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호

‘대북 송전’ 정밀분석

美 연구소 “시설비만 한국 정부 발표의 두 배 이상”

  • 강정민 평화협력원 연구위원, 핵공학 박사 jmkang55@hotmail.com

    입력2005-08-25 14:4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북 송전’ 정밀분석

    7월12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합동 브리핑실에서 ‘대북 중대 제안’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7월12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기자회견장에 선 정동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겸 통일부 장관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그간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던 ‘대북(對北) 중대 제안’을 비로소 공개하는 자리였다. ‘북한이 핵 폐기에 합의하면 경수로사업을 종료하는 대신 남한이 단독으로 북한에 200만kW의 전기를 직접 송전한다’는 이 제안은, 6월17일 정 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북한측에 전달됐고, 김 위원장 또한 “진지하게 검토해서 답변을 주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북한은 이 면담에서 “7월중으로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로서는 13개월간 열리지 않던 4차 회담이 열리는 데 중대 제안이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할 만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6자회담 과정에서 나타난 북한의 반응은 남측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남한의 노력은 높게 평가하지만 중대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4차 6자회담은 비록 3주간 휴회가 선언됐지만 한반도 비핵화 의지 확인, 북한의 핵무기 포기 의사 표명, 미국의 관계정상화 의지 표명, 대북 전력지원 등 경제지원 내용 명시 등 이전에 비해 진전된 협상 내용을 보여줬다. 이렇게 볼 때 ‘중대 제안’은 2단계 4차 6자회담에서 어떤 형태로든 다시 한번 테이블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 중대제안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검토하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회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문제점은 없는지, 대안은 없는지 분석, 검토함으로써 중대 제안의 내용을 더욱 견실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지에 따라 우리 정부의 중대 제안에 대해 다층적인 차원에서 심층 분석해본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의 대북 전력공급 방안은 ‘안중근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1월부터 극비리에 진행됐다. 맨 처음 구상은, 지난해 말 미국과 일본이 모두 경수로사업을 끝낼 것을 요구해 그 대안을 찾아야 했고, 북한의 핵 폐기를 끌어내기 위한 대체에너지 문제를 풀어야 하는 데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완전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경수로 건설의 대안으로 전력공급 계획을 세워 경수로 건설비용을 전력공급 비용으로 사용하고,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송전하고 핵 폐기 합의에서 폐기까지 기간을 3년으로 잡았다.



    7월12일 정동영 장관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북한이 핵 폐기에 합의하면 현재 중단 상태인 경수로 건설을 종료하는 대신 남한은 독자적으로 200만㎾의 전력을 직접 제공할 수 있도록 송전선로 건설에 즉각 착수한다. 이후 공사를 진행해 3년 이내(2008년 이후부터)에 북핵 폐기와 동시에 송전방식에 의해 전력을 무상 공급한다는 것이다.

    발표 직후 일각에서는 정부가 충분한 사전검토 없이 프로젝트를 제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 장관이 7월12일 발표 때는 “대북 직접 송전계획은 우리가 경수로 비용을 들여 단독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다음날에는 “6자회담 틀 속에서 협의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단독으로 (송전을) 끊을 수 없다”고 번복한 것이 한 요인이 됐다.

    어떻든 7월18일 정부는 북핵 포기를 전제로 한 대북 전력지원책을 진행하기 위해 ‘대북송전추진기획단’을 가동했다. 통일부 차관을 단장으로 한 대북송전추진기획단은 하부조직으로 대북전력사업 태스크포스(TF)와 경수로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한 상태다.

    우리 정부가 내놓은 중대 제안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반응은 분명하게 엇갈린다. 미국은 중대 제안에 대해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안(案)이라며 환영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7월29일 ‘국민일보’는 ‘2008년이란 시한을 정함으로써 북핵 해결의 기간이 짧고, 어떤 형식으로든 대북송전 컨트롤을 확보함으로써 북한을 견제할 수 있으며, 핵확산 위험 없는 비핵 에너지라는 점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반면 앞서 설명한 대로 북한은 중대제안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 난색을 표했다. 우선 ‘북한이 핵 폐기를 선언하면 송전시설 공사를 시작하고, 핵을 폐기하면 전력을 공급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으므로, 선(先) 핵 폐기 주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 문제가 더 큰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200만kW의 전력을 남한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상황은 북한 처지에서 그리 미덥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의 전기, 이렇게 다르다

    ‘대북 송전’ 정밀분석

    그림1. 북한의 전력망 계통도

    대북 전력지원을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면서 효과적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한 전력체계 비교와 현황파악이 선행돼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중대 제안을 실현하려면 얼마의 예산이 필요한지를 산출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중대 제안을 발표하면서 200만㎾ 송전망 가설에 5000억원, 변환설비에 1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연간 200만㎾의 전기를 생산·유지하는 비용으로 매년 9000억~1조원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언론과 학계에서는 다양한 이견이 나왔다. 과연 어느 쪽이 맞는지 하나하나 따져보기로 하자.

    먼저 북한이 과연 어느 정도의 전기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으며, 실제로 생산되는 전기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보자. 7월12일 국정 브리핑에 의하면, 현재 북한은 780만kW 규모의 발전설비용량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연료 부족으로 가동률이 30%에 불과해 실제 설비량은 230만~240만kW로 추정된다. 반면 북한의 실제 전력수요는 400만kW로 추정되므로 우리 정부가 200만kW를 공급하면 그 부족분이 해소될 것이라는 게 정부측의 설명이다.

    한편 북한의 에너지 사정에 대해 수년간 연구를 진행해온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Nautilus Institute)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운영이 불안정한 소규모 화력발전을 바탕으로 800만~1000만kW의 발전설비용량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발전설비가 열악해 가동률이 낮은 점을 고려하면 현재 북한의 발전설비용량은 200만~300만kW로 추정된다.

    북한의 전력생산량은 1990년에 약 460억kWh에서 2000년 약 130억kWh로 줄어들었다. 북한의 전력 사정이 최근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2000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참고로 화력발전소 평균 가동률 60%를 가정하면 200만kW 발전설비의 한 해 전력생산량은 200만kW×8760시간(1년)×0.6=105억kWh에 해당한다. 가동률이 훨씬 높은 원자력발전은 평균 가동률이 80% 이상이므로 전력생산량은 140억kWh 이상에 해당한다. 간단히 말해 같은 200만kW라 해도 화력이 중심인 북한과 원자력이 중심인 남한은 전력생산량이 다르다. 이렇게 볼 때 남한의 200만kW 전력량은 사실 최근 북한의 총 전력생산량에 육박하는 규모다).

    전기를 만들어내고 나서도 이를 곳곳으로 보내는 전력망이 문제가 된다. 북한은 1950년대 말 전국적으로 통합된 전력망을 갖췄지만, 이후 발전 및 송배전 시설이 노후해 현재는 단일 전력망이 아닌 단절된 지역 전력망으로 구성돼 있다. 북한의 주요 송전선 전압은 110~220kV이며, 배전부분의 전력망 전압은 약 66kV로 저전압이다. 북한의 전력망 계통은 에서 볼 수 있다.

    이렇듯 전력망이 지역별로 쪼개져 있다 보니, 평양의 전력수급은 최근 상대적으로 안정되는 등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차이가 심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전압과 주파수의 변동이 국제기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전력품질이 나쁘다. 북한은 이렇듯 전력체계가 낙후돼 전기의 주파수 조절이 어렵고, 정전이 잦으며 또한 정전에서 회복되는 시간도 길다. 이로 인해 정전이 연쇄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정전 회복시간이 더욱 길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번에는 남한측 상황을 살펴보자. 2004년 말 현재 국내 발전설비용량은 약 6000만kW(총 발전량은 3420억kWh)로 북한의 약 30배 규모다. 2004년 최대 전력수요는 약 5400만kW였다(2004년 말 현재 국내 발전설비의 발전원별 현황을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남한의 전력수요는 계속해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2015년 발전설비용량은 약 8000kW(총 발전량은 4470억kWh)로 예상된다.

    국내 전력망의 경우, 주요 송전선의 전압은 345kV이고 지역 전력망은 154kV다. 남한의 전체 전력수요 가운데 40% 이상을 수도권지역이 차지하는데, 수도권의 이처럼 급격한 전력수요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 현재도 남쪽의 집중발전시설에서 765kV 전력망을 연결해 전기를 끌어쓰고 있다(남한의 전력망 계통도는 와 같다). 정부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약 33조원을 신규 발전소에, 약 14조원을 송전설비에 투자할 계획이다. 즉 연간 3조원가량이 전력 기반시설에 쓰인다.

    정부 발표는 ‘절반의 진실’

    ‘대북 송전’ 정밀분석

    그림2. 남한의 전력망 계통도

    이처럼 남한과 북한의 전력사정을 개괄적으로나마 점검해보면 양쪽의 전력망을 이어 매년 200만kW의 전력을 보낸다는 중대 제안의 아이디어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을 뿐더러, 비용산출 역시 생각보다 복잡하다. 물론 정치적·제도적인 한계는 또 다른 고민을 남겨두고 있다.

    우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의 전력망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이에 따라 남북한 전력망은 주파수와 전압의 변동, 발전용량 등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이렇듯 차이가 나는 두 전력망을 연결하면서도 남한의 전력계통에 악영향을 주지 않으려면 연결지점에 직교류변환소를 설치해야 한다. 이 변환소에서 남측 주파수의 교류를 직류로 바꿨다가 다시 북측 주파수의 교류로 바꿔야만 한쪽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다른 한쪽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국내 송전선에 전류교환기를 설치해서 교류를 직류로 전환한 다음 이를 송전하면, 북한은 이 직류를 받아 다시 교류로 전환해 사용하는 셈이 된다.

    또한 수도권에 대한 안정적인 전력공급도 큰 장벽이다. 남한 전체 전력수요의 40%를 차지하는 수도권지역에는 발전설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영호남지역에 집중된 발전소들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지금도 수도권 지역은 영호남지역의 발전소에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이를 가리켜 이른바 ‘북상조류’에 따른 송전망 병목현상이라 한다). 그런데 북한에 200만kW의 전력을 추가로 보내게 되면 이러한 병목현상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도권지역의 전력공급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영호남지역으로부터 직접 북한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고압 송전망을 건설하든가, 아니면 수도권지역에 200만kW 규모의 새로운 발전소를 지어 북한과 연결하는 방법밖에 없다.

    반면 정부는 이러한 장애물에 대해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정부는 중대 제안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향후 수년간 전력예비율이 충분해 발전소를 새로 건설하지 않고도 200만kW 전력의 대북송전에는 무리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7월18일 국정 브리핑을 통해 산업자원부는 “2008년 상반기부터 북한에 전기를 보낼 경우 여름 피크(최대전력수요) 시 수도권 예비율이 15.2%에서 6.6%로 일시적으로 감소할 수 있으나, 향후 5년간의 추이를 보면 수도권 예비율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대북 전력공급을 국내 전력수요가 낮은 겨울철인 2008년 말부터 시작할 경우 수도권 전력수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2008년 상반기부터 전기를 보내더라도 “인천 영흥 4호기(80만kw) 조기 준공((2009년 3월 준공 예정이지만 이를 2008년 6월로 앞당기는 방안)을 비롯한 다각적인 보완조치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후 예상되는 전력예비율을 추산해보면 2009년의 경우 14.2%, 2010년 15.3%, 2011년 14.2%, 2012년 10.9%로 낮아지지만, 그래도 10% 이상은 꾸준히 유지된다는 것이 산자부측 주장이다. 그러나 산자부는 그 바로 뒤인 2014년은 4.8%, 2016년은 0.6%로 전력 예비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1조5000억원으로는 어림없어

    전력망 연결에 가로놓인 해결하기 쉽지 않은 장애물은 곧바로 비용 문제로 연결된다. 물론 아무리 어려운 작업이라도 돈만 많이 들인다면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중대 제안을 발표하면서 제시한 예산이 이런 사정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7월12일 국정브리핑에 따르면, 정동영 장관은 우선 200만㎾ 송전망 가설에 5000억원, 변환설비 마련에 1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연간 200만㎾ 전력에 대한 생산·유지비용이 9000억~1조원 든다고 설명했다. 7월16일 일부 언론은 산자부 내부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송전 및 변환시설 건설 등 초기시설 투자비용으로 1조5000억~1조7000억원, 전력공급비용(발전비용과 송배전시설 유지관리비)으로 매년 1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7월18일 산자부는 “당초 추산된 매년 1조원 수준의 공급비용은 국내 소비자에 대한 평균 판매단가를 적용한 것으로 북한에 전력을 보내는 방식과 형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정부의 계산에는 200만㎾ 규모의 발전소를 새로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과 보내진 전력을 수용할 북한 내 배전망을 부분적으로 개선하는 데 들어갈 비용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노틸러스 연구소는 그간 진행해온 대북 직접송전방안 연구를 통해 초기시설 투자비용 명세를 다음과 같이 산출한 바 있다.

    우선 200만kW 복합화력발전소 건설에 약 1조원, DMZ 건너 평양까지의 송전망 건설에 약 6000억원, 200만kW 송전전력을 수용하기 위한 북한의 송배전망 절반 개선비용에 약 1조8000억원, 도합 3조4000억원 규모다. 또한 200만kW 발전소의 연료비로 매년 약 8000억원이 들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이외에도 200만kW 송전을 위한 직교류변환소 설치비용으로 약 2500억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하고 있다. 초기시설비용만 해도 정부측 추산과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더욱이 정부나 노틸러스 연구소는 북한의 송배전망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비용을 추정했으므로 이 같은 송전비용이 정확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북한의 열악한 전력망 사정을 감안해 여분으로 전압보조시설을 짓거나 송전시설을 추가로 신설해야 할 경우 등이 생길 수 있음을 감안하면 앞에서 살펴본 노틸러스의 추정비용 역시 최소치일 가능성이 높다.

    송전비용, 경수로 자금으로 해결되나

    이와는 별도로, 막대한 규모의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정부측 해명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정부는 “현재 남아 있는 경수로 지원금 24억달러(약 2조4000억원)에서 초기시설 투자비용을 조달하고, 남은 돈으로 전력공급 비용을 충당하며, 부족한 자금은 남북협력기금 등 정부예산 형태로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수로 지원금이 24억달러가량 남아 있다는 이야기는, 경수로사업이 재개될 경우 추가 공사비로 35억달러가 소요될 텐데 이 가운데 1994년 제네바합의 당시의 약속대로 70%에 해당하는 24억달러의 잔여경비를 한국이 지불해야 한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경수로 대신 직접송전을 택할 경우 이 24억달러를 쓸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논리다.

    그러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추진하고 있는 신포 경수로사업의 경우, 사업이 완전히 백지화되어 폐기된다면 불가피하게 막대한 금액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미 주문해놓은 원자력발전 관련부품을 취소할 경우 KEDO(정확히는 KEDO에 돈을 대고 있는 한국 정부 등이)가 해당업체에 이를 고스란히 물어줘야 하는 것이다. 또한 사업을 중단한다고 해서 건설현장을 그대로 버려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를 마무리하는 작업에 드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경수로사업을 중단한다고 해서 아직 쓰지 않은 24억달러가 고스란히 남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위약금과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는 추가비용만 따져도 최소 수억달러는 고려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찌 됐건 초기시설 투자 비용은 경수로 관련 비용으로 상당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 해도, 매년 1조원 이상이 소요될 연료비용 및 유지비용은 고스란히 부담으로 남는다. 정부는 대북 무상송전을 ‘상당기간’이라고만 언급했을 뿐, 몇 년간 계속할 것인지 명확히 정하지 않았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예상비용을 추산하기도 어렵다. 결국 이는 통일비용 등의 항목으로 전기료 등에 추가될 가능성이 높고, 국민의 부담으로 연결된다. 대북 직접송전에 국민적 동의나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대북 송전’ 정밀분석

    미항공우주국(NASA)이 공개한 한밤의 동북아 위성사진. 한국, 중국, 일본의 도시지역은 빛나는 반면, 에너지난이 심각한 북한지역은 불빛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문제는 부차적인 것일 수도 있다. 과연 대북 직접송전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실현 가능한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쪽의 남는 전력망을 연결해 다른 쪽으로 공급하는 국가간 전력망 연계는 신규 발전소 입지확보의 어려움 해결, 발전소 건설비, 연료비, 운영비, 폐기물 발생에 따른 환경비용 등의 절감,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대응, 발전원(源)의 다변화 등 많은 장점이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프로젝트가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 안보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매우 친밀한 나라들 사이에서도 성사되기 쉽지 않은 국제정치적 문제인 것이다.

    북한이 남한의 200만kW 지원 방안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 난색을 표명한 것도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은 남한으로부터의 직접송전이 아닌 다른 방안에 관심을 보일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한국 정부로서는 전력 수혜 당사자인 북한의 처지 및 견해를 고려해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대북송전을 위해 예를 들어 양주-평양간 200㎞에 고압 송전선을 설치하여 남북한 전력계통을 연계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남한은 사전에 북한 전력계통 및 송전탑이 지나갈 곳의 지형적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북핵 폐기가 완료된 시점에 맞춰 전기를 보내려면 북한의 핵을 검증하고 폐기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사이에 송전선 설치공사도 진행돼야 한다. 북한의 일정지역을 공개해야 하는, 특히 민감한 DMZ를 관통해야 하는 이 공사에 대해, 미국의 안전보장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북한이 어느 정도 협조할지 점치기 어렵다. 미국이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의 핵 폐기에 대한 검증이 이뤄진 다음에야 북한에 대해 관계 정상화, 안전보장, 경제지원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로 설비가 완료되어 전기를 공급한다 해도 민감한 부분은 여전히 남는다. 발전시설은 남한에서, 송전된 전력은 북한에서 통제할 경우 남한이 갑작스레 전력공급을 변경할 수밖에 없는 사정(발전소 유지보수 등으로 인한 운전정지 또는 예상치 못한 사고 등)이 생기거나 또는 북한의 전력수요가 급격히 변화(북한 송전 시스템의 갑작스런 고장 등)할 때 상대방의 전력체계에 손상을 끼칠 수 있다. 이 경우 남북한 사이에 심각한 정치적 조정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므로 이에 대한 대비책도 충분히 검토돼야 할 것이다.

    남한-북한-블라디보스토크 전력연계?

    이상 살펴본 것처럼 남한이 전기를 생산해 북한에 보내는 방식에는 복잡한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 더욱이 이 방안에 대해 북한이 꺼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감안하면 100% 직접송전뿐 아니라 좀더 다각적인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부터는 그러한 다각적인 방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가능한 선택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와 관련해 수년 전부터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러시아-북한 전력망 연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극동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풍부한 전력을 북한에 공급하는 청진-블라디보스토크 전력망 연계는 북한의 나진 선봉 경제무역지대와 청진 등 북한 내에서 전력이 긴요한 지역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러시아도 이 지역의 풍부한 수력과 화력으로 인한 잉여전력을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단지 송전선 건설재원 등 경비문제로 지금껏 실행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2003년 2월초 일본 니가타에서 열린 에너지포럼에서 러시아 국영전력회사인 보스토크에네르고의 빅토르 미나코프 사장은 북한의 심각한 전력난을 최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북한과 블라디보스토크간 전력망 연계 계획을 소개한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청진과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의 380km 구간에 500kV 송전선을 건설해 30만~50만kW의 전력을 북한으로 송전하는 방안이다. 건설기간은 3~4년, 건설비용은 약 1600억~1800억원으로 예상된다는 것이 당시의 설명이었다.

    러시아는 여기에다 250만~300만kW의 전력을 남한으로 연결하는 방안까지 포함해 남한의 투자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참고로 7월30일 연합뉴스는 4차 6자회담 러시아측 대표로 참석한 한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는 북한의 핵 계획 포기를 조건으로 북한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렇듯 북한과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의 전력망 연계에 남한까지 연결하는 방안, 즉 남한-북한-러시아 전력망 연계 방안은 한국 정부의 대북송전 방안과 북한-블라디보스토크 전력망 연계 방안의 장점을 취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남한은 전력수요가 많은 하절기에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300만~350만kW를 송전받아 200만kW는 북한이 이용하고 나머지 100만~150만kW를 수입함으로써 수도권지역 전력공급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전력수요가 적은 동절기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의 송전은 줄이고 반대로 남한의 일부 유휴 전력을 북한으로 송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북 직접송전의 대안으로 검토할 만한 또 한 가지 방안은 북한의 노후한 발전설비를 개선해 발전소 가동률을 높임으로써 자체적으로 전력생산량을 늘릴 수 있게 돕는 방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발전소 가동률을 높이더라도 생산전력의 상당부분을 송배전 과정에서 잃어버린다면 효과가 없으므로, 이를 위해서는 북한 내의 노후한 전력망을 개선하는 작업이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최근 북한은 유용한 가용자원이 별로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전력확보 방안으로 재생 에너지, 즉 풍력 및 태양광 발전의 도입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중앙보다는 지역사회의 전력생산 목적에 더 적합한 방안으로, 북한은 이를 위해 외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풍력 및 태양광 발전은 환경보전 및 자연자원 이용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발전규모가 적어 군수 목적으로 전용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방안이다.

    이렇듯 북한의 노후한 발전설비와 전력망을 개선해 생산량 및 효율을 높이고, 여기에 재생 에너지 도입을 연계해 발전설비용량을 효율적으로 증대시킨다면, 북한 전역에 200만kW 직접송전에 상응하는 규모의 개선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왕 쓸 돈 제대로 쓰려면

    결론적으로 한국의 중대 제안에 담겨있는 ‘정신’은 남겨두되, 그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해서는 좀더 합리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제언이다.

    수혜자인 북한의 열악한 전력체계 상황과 100% 직접송전 방식의 여러 가지 어려움 등을 감안할 때, 위에서 언급한 선택지를 포함해 다각적인 방향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내외 관련 전문가와 6자회담 참가국들 사이의 충분한 토론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믿는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해 돈을 쓰기로 마음먹은 김에, 이왕이면 더욱 효율적으로, 받는 사람도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려 수조원의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라는 점은 물론,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항구적인 체제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