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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인터뷰

자산 1조2000억, 일본 파친코 황제 한창우 (주)마루한 회장

“실력, 교양, 신용으로 차별 이겨냈다”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자산 1조2000억, 일본 파친코 황제 한창우 (주)마루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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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사전 들고 밀항해 대학 진학

자산 1조2000억, 일본 파친코 황제 한창우 (주)마루한 회장

도쿄 인근 지바현에 있는 마루한의 파친코 점포

-영어사전 들고 밀항했다는 게 인상적인데요.

“소학교 6년 동안 한번도 1등을 놓친적이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어떻게 해서든 공부해서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했습니다. 요즘의 조총련이나 민단에 해당하는 도쿄의 재일교포단체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도쿄 조선장학회라는 곳에서 시험을 쳐 고교졸업과 대입시험 자격을 얻었습니다.

학업에 더욱 매진해 일본에서 명문으로 통하는 도쿄 호세이(法政)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했습니다. 숙식은 재일교포단체 사무실의 일을 도와주며 거기서 해결했고요. 에도강변에 있어 여름철이면 모기에 얼마나 시달렸던지…. 식사는 주로 양배추와 쌀, 된장을 물에 넣고 끓여 먹었습니다. 되게 맛없죠. 그마저 재료가 떨어질 때가 많아 늘 영양실조 상태였습니다. 21세 때인 1952년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한창우 회장은 대학 재학 때 마르크스, 엥겔스의 저작을 탐독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그는 세 가지에 심취했다. 마르크스, 패션 디자인, 클래식 음악이 그것이다. 주인공이 스탄 게츠의 재즈를 들으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포스트모던’한 소설이 오버랩된다.



마르크시즘, 패션, 멘델스존

마르크스 경제학에 빠져든 것은 정밀한 비용과 승패율 계산이 요구되는 파친코업계에서 성공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는 음악감상 취미를 살려 음악다방 사업을 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한국·일본 클래식 음악계의 유력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마루한의 디너쇼 행사 때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이 흘러나왔다. 젊은 시절 한 회장이 점심을 굶은 돈으로 음악카페를 처음 찾았을 때 들은 곡이다. 미적 감각은 마루한 점포의 차별화된 현대적 인테리어에서 발휘되고 있다. 요즘 한 회장은 프랑스 후기 인상파의 그림을 애호해 수집하고 있다.

한 회장은 “일본사회에서 많은 차별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 이어 그는 “어느 사회에서나 차별은 존재한다”고 했다. 차별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일차적 반응은 차별하는 주체에 대한 적개심이다. 적개심이 성공의 동력이 되기는 한다. 대신 삶의 여유는 사라지고 투지만 남는다. 한 회장은 “나는 여유와 성공을 모두 얻는 쪽을 택했다”고 말했다. 긍정적 사고로 차별을 수용한 것이다. 그는 “실력, 교양, 신용, 이 세 가지만 갖추면 어떤 사회의 차별이라도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학부를 졸업했으니 취업해서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인 졸업생들도 대부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한국 국적으로는 취업이 불가능했습니다. 자형이 일본 교토에서 전철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1만5000명의 소도시 미네야마에서 조그마한 파친코 점포를 운영했습니다. 1952년 대학졸업 후 그곳에 가 점포 일을 도와주며 몇 년을 보냈습니다. 파친코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자형의 점포엔 파친코 게임기가 20대 있었는데, 인근에 60대를 들여놓은 새로운 파친코 점포가 생겼습니다. 그러자 자형 점포의 손님이 뚝 끊겼어요. 자형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점포를 매물로 내놓았으나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형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어떤 제안이었습니까.

“나는 빈털터리이니 점포를 내게 공짜로 달라고 했습니다. 대신 내가 꼭 점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점포 시세의 두 배를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자형은 내게 점포를 물려주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26세 때인 1957년 드디어 ‘마루한’을 설립했습니다. 파친코 게임의 승률을 조금 높였습니다. ‘잘 터진다’는 소문이 나자 손님들이 다시 찾았습니다. 돈을 잃은 손님에겐 담배도 주고 게임용 구슬도 줬습니다. 얼마 뒤 20대이던 파친코 게임기가 40대가 됐습니다. 자형과의 약속을 지키고도 돈이 남았습니다.

32세 때는 지하1층, 지상3층 빌딩을 소유하게 됐습니다. 1층엔 취미를 살려 음악다방을 열었고 2층은 양식당이었습니다. 40평 규모인 3층은 집으로 사용했죠. 당시로선 파격적인 시설인 자동문, 에어컨도 갖췄습니다. 동년배 일본 친구들보다 경제적으로는 훨씬 잘살게 된 것이죠. 파친코도 150대로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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