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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몸 공부, 마음 이야기 ⑥

‘형님’ ‘아우님’…술과 품 나누는 부처 같은 산골 이웃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형님’ ‘아우님’…술과 품 나누는 부처 같은 산골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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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아우님’…술과 품 나누는 부처 같은 산골 이웃

계곡 물을 논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웃들과 함께 보메기하는 모습. 한창때는 열 서너 사람이 함께 했는데 이제는 대여섯 사람이 한다.

이웃과 부대끼며 새삼 느낀 건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하는 부분보다 내가 이웃을 필요로 하는 면이 많다는 것이다. 이웃이 나와 같기를 바라고, 내 뜻을 이해하기를 바라고, 내 질서를 흐트리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에 대해서도 그렇다. 내가 세상을 필요로 하는 만큼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틈새가 넓을수록 상처를 많이 받는다.

가까이서 많이 부대낀 이웃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웃 사이 다툼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거나 거리라도 조금 떨어진 이웃과 소통이 더 잘됐다. 어쭙잖게 선심을 쓰다가 오해를 산 경험도 있다. 이웃이 원하지 않는 일인데 돕겠다고 나선 게 오히려 이웃한테는 부담이었나 보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좋은 이웃이 되기를 포기했다. 어쩌면 좋은 이웃되기보다 나쁜 이웃이 안 되기가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필요한 숨결을 나눌 수 있는 거리

그래서 생각한 게 이웃과 적당히 거리 두기다. 그게 어느 정도 가능한 게 우리 마을이다. 보통 마을은 우물이나 강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우리 사는 곳은 산골이라 그런지 집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다. 산중턱에 서너 집, 계곡 한쪽에 또 한 집, 다시 산허리 돌아 두세 집. 이런 식으로. 마을길만 같이 쓸 뿐 농사도 먹는 물도 마을 전체가 함께하지 않는다. 그나마 마을길이 어느 정도 포장되고 나서는 마을회의도 드물어 일년에 한두 번 모이는 게 고작이다.

점점 이웃 관계가 바뀌고 있다.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애매하게 어울리던 자리는 줄어든다. 대신에 되도록 손발이 맞고 호흡이 편한 이웃을 만나려고 한다. 거리가 조금 멀지만 공감대가 있다면 자주 만난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이웃 개념도 달라지는 게 아닐까. 우리 식구는 경남 산청에 사는 이웃과 가깝게 지낸다. 육십령 고개에 터널이 생기면서부터 그집 앞마당까지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그런 점에서 도시도 결코 멀지 않은 이웃이다. 우리 삶은 도시를 떠나왔지만 도시를 버린 게 아니다. 땅에 뿌리내릴수록 호흡도 깊어지는 것일까. 도시 사람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알고 다양하게 만나는 편이다.



이곳에 들어온 지 8년. 그 사이 몇 가정은 이곳을 떠났다. 벌써 주인이 몇 번 바뀐 집도 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이웃이 하나둘 떠나가고 그곳에 새로운 얼굴이 자리잡고 산다.

혜원(8)이네가 올 봄에 우리 이웃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여름이 지나는 지금까지 서너 번 만난 게 전부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게 아니다. 새로 이사 온 이웃과 미운 정은 되도록 들고 싶지 않다. 혜원이네 역시 적당한 거리 두기가 ‘딱 좋다’고 한다. 자신의 호흡으로 살아가되 필요한 숨결이라면 서로 나눌 수 있는 거리.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네 삶은 지난날의 농촌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길게 보면 자연스러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이웃과 자주 만나지 않아도 통하는 부분은 뜻밖에 많다. 농사를 잘 짓는다는 백 마디 말보다 밭의 곡식을 보면 이웃이 그대로 보인다. 집 안팎을 깨끗이 정리정돈하고 사는 이웃집은 스쳐 지나기만 해도 자극을 받는다.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은 이웃을 보면 내 일마냥 자랑스럽다.

시골 마을에서 갓난아기 울음소리를 듣는 게 쉽지 않다지만 우리 마을은 조금 다르다. 요 몇 년 사이 아이가 여럿 태어났는데 하나같이 자연분만했다. 산모가 젊은 사람도 있지만 마흔이 다 된 분도 있다. 조산원 분만에 이어 자기 집에서 아기를 낳은 ‘가정분만’한 경우도 몇 집 있다. 그러니 사람마다 무용담(?)이 만만치 않다.

우리집 주치의 하윤희씨

우리집 두 아이는 제왕절개로 낳았기에 내가 이웃에게서 받는 대리 만족은 크다. 나는 아내와 아기를 함께 만들었음에도 낳는 걸 함께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수술 끝나고 간호사가 안고 온 아기를 잠깐 보고는 또 아이랑 헤어져야 했다. 아내도 힘들었지만 아기는 환한 전기불빛 아래 낯선 사람과 날카로운 칼날을 보며 이 세상을 만난 것이다. 그러니 이웃이 누구든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는다면 괜히 나까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 머릿속에 아기가 ‘하늘 문’을 밀고 나오는 모습까지 그려지곤 한다.

그런 이웃 가운데 여기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윤희(39)씨. 그이는 산골로 오기 전에 도시에 살면서 약사로 일했다. 약국을 하면서 질병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했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자연의학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9년 가을, 우리 사는 산골에 처녀 혼잣몸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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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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