을 넣는 ‘깔때기(tundish)’란 낱말을 ‘퍼늘(funnel)’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일랜드인 젊은 대학생 스티븐이 이런 생각에 잠기는 장면이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언어는 나의 것이기에 앞서 그(교무처장)의 것이다. 가정, 그리스도, 맥주, 주인…. 이와 같은 말들은 그의 입술과 나의 입술에서 얼마나 달리 나오는가! 나는 정신적인 불안감 없이 이런 말들을 말하거나 쓸 수가 없다. 그토록 친숙하면서도 낯선 그의 언어는 나에겐 항상 습득어일 것이다. 나는 그런 말들을 만들어낸 적도 없고 받아들인 적도 없다. 나의 목소리는 그 말들을 목안에 집어넣고 놓아주지 않는다. 내 영혼은 그의 언어의 그림자 안에서 언제나 초조하다.”

    조이스의 분신인 스티븐의 영어에 대한 생각과 나의 그것이 같을 리 없다. 첫째, 그의 영어관에는 당시 아일랜드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인들에 대한 적대감이 깔려 있지만 내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둘째, 그는 모르는 단어를 접하면 ‘목안에 집어넣고 놓아주지 않을’ 정도로 그 의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집착하지만, 내게는 그런 적극성이 없다.

    그는 피할 수 없는 여건 때문에 통치국의 언어인 영어를 사용하지만 무서운 노력 덕택에 영어가 모국어인 교무처장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 스티븐은 그의 일기에 “빌어먹을 교무처장 같으니, 깔때기를 퍼늘로 알고 있다니! 그는 대체 우리에게 영어를 가르치러 온 사람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배우러 온 사람인가? 하여간 그는 빌어먹을 자야”라고 쓰기에 이른다. 이렇듯 언어 습득에 무서운 열의와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스티븐의 영어에 대한 생각과 나의 그것이 비슷할 리 만무하다. 그러나 굳이 비슷한 점을 찾는다면 스티븐의 말대로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라 습득어이고, 그에게나 내게나 영어는 외국어라는 사실이다.



    스티븐과 달리 나는 자발적으로 영어를 선택했기에 거기에 대한 불안감이나 적대감이 있을 수 없었다. 그저 원어로 보고 싶은 책이나 실컷 보자는 단순한 동기에서 공부한 영어라 그것을 비판하거나 원망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영어는 외국어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익히느라 적지 않게 애를 먹었다. 하지만 스티븐처럼 영어를 정복하겠다는 집착도 없었고, 대단한 노력도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그것이 고통스럽다거나 지긋지긋하다는 기억은 별로 없다. 도리어 영어를 익히려고 보낸 나날들로 즐겁지 않았나 싶다. 사전 찾기를 되풀이하며, 내가 조금은 부지런해지고 참을성도 더 생긴 것 같기 때문이다.

    영어공부로 덕을 본 일이 있다면, 어린 시절 미스터리 하나를 푼 일도 빠뜨릴 수 없다. 어릴 때 바닷가에서 자란 나는 선원들이 쓰는 알쏭달쏭한 말들을 많이 들었다. 발동선의 선장이 곧잘 쓰는 ‘고에’와 ‘고시탕’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고에” 하고 외치면 배가 앞으로 나아가고, “고시탕” 하면 배가 약간 뒤로 물러섰다. 때로는 “도, 도” 하면 배가 굴뚝에서 연기를 뿜으며 정지하기도 했다. 그 말들은 우리말이 아님이 분명한데 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뜻이 무엇인지 물어볼 데도 없고, 설사 안다 하더라도 친절하게 일러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아무에게도 물어보지않고 그냥 살아왔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던 무렵 그 뜻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조이스의 현현(顯現)이라고나 할까. 전광석화같이 그 의미가 머리에 떠올랐다. ‘고에’는 전진이라는 뜻의 ‘고 어헷(Go ahead!)’에서 나온 말이고, ‘고시탕’은 후진이라는 뜻의 ‘고 스턴(Go stern!)’에 토대를 둔 말임을 발견했다. 그리고 ‘도, 도’라는 말은 ‘스톱(Stop)’의 축약형임을. 내가 영어를 꾸준히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어린 시절 들었던 그 이상한 말들이 영어와 관련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영어와 함께한 내 생활은 실수의 연속이었다. 하도 많은 실수를 저질러 어느 것부터 먼저 써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다. 우선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것은, ‘라거 비어(lager beer)’를 ‘라저 비어(larger beer)’의 뜻으로 해석해 학생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일, 미국인 수녀님에게 영어회화를 배울 때 헤어질 때의 인사로 “굿나잇, 서!(Good night, sir!)” 했더니, “굿나잇, 시스터!(Good night, Sister!)”라고 하라며 시정을 받은 일 등이다. 또 미국에 처음 갔을 때에는 현지 교수들의 “하우 아 유 두잉?(How’re you doing?)”이라는 인사를 “홧 아 유 두잉?(What’re you doing?)”이라는 말로 잘못 알아듣고 승강기에서 헤어지기 직전까지 나의 캠퍼스 생활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게다가 나의 영어생활은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스티븐도 그의 모국어나 다름없는 영어의 그림자 안에서 언제나 초조하다는데, 철저하게 외국어인 영어를 습득해야 했던 나는 오죽하겠는가. 나는 여태껏 남 앞에 내어놓아야 할 영어치고 원어민의 교정을 받지 않은 적이 없다. 영어 논문은 물론이고 짤막한 영어 초록(抄錄)이나 편지마저 원어민의 손을 거쳐야 했다.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내 글이 제대로 통할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런 형편에 전공이 영어가 아닌 다른 동료교수들로부터 영문 초록을 좀 봐달라는 부탁까지 자주 받았다. “나의 영어를 믿지 마라”는 고백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동료들의 강요(?)로 부탁에 응하면서도, “이것으로 끝내지 말고 반드시 원어민의 손을 거치라”고 꼭 충고했다.

    영어를 써야 할 자리에서 혹시 발음을 잘못한 것 같으면 그 자리가 끝날 때까지 마음이 불안했다. 자주 쓰는 쉬운 낱말의 악센트를 잘못 넣은 것 같으면 더욱 그러했다. 명색이 영어 전공자의 본색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자리를 같이했던 그 많은 청중은 아무도 나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자리가 끝나기 무섭게 몰래 사전부터 뒤적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영어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을 한번도 후회한 일이 없다. 정년이 지났다고 해서 영어와의 관계가 끝난 것도 아니다. 일주일에 3시간 정도는 강의를 하며, 지금도 신문에 나오는 생활영어를 빠지지 않고 읽는다. 아는 것을 재확인하는 것보다 새로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간단한 인사 한마디도 표현 방법은 다채롭기만 하다. 그래서 영미(英美)인들의 문화를 열린 문화라고 하는 것일까.



    정년을 맞고 보니 이제야 영어가 나에게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돌이켜보니, 영어는 내가 항상 모자라다는 생각을 갖게 했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도록 늘 사전을 뒤적이게 했다. 사전을 찾는 일은 고역이라기보다는 기쁨이었다. 잊은 것을 되살려주었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다. 영어는 항상 나를 깨어 있게 한 각성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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