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자력으로 자국을 지키는 독립국가이니 당연히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미국군에 맡겨놓고 있으니 ‘한국은 주권(主權)이 없는 나라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해외 안보전문가들은 이를 꼬집어 “한국은 일본 이상으로 미국에 안보 무임승차를 해온 나라”라고 지적했다.
올해 한국 국방비는 230억달러(약 22조8000억원)인데, 이는 세계 10위쯤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세계 최고의 국방비 지출국은 연 4800억달러 이상을 쓰는 미국. 2위군(群)은 일본·영국·프랑스·독일·중국 등인데 연 300억∼800억달러를 국방비로 지출한다. 그리고 연 100억∼300억달러를 지출하는 3위 그룹에 한국·이스라엘·대만·인도·사우디아라비아·이탈리아·캐나다·러시아·터키·호주 등이 포진해 있다.
한국은 무역이나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마찬가지로 국방비 지출에서도 세계적 강국인 것이다. 이 정도의 ‘군사 강국’이라면 전시 작통권을 환수해 국가의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누구보다도 자주(自主) 의지가 강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은 왜 작통권 환수를 추진하지 않았을까.
‘현재의 적대상태가 계속되는 한…’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이 미군에 넘어간 계기는 6·25전쟁이다. 당시 8개 사단이던 한국군은 10개 사단으로 구성된 북한군의 선제공격에 밀려 초전에 3개 사단(2, 5, 7사단)이 사실상 궤멸하고 최고사령부인 육군본부가 마비되는 위기에 빠졌다. 의병이라도 일으켜야 할 상황이되자 김홍일, 김석원 등 중국군과 일본군 출신의 노병들이 패잔병을 끌어모아 방어전을 펼치는 처지가 됐다.
이때 희망의 불씨를 지핀 것이 유엔이었다. 1950년 7월7일 유엔은 침략자인 북한군을 응징하기 위해 유엔기(旗)를 사용할 수 있는 다국적군 사령부(당시 표현은 ‘통합군 사령부’, Unified Command)를 결성하고, 미군이 이 사령부를 통제하도록 했다. 유엔 깃발을 사용하는 다국적군(이하 유엔군) 구성이 확정되자 ‘외교의 귀신’이라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군을 더 빨리 끌어들이기 위해 비상수단을 내놓았다.
미군 연합참모본부(지금의 합동참모본부)는 유엔군을 지휘할 부대로 도쿄에 본부를 둔 미 극동군 사령부(사령관 맥아더 원수)를 지정했다. 7월14일 이 대통령은 ‘현재의 적대상태가 지속되는 한(during the period of the continuation of the present state of hostilities)’라는 단서를 달아 한국군에 대한 ‘모든 지휘권(all command authorities)’을 넘기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맥아더 원수에게 보냈다.
지금 한국에서는 ‘all command authorities’를 ‘모든 지휘권’으로 번역한다. 하지만 ‘all command authorities’는 헌법상 대통령이 가지는 것으로 규정한 ‘통수권(統帥權)’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통수권은 영어로 ‘the prerogative(특권) of supreme(최고) command’로 표기하지만, 뒤에서 설명할 NCMA에서처럼 ‘command authorities’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헌법에서 규정한 권한을 외국에 이양할 때는 국민투표나 국회 표결을 통해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모든 것이 다급했으므로 이 대통령의 행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은 없었다. 당시 육군 지휘부는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이 36세일 정도로 젊었고 이 대통령은 만 75세의 고령이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외교의 달인이고 영어를 워낙 잘했으므로 그 누구도 미국과 접촉하는 이 대통령에게 조언할 형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