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호

국가인권위 비밀 보고서·회의록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5-08-25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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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위 비밀 보고서·회의록

    김창국 위원장 재임 당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내부 회의.

    한국정부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대북(對北) 결의안에 불참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마찬가지로 무대응의 자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인권위는 실제로 지난해 북측에 인권교류를 제안했으나 퇴짜를 맞은 뒤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당시 김창국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내부 비공개 회의에서 “인권위가 북한 인권 문제에 의견을 표명하면 우군인 시민단체를 잃어 존립에 타격을 받는다”며 의견표명을 막았으며 이에 대해 인권위 내부에서도 반발이 터져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신동아’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비공개’로 분류한 ‘주한 뉴질랜드 대사와의 면담 결과 보고서’라는 제목의 인권위 내부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5월4일 화요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접견실에서 김창국 당시 인권위원장과 데이비드 테일러 주한 뉴질랜드 대사가 면담했다. 이 자리엔 인권위와 주한 뉴질랜드대사관의 간부들도 배석했다.

    뉴질랜드는 남북한과 수교를 맺고 있으며 테일러 대사는 남북한을 함께 담당해왔다. 그는 사흘 뒤인 5월7일부터 13일까지 6박7일간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인권위 보고서에 따르면 이 면담은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인권위는 북한에 존재하는 인권기구에 대해 ‘조선인권연구협회’가 ‘인권’이라는 명칭이 붙은 유일한 단체라고 밝혔다. 이어 김창국 위원장은 테일러 대사에게 북한과 인권교류를 하고 싶다는 인권위의 의사를 북한 당국에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은 김 위원장이 테일러 대사에게 요청한 내용이다(보고서에 따르면 인권위가 북한 당국에 인권교류를 제안한 것은 그때가 두 번째로, 북한 당국은 인권위의 첫 번째 제안에 대해 답을 해오지 않은 상태였다).



    “본 위원회는 행정부는 물론 사법·입법부로부터도 독립되어 있는 국가기구이며 북한의 인권기구와 교류를 희망함. 위원장께서는 대사 일행에게 국가인권위원회법(국문·영문 2가지)을 북한에 전달해줄 것을 요청하심. 또 위원장은 본 위원회가 조선인권연구협회 등 북한의 인권관련 기구와 교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하며, 위원회가 이를 위해 북한 당국에 방문을 희망한다는 뜻을 비공개적으로 표명한 바 있으나 아직 화답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하심. 한편 본 위원회가 오는 9월14~17일 서울에서 세계국가인권기구대회를 개최하는 바, 여기에 북한의 관련 기구를 초청할 계획도 소개함.”

    테일러 대사가 방북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뒤인 2004년 5월19일, 인권위 관계자는 주한 뉴질랜드대사관을 방문해 테일러 대사와 1시간 가량 면담했다.

    북한, 인권위 제안에 냉소

    이 자리에서 테일러 대사는 인권위의 남북한 인권교류 제안을 북한 당국이 냉소적으로 거부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보고서에 기록된 테일러 대사의 설명이다.

    “본 위원회의 요청 사항과 관련하여, 테일러 대사는 5월10일 오후 김병률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에게 인권 핸드북을 전달하고, 5월11일 오전 김영일 외무성 부상에게 본 위원회법을 전달하고, 9월 (한국 인권위가 북한 당국을) 세계국가인권기구대회에 초청한다는 의사를 전달하였음. 그러나 김 부상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웃음을 지었다고 함. 대사를 수행한 주한 뉴질랜드대사관 서기관은 김 부상의 웃음이 냉소적으로 보였다고 말함.”

    보고서에 따르면 테일러 대사는 방북기간 북한 당국에 이미 가입한 국제인권협약을 이행하고, 미가입한 협약(장애인·고문·차별·인신매매 관련 협약)에 가입하고, 유럽연합 등과 인권 대화를 재개하고, 유엔 인권위원회 결의에 따라 선임될 북한인권 특별보고관과 협력할 것 등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유엔 인권위원회의 대북 결의안이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이라고 비판했으며, 유럽연합과 인권 대화를 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다만 북측은 국제인권협약에 관한 한 유엔과 보고서 제출 등의 협력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유엔, 유럽연합, 뉴질랜드 등이 결의안을 내거나 북한을 직접 방문해 인권 문제 개선을 촉구하는 상황이지만, 인권위는 이처럼 인권교류 제안을 북한 당국에 의해 거부당한 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선 단 한번도 의사표명을 하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 내부에선 ‘북한 인권 문제에 인권위가 침묵을 깨고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상당수 개진된 것으로 밝혀져 국가인권위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겉과 속이 다른 행보를 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신동아’가 입수한 국가인권위 회의록(의안번호1 제11호 : 북한인권에 관한 논의)은 이러한 인권위 내부 사정을 잘 보여준다. ‘비공개 안건이오니 관리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회의록에서 인권위 일부 위원들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인권위의 의사표명을 촉구했다.

    “우리가 빨리 의견표명을 하면 좋겠음. 북한 사람들의 인권에 관해서는 말도 못하고 있는데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의견표명을 하면 좋겠고…” (A위원)

    “원론적 수준에서 인권위원회의 의사를 취하고 구체적 부분에 대해서는 사무처와 정책국 중심으로 조사한다든지 구체적인 대응책을 심도 있게 논의해서 하더라도, 원론적 수준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개선을 위해서 국제적으로 연대해서 노력을 기울여 달라는 취지의 의사표명을 시급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함.” (B위원)

    “북 인권에 대해 빨리 의견표명하자”

    “계량화된 정보는 없지만 유엔 결의안까지 나온 상황에서 우리가 북한인권을 외면할 수는 없음. 북한의 오랜 굶주림과 탈북자의 기본적인 인권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개선책을 강구해줄 것을 요청하는 수준으로 하면 안팎의 여러 요구와 인권위원회의 위상과 관련해서도 큰 무리 없는 의견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됨.” (C위원)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될 것 같고, 가능하면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 생각함. 다만 인권위원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할 때는 아직 사실관계를 확인한 바가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논단은 피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음. 국제사회 움직임에 주목하고 국제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제반 사항에 대해서 보다 관심을 가지고 대처해야겠다는 정도로 완곡하게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임.” (D위원)

    국가인권위 비밀 보고서·회의록

    신동아가 입수한 국가인권위의 ‘주한 뉴질랜드 대사와의 면담결과 보고서’와 ‘북한 인권에 관한 논의 회의록’.

    그러나 인권위 일부 위원들은 북한 인권 실상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 한국 정부의 남북한 평화번영정책에 역행한다는 점을 들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표명에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좀더 우리 스스로 북한 상황에 대해서 공부하고 자료에 접근해서 정책권고를 고려해봐도 늦지 않음. 그런 의미에서 이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함.” (E위원)

    회의록에 따르면 김창국 당시 인권위원장은 북한 인권 문제에 의사표명을 하는 것에 대해 ‘지금 당장은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의 회의석상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인권위원회가 이 문제를 취급해야겠는데, 의견표명 형식으로 지난번 이라크전 때처럼 하는 것은 타이밍상 적절치 않다고 생각함. 국정원장, 기조실장 문제로 해서 이념논쟁이 한참 벌어지고 있는데 지난번 이라크전 의견표명과 관련해선 인권위원회의 성가가 무척 올라갔음. 특히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단체, 인권단체들로부터 높이 평가를 받음. 이라크전쟁에 대해선 의견표명을 하면서 (왜)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느냐고 보수 언론에서 때리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의견표명을 하면 인권위원회는 존립의 문제까지 심각한 타격을 받으리라고 생각하고 그 점이 걱정됨. 우리 우군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함. 제안을 드리자면 북한 인권 관련 단체들과 국내 인권단체와 시민단체들이 같이 모여서 간담회나 토론회를 통해 의견도 듣고, 북한 인권 관련 단체들한테는 가지고 있는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으면 함.”

    “北 인권 거론하면 시민단체 잃는다”

    김창국 위원장이 “인권위가 이라크전 의견표명을 해서 인권위의 성가가 올라갔으며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단체로부터 높이 평가를 받았다”고 자평한 사안은 2003년 3월2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군의 이라크전 파병을 반대하는 ‘반전(反戰) 의견서’를 발표한 것에 대한 얘기다. 당시 김 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일부 의원들이 “국가가 파병을 결정한 마당에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파병에 반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지적을 하자 “국가기관 중에도 ‘전쟁 반대’ 의견이 있는 것이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답변했다.

    앞서 본 대로 김 위원장은 “인권위가시민단체로부터 버림받는 것이 가장 걱정스럽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막연히 민감한 북한 인권 문제를 개선하라고 던지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고, 우리 인권위원회가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시민단체들한테서 버림받는 것임. 독립기구라고 하지만 무슨 권한이 있습니까. 우리 우군은 인권시민단체임. 우리도 제대로 된 의견을 내고 북한 인권단체들 의견을 정리해보고 입수된 북한법령도 검토해서 그 부분도 거론해야 인권위원회 권위도 실리게 될 것임.”

    김창국 위원장이 이같이 발언하자 일부 위원들이 상반된 의견을 내면서 김 위원장과 논쟁이 벌어졌다. “북한 인권 문제에 의견을 내면 왜 시민단체가 외면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반발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지난번 인권위의 이라크전쟁 반전 표명은 결과적으로 이라크 국민의 생명권 침해에 대해서 우리가 반대의견을 낸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다른 위원이 인권의 보편성 이야기도 하셨는데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 인권위원회가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못했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 같음.” (A위원)

    “언급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북한 인권 실태가 이러한 자료를 보니까 적어도 이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니 이건 개선해야겠다는 식으로 나가야 함.” (김창국 위원장)

    “기아, 탈북자 문제는 지금 나와 있는 자료만 가지고도 충분히 객관성이 인정된다고 봄.” (B위원)

    “막연히 (유엔에서) 북한인권문제 결의안 나오고 하니까 정부도 북한 인권 문제 개선하라고 하는 것은 인권위원회가 너무 경솔하게 대응하는 것 아닌가 생각함.” (김창국 위원장)

    “이라크전쟁에 있어서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일고의 고려도 없이 (파병반대) 결의안을 채택해놓고 국정원 기조실장이 누가 되느냐와 우리가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의견표명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A위원)

    “이라크전은 신속하게 의견표명을 했다고 말씀하시는데, 북한 인권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 (김창국 위원장)

    “웬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반발

    “이런 의견(북한 인권 문제에 인권위가 의사표명을 하는 것)을 내면 왜 시민단체가 외면한다고 생각하는지?” (F위원)

    “인권위원회가 일부 보수언론이나 보수층에서 이라크전 이야기를 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는 거론도 하지 않느냐고 비난하니까 우선 매를 안 맞으려고 내놓는다, 인권위원회가 신중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분명히 나올 것임.” (김창국 위원장)

    “시기와 관련된 문제이고 내용 자체도 그럴지?” (F위원)

    “내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음. 비교적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막연히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서 정부가 노력하라고 한다면 인권위원회의 기능이나 신중성에 대해서 우리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 (김창국 위원장)

    “북한의 인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4000만이 다 아는 문제인데, 그런 부분은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음.” (A위원)

    “시기가 지금 적당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내용 자체가 조금씩 다를 수 있겠는데 근본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의견표명을 하는 것에 관해 시민단체가 싫어한다는 이야기는 놀랍고 후에 의견을 낼 때 의견 내용을 정리하기가 쉬울지 걱정됨.”( 위원)

    김창국 위원장은 또 “노무현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명확하게 어떤 방향이 정해져 있는 것 같지 않다”고도 했다.

    이날 회의 이후 2005년 8월 현재까지 인권위는 북한 인권에 대해 어떠한 의견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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