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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히로시마 원폭 돔

과오는 잊고 피해만 기억하는 부끄러운 ‘부(負)의 유산’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히로시마 원폭 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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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히로시마 원폭 돔

평화공원 외곽에 서 있는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

나치 독일과 파쇼 이탈리아, 군국주의 일본이 일으킨 2차대전은 지구상에서 치러진 그 어떤 전쟁보다도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하게 짓밟은 전쟁이었다. 가스실과 생체실험실, 군대 위안부 등이 동원됐다. 전후 전승국 중심으로 창설된 유엔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소중함을 알리고 또 이를 보장하기 위해 세계 인권선언(1947)과 집단 살해 방지 및 처벌에 관한 협약(1948) 등을 만들었다. 인간의 역사란 희생 위에 세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후 독일(옛 서독)은 나치의 죄를 속죄한다며 전범자 1만3000여 명을 처벌했다. 독일은 이어 1962년 이스라엘과 배상협정을 맺고 250억마르크를 지불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150억마르크의 배상금을 지불했다. 독일이 지금까지 이스라엘 정부 및 피해자, 유가족 등에게 배상한 금액은 무려 2000억마르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독일은 2001년 5월 미국, 이스라엘, 러시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과 나치 강제노역 피해자 배상에 관한 협상도 마무리지었다. 나치 청산에 대한 독일의 이러한 태도는 초·중·고교의 교과과정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독일은 전후 역사교과서를 편찬할 때 폴란드, 프랑스 등 이웃나라들과 협의를 거치는 등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오해의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도자들도 무릎을 꿇고 참회했다. 1970년 12월7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한 당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게토의 유대인 추모비 앞 차가운 대리석 제단 위에서 2차대전 당시 독일이 행한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했다. 무릎을 꿇은 채 미동도 않은 그의 얼굴은 엄숙하다 못해 ‘데드 마스크’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백 마디 말보다 더 진실한 사죄의 메시지를 피해자들에게 전한 것이다. 그날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와 국교정상화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데 이어 바르샤바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아우슈비츠의 이름은 두 민족을 오랫동안 따라다닐 것이며, 생지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미래의 과업을 결연히 떠맡을 것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현실 앞에서의 도피는 위험한 환상을 자아낸다. 이 조약과 화해 그리고 평화에 대한 긍정은 독일인의 전체 역사에 대한 회개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우리는 시선을 미래로 돌리고 도덕을 정치적 힘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의의 사슬을 끊어버려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포기 정책이 아니라 이성의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반(反)나치주의자 빌리 브란트만의 것이 아니었다. 전후 40주년이 된 1985년 5월8일, 리하르트 폰 바이츠체커 당시 독일 대통령은 연방의회에서 “과거 독일이 저지른 만행과 치부를 민족의 이름으로 반성하고 사죄한다”고 천명했다.

독일은 종전 60주년을 맞는 올해 5월 베를린에서 홀로코스트 기념물 제막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60년 전 나치가 저지른 죄악과 과거사를 끊임없이 참회하고 속죄하려는 독일의 노력에는 마침표가 없다.

일본이 무책임한 까닭은?

그런데 일본은 사죄라는 말을 모르는 민족 같다. 보수우익의 대변자 니시오 간지(西尾幹二)는 2001년 자신이 펴낸 ‘국민의 역사’라는 책에서 “일본은 문명국이다”라고 했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과연 ‘문명국’이란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은 기억할 줄 아는 존재다. 기억할 수 있기에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고 문명이라는 것도 이룩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다. 기껏해야 하등인간 정도다.

2000년 말 독일 정부는 기업과 공동으로 기금을 출연해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라는 재단을 설립했다. “망각하려는 것은 유랑을 연장시키고, 기억이야말로 구원의 열쇠다”라고 말한 동유럽의 유대운동가 발 셈 토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니시오 간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파병(간지는 침략한 사실을 덮어두고 ‘파병’이라고 부른다)’은 스페인의 펠리페 2세의 아메리카 대륙 경영에 필적하는 웅대한 ‘세계국가 구상’에서 나온 행위이며, 일본 근대의식의 자기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냉혹한 현실정치의 논리이므로 ‘역사에 도덕을 개입시키지 말 것’을 주문한다.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로부터 조선과 중국을 구하기 위해 일본이 용기를 갖고 싸운 자위전쟁이었고, 한국병합은 당시의 시대상황에서는 최선의 조치로 국제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며, 일본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오해”라는 논리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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