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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하고 놀자

죽음을 가린 의식의 장막을 거둬라! ‘고통과의 화해’

  • 글: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죽음을 가린 의식의 장막을 거둬라! ‘고통과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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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 발달해도 몸은 여전히 불명료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육체는 불명료한 영혼인 것이다. 이를테면 고장 나고 불필요한 세포들은 세포 자체의 자살 프로그램으로 스스로 죽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세포들은 자살 프로그램을 무력화시키며 계속 증식하며 옮겨다닌다. 이것이 암세포인데, 현대의학은 스스로 죽지 않는 암세포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고 해서 암이 우리를 피해가는 법은 없다.

누구에게나 병이 찾아오고 늙어가며 결국 죽는다. 그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고통은 부처의 보리수와 같이 깨달음이란 선물을 주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고통은 뇌수를 쥐어짜고 영혼을 비튼다. 질병과 노화에 직면할 때 절망에 떨며 그 현상을 애써 바로 보려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활력을 잃은 환자들, 질병이 초래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환자들, 죽음이 드리우는 그림자로 공포에 질린 환자들…. 의사는 그들을 따뜻하게 도와야 한다. 그것은 의사의 숭고한 도덕적 책무다. 훌륭한 의사는 환자가 고통과 화해하며 품위 있게 죽음을 맞도록 돕는다. 내들러는 암, 비만,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람들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뇌세포와 심장, 죽어가는 것에 대한 따뜻한 숙고를 보여준다. 질병이란 일상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사건’의 한 부분이고, 우리 삶은 그 사건들 속에서 소진되는 것이다. 내들러는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불안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고통과 화해하며 그것을 영웅적으로 극복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아울러 의료화된 죽음과 달리 평온하고 사려 깊게 수용되는 훌륭한 죽음을 예찬한다.

죽음을 보면서 삶을 배운다

내들러는 세포의 마지막 순간은 인간의 죽음만큼이나 불가사의하다고 말한다. 내들러의 임상적 경험과 그것에 대한 인문학적 숙고를 통해 우리는 질병과 죽음에 대해, 나아가 삶 전체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내들러는 죽음을 불명료한 신화의 장막 속에 가둬놓을 게 아니라 그것을 투명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을 응시함으로써 삶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죽는 것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은 사는 것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라는 몽테뉴의 말을 인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삶이란 저마다 작가가 되어 쓰는 자기의 이야기다. 죽음을 받아들일 때 삶은 더욱 투명해진다. 그렇기에 자기의 이야기를 더 잘 쓰기 위해 우리는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와 자기연민을 넘어서야 한다.

인간의 역사는 고통의 역사이기도 하다. 고통은 신체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을 포괄한다. 신체는 통증의 작용점이지만,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전달된 고통의 메시지를 해독하고 인지하는 것은 뇌다. 현대문명이 고통을 없애고 내면화시키는 무통문명(無痛文明)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례로 제왕절개술은 출산에 따르는 산통을 배제한다. 무통문명은 노화와 죽음까지 관리하고 통제한다. 고통을 면제하는 대신에 안전, 쾌락, 안락함, 자극을 준다고 한다.

대개의 사람은 고통을 피하려 들지만, 오히려 자청하는 수행자들도 있다. 그들은 고통을 받아들이고 넘어선다. 또 극단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안전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문명은 고통을 통해 얻는 생명의 고양감과 도덕적 숭고함마저 없애버린다는 사실을 안다. 내들러는 인간이 질병과 죽음의 고통에 직면해서 어떻게 그 존엄성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았다.



무통화 사회가 인간의 유토피아일 수는 없다. 사람이 극단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구하는 것은 대개는 숭고하지 않은 신체의 욕망에 포박되었을 때다. 숭고한 정신을 지닌 사람은 고통을 정면으로 직시, 수용하며 화해를 추구한다. 신체의 욕망이나 자기 한계를 넘어서 도덕적 숭고함에 이르는 것이다.

신동아 200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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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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