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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강력범의 범주

강력범의 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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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의 범주
세상이 하도 빨리 돌아가니까 벌써 지나간 이야기로 치는 분들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자꾸 곱씹게 되는 일이 있다. 바로 지난번 MBC 방송국의 생방송 프로그램에 홍대 앞에서 활동하던 펑크 뮤지션들이 나와 아랫도리를 내려버린 ‘카우치 사건’이다.

조금 넓게 본다면 그들과 나는 ‘동업자’일 수도 있다. 그들이나 나나 비록 음악의 장르는 조금 다르지만 그리 넓지도 않은 한국의 ‘인디 음악판’에서 사람들이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음악을 하고 있는 인디 뮤지션이다.

그 친구들은 ‘스컹크헬’ 레이블에서 펑크 록을 하고 있고 나는 ‘3호선 버터플라이’라는 인디 밴드에서 기타를 치고 있다(가끔 백 보컬도 한다). 그 친구들이 서울의 홍대 앞 어디에서 잘 모이는지도 대충 알고, 아마도 지나가다가 서로 몇 번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젊은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TV에서 이상한 짓을 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더구나 무슨 흉악범이나 강력범처럼 다뤄지는 것을 목격했을 때의 충격, 꽤 컸다.

여론의 강풍은 대개 강하고도 짧다. 그 바람 속에 카우치는 흉악범 내지는 강력범 취급을 받으며 조사받고 구속됐다. 바람은 지나갔고 나는 되묻는다. 그들은 과연 흉악범 내지는 강력범이었을까. 만일 흉악범이나 강력범이라면, 그들은 어떤 종류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속할까.

아마도 맨 처음에 경찰은 그들을 ‘마약 사범’의 범주에 넣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카우치 멤버들은 약물 조사를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그들이 마약 검사를 받았다는 소식에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그걸 가지고 여론의 도마 에 올리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기분이 너무 나빴다. 마약을 소지하지도 않았고 무슨 끄나풀의 제보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무조건 오줌을 누이고 마약검사부터 받게 할 수 있는 일인가. 경찰이 국과수인지 뭔지에다가 약물조사를 의뢰한 동기는 단 하나, ‘약을 먹지 않고서야 TV에 나와서 그 따위 짓을 할 수는 없으리라’는 밑도 끝도 없는 추측뿐이었다. 하긴 아이들 노는 꼴 보기 싫어하는 어른들은 자주 그런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마약을 먹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을 대상으로 2차 마약검사를 한다는 보도였다. 현장에서 마약을 손에 쥐고 있거나 거래하다가 경찰이 급습하여 증거물과 함께 검거된 현행범도 아닌데 머리카락을 강제로 뽑아 2차 마약검사까지 하는 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어린 딴따라 놈들이 TV에서 해괴한 짓을 했다고 해서 그걸 ‘마약’과 연결하다니, 한사코 그 말도 안 되는 비논리적 연결이 맞아떨어지는 걸 보겠다고 감기약만 먹어도 다 나온다는 악명 높은 검사를 머리카락 한올 한올 뽑아가며 하다니, 이건 완전히 인권 유린이다. 여론은 이때도 가만있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차 검사에서도 이들은 마약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의 톤은 약간 침울했다. 어쨌든 두 차례의 검사로 이들은 일단 악질 ‘마약 사범’의 범주에서는 벗어났다. 만일 이들에게서 약물 양성반응이 나왔다면 보나마나 여론은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거 봐라. 저 약돌이 놈들. 다 싹 잡아다가….”

아닌게아니라 요새 TV에서 방영하는 ‘제5공화국’을 보니 그런 추정에 의해 사람들을 싹 잡아들이던 시대가 있긴 있었다. 삼청교육대라는 이름을 지닌 밴드가 홍대 앞에서 활약한 적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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