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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이인호

“큰 일은 원칙대로, 작은 일은 타협하라” 삶의 버팀목 된 호숫가 대화

  • 최영미 시인·소설가 ymchoi30@hotmail.com

이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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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사를 지낸 이인호 선생님(왼쪽)은 최근 명지대 석좌 교수로 재직 중이시다. 나는 인생의 여러 고민부터 신간의 제목까지 선생님께 의견을 구할 만큼 그분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내 뇌세포에 저장되었던 분명한 목소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인도했다. 계열별로 입학해 교양과정 1년을 수강한 뒤에 전공학과를 정했는데, 제1지망으로 독문학을 쓸까 서양사를 쓸까, 문학인가 역사인가를 놓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다 ‘러시아’와 ‘지성’을 말했던 선생님의 얼굴이 아른거려 나는 서양사학과로 진학했다.

추억의 교정에 스물하고도 다섯 번째의 가을이 피었다 지고, 혁명도 자유도 진부해진 중년의 거실에 웅크려 나는 곰곰이 곱씹어본다. 혁명이란 단어가 나올 때마다 전율했던 가을날 오후, 이미 내 생의 방향이 정해진 게 아니었을까. 내가 그날 심포지엄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다르게 흘러갔을까. 나의 우상이던 선생님을 따라 서양사를 전공으로 택하지 않았다면, 역사와 철학의 본거지였던 5동이 아니라 어문계열이 몰려 있는 2동에서 왔다갔다했다면….

서양사학과에 진학했지만 정작 역사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교실 뒤편에 앉아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지만, 앞서 언급한 심포지엄에서의 첫 만남에서처럼 선생님의 말씀이 크게 울리지 않았다. 이미 선배들이 주입시킨 의식화교육의 영향으로 잔뜩 바람이 들어가 오만하고 복잡해진 머리에는 역사 수업과 무관한 오만 가지 상념이 똬리를 틀었다.

학내시위가 며칠 간격으로 터져 어수선하던 어느 날 영어로 진행되었던 서양현대사 수업은 특별했다. 이인호 선생님이 초빙해 한국의 강의실에 나타난 저명한 외국학자에게 수줍은 여학생은 손을 들어 질문할 용기는 없었지만, 학문적 열기가 무엇인지 몸소 체험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1980년대에 한국에서 국립대학의 교수라는 직책은, 급진적 사회변혁을 꿈꾸는 학생운동의 진원지였던 서울대의 교수 자리는 결코 편한 방석이 아니었다. 교수도 학생도 학문에 정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든 학생들을 지식의 세계로 인도하려 최선을 다했으며, 학과생들이 관련된 굵직굵직한 시국사건이 터질 때마다 멀찌감치 물러나 사태를 관망하지 않고 제자들을 보호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인호 선생님은 서양사학과 80학번의 유일한 여학생이던 나뿐 아니라 모든 학년의 여학생들을 전담하는 지도교수였다. 언제이던가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지도교수와 학생간의 의례적인 면담을 마치며 슬쩍 선생님의 발을 쳐다본 적이 있다. 굽이 없는 편한 구두에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이 무척 시원하며 멋있어 보였고, 그래서 다음부터 나도 선생님을 흉내내어 여름에는 ‘랜드로바’ 밑에 스타킹을 신지 않았다.

패션을 따라 했을 뿐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나는 내가 흠모하던 선생님과 어떤 특별한 인연을 만들지 못했다. 학내 시위에 휩쓸려 무기정학을 받은 뒤부터 나는 전공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고, 학교에서 쫓겨나 선생님들을 접촉할 기회도 차단되었다.

제자들을 위해 차려낸 저녁상

복학한 뒤 겨울이었나. 2학기가 끝날 즈음 이인호 선생님께서 당신이 가르치는 전공과목을 수강했던 학생들 전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일대 ‘사건’이 있었다. 당시의 특수한 학내 사정상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서먹서먹하면 다행이었는데, 교수님이 학생들을 자택에 초대하다니. 난생 처음 스승의 집안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직접 준비한 요리를 맛보는 특권을 누리는 동안 나는 감격했더랬다(그때의 감격은 그 시절을 회고하는 2005년 현재 내가 체감하는 것처럼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청량리 외곽의 아담한 주택을 떼거지로 방문한 어린 손님들을 위해 1층 거실에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은 촌스러운 우리들의 배에 들어가기에는 과분한 훌륭한 요리였다. 맛은 물론 모양과 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반찬을 담은 그릇들에 이르기까지 어디하나 빠지지 않는 거의 예술에 가까운 환상적인 밥상이었다. 지금도 나는 선생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당신의 결코 사치스럽지 않으면서도 멋스러운, 매우 창조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식탁과 부엌살림에 늘 감탄하곤 한다.

제자들을 위해 친히 따뜻한 음식을 장만한 스승의 정성에 감사하기에 앞서, 철없던 일행 중의 누군가가 경직된 말투로 서구적인 상차림에 대해 무어라 시비를 걸었던 것 같은데, 접시를 나르는 선생님의 발목까지 내려오는 러시아 민속치마의 화사함에 시선을 빼앗겼던 나는 밥상머리에 잠시 감돌았던 긴장도, 선생님의 의연한 대처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선생님 집을 나와 갑자기 추워진 골목길에서 담배를 하나씩 나눠 피우고 우리는 뿔뿔이 헤어졌다. 나의 학창시절에 드문 낭만적인 장면이었다고 내가 그날 밤을 그리워하는 건, 아마도 내가 남학생들과 자연스레 어울려 학생인 우리의 본분에 맞게 우리가 있어 마땅한 자리에서 젊은 열기를 방출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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