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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이 만들어낸 변방의 역사 ‘오랑캐의 탄생’

  • 임중혁 숙명여대 교수·사학 ijh@sookmyung.ac.kr

중국이 만들어낸 변방의 역사 ‘오랑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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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복기사와 만리장성

전국시대에는 호복기사(胡服騎射)의 채택과 장성의 축조라는 기념비적 사건이 있었다. 호복기사는 유목민의 의복을 입고, 달리는 말 위에서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형태로 고구려 무용총벽화에서도 그 모습이 발견된다. 중앙아시아의 이란계통 파르티아 유목민이 이런 자세로 활을 잘 쏴서 ‘파르티안 샷(Parthian Shot)’이라고도 한다. 근대적 무기가 출현하기 이전에 쏜살같이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며 쳐들어오는 기마전술의 전술적 가치는 정착 농경민족의 처지에서는 공포 그 자체였다. 중국은 호복기사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만리장성이 북방민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기보다 북방을 정복하고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쌓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방어적 구실보다는 군사적 공격과 영토팽창이 우선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흉노연합의 형성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진나라가 중원을 통일한 후 몽염 장군을 보내 오르도스 지역을 정복하고 식민화하는 군사 행동이 흉노제국을 형성한 원동력이 됐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묵특(冒頓) 정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4부에서는 역사 서술 체제, 사료 수집과 비판 등의 면에서 동양 역사 서술의 전범으로 평가되는 ‘사기’를 새롭게 조명한다. 저자는, ‘사기’의 ‘흉노열전’이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씌어진 유목민에 관한 최초의 역사서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지만 ‘사기’로 인해 북방 유목민은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획득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사마천이 ‘사기’에 유목민을 무질서한 야만인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사마천이 ‘사기’에 흉노를 기록한 방식을 들어 ‘오랑캐에 우호적인 사람’이라고 보일 정도로 객관적이라고 봤다.

사마천의 ‘사기’ 새롭게 조명



그렇다면 사마천이 흉노제국을 비롯한 이민족의 역사를 ‘사기’에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사마천이 북방 유목민을 중국사의 영역에 포함시켜 통일된 하나의 세계를 서술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고 봤다. 다시 말하면 북방 유목민이 제국의 규모를 이룰 만큼 위협적인 존재가 됐고, 중국인은 이러한 현상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열등하고 흉포한 존재로만 인식되던 주변 민족을 생략하고는 중국 역사를 도저히 기술할 수 없는 대외적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 진시황 시기부터 한 무제 때에 이르기까지 주변 이민족과 영토확장 전쟁이 빈번해져 중국 주변지역에 대한 민족적, 지리적 이해가 넓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사마천은 북방 유목민을 중국역사의 일부로 통합하는 방법을 꾀했고, 그 방법으로 찾은 것이 점성술적 음양이론인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이다. 이에 따르면 천체의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지상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하늘의 별들은 저마다 땅의 각 지역을 관장한다. ‘흉노열전’에 묘사된 흉노의 땅을 지배하는 별은 전쟁과 재앙을 상징하는 형혹(熒惑·화성)이다.

저자는 사마천이 과거 중국 역사에서 활약한 이방인들과 흉노를 연결하는 허구적인 계보를 설정함으로써 흉노가 지니는 무섭고 신비스러운 본질을 제거하고, 극복할 수 있는 존재, ‘이미 알고 있는 범주’로 환원해버렸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를 ‘북방 길들이기’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사마천의 주장은 그렇게 명쾌한 설명인 것 같지는 않다. 흉노의 기원설 역시 사마천이 단순히 일찍이 있었던 설을 채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과거 우리는 북방 이민족의 역사를 중국사 연구의 부수적 존재로만 인식해왔다. 중국인이 기술한 역사서에 얽매여 중국인이 가졌을 편견에 등한했던 것도 사실이다. 역사 서술의 행간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역사학자 본연의 자세이지만, 우리는 어느덧 중국인의 시각으로 역사를 봐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 문헌에만 의존하는 연구전통에서 벗어나 고고학적 자료 등을 도입하고, 역사서의 행간에 숨어 있는 진실을 찾으려는 디코스모의 연구자세는 배울 만하다. 다만 저자가 흉노 유목제국의 권력구조, 내부의 민족구성, 귀족체제 등과 같은 문제들을 고찰했더라면 ‘동아시아사에 있어서 유목민족세력의 흥기’라는 책의 원제에 더욱 접근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동아 200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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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중혁 숙명여대 교수·사학 ijh@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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