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시간만 25시간에 달하는 지구 반대편 브라질. 세계 3대 폭포인 이과수 폭포 옆의 버본 이과수 골프 클럽은 메뚜기가 떼지어 날아다닐 정도로 러프가 길고 코스가 정비돼 있지 않아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 하지만 순박한 캐디들과 함께 호젓하게 ‘대통령 골프’를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지 인디오 말로 ‘이과수(Iguacu)’는 ‘큰물’이란 뜻이다. 아마존 다음으로 큰 강인 리우파라나(Rioparana)는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국경을 따라 흐른다. 그러다 1억2000만년 전에 분출한 용암이 굳어지면서 생긴 100m 현무암 절벽 아래로 굉음을 울리며 떨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이과수 폭포다. 폭 3km로 275개의 크고 작은 지류 폭포가 있으며 초당 1400t의 다갈색 물을 흘려보낸다.
이과수 폭포를 관광하면서 꼭 봐야 할 것은 ‘악마의 목구멍’이다. 폭포 상류 3면에서 합쳐진 강물이 인간의 목구멍 같은 낭떠러지 계곡 속으로 급락하는데, 인디오들은 이곳에 한번 빠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악마의 목구멍이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다갈색의 장대한 물줄기가 뿜어내는 흰색 포말과 굉음, 그리고 햇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무지개 색채로 표정을 바꾸는 폭포를 보노라면 진한 감동과 함께 공포마저 느끼게 된다. 대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뭐니뭐니 해도 이과수 폭포 관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스피드보트를 타고 폭포 바로 아래 용소(龍沼)까지 가서 물이 낙하하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이다. 이곳에 도달하면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물벼락 세례가 온몸을 적셔 오싹하기까지 하다. 테마파크의 놀이기구를 탈 때와는 전혀 다른 스릴을 즐길 수 있다.
이과수 폭포의 리조트 단지 안에 골프 코스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현지 가이드에게 관광이 끝나는 날 꼭 골프를 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브라질 사람들은 오직 축구에만 열정적일 뿐 골프를 즐기는 사람은 매우 적기 때문에 부킹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콸에아 디스탄시아?”
다음날 버본 이과수 골프장(Bourbon Iguassu Golf Club & Resort)에 도착했다. 1993년 문을 연 이 골프장은 전장 6982m, 파 72홀의 국제 규모로 현지 중국계 브라질인이 경영하고 있다. 코스는 대체로 평탄하며 그린 앞에는 중간 정도 깊이에 붉은색 모래가 가득한 두 개의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다. 코스 양쪽으로는 키가 장대만한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도열해 있고,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곳곳에 워터해저드를 배치했다.
한마디로 특징 있는 홀은 없으나 전장이 길고 러프가 깊다. 또한 그린에 기복이 없고 평평하지만 결코 좋은 스코어를 기대하기 어렵다. 메뚜기가 떼로 날아다닐 정도로 러프가 깊어 공이 러프에 박히면 샌드웨지로 쳐내야 겨우 벗어날 수 있을 만큼 코스가 정비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포르투갈어 사용이 여의치 못한 우리 일행은 영어 반, 손짓발짓 반으로 의사소통을 한 끝에 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캐디를 배정받아 카트를 타고 1번 홀에 당도했다.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 렌트한 드라이버를 캐디에게서 건네받았는데 15년 전 한국에서 유행하던 링스(Linx) 채였다.
그립이 너무 미끄러워 스윙하는 동안 손에서 빠져나가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티샷을 해서인지 심한 슬라이스가 났다. 함께 플레이를 한 동반자는 토핑(topping)을 하고 말았다.
37℃까지 치솟은 한여름 브라질의 뜨거운 날씨와 습기 속에서 진행한 라운드는 시작부터 고전의 연속이었다. 깊은 러프에서 겨우 공을 찾아 아이언으로 세컨드 샷을 하자 풀이 워낙 길고 억세어서 채가 잘 빠지지 않는다. 겨우겨우 그린 에지까지 공을 갖다놓고 칩샷을 했는데, 풀이 긴 데다 땅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라 공이 제대로 구르지 않았다.
두 번째 파4홀에서 티샷을 한 다음 공이 날아간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메뚜기떼와 작은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페어웨이에 안착한 공으로 세컨드 샷을 하려고 캐디에게 남은 거리를 묻자 눈만 멀뚱거린다. 그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채를 뽑아 건네줄 뿐이다.
오래간만에 세컨드 샷이 핀 옆에 붙자 캐디가 “보아 조가다(Boa Jogada)!”라고 하면서 좋아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이스 샷’이라는 뜻이다. 검은 얼굴의 19세 캐디와 친해지면서 18홀을 도는 동안 포르투갈 골프용어를 많이 배웠다.
동반자가 버디를 기록하자 “벰 페이토(Bem Feito)!”라면서 박수를 쳐준다. ‘나이스 퍼팅’이라는 뜻이다. 다음 홀에서 필자가 빨랫줄 같은 드라이버 샷을 날리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따봉, 따봉”을 연발한다. ‘최고’라는 뜻으로, 오래 전 어느 음료 CF에서 등장해 우리 귀에도 익은 말이다. 공이 연못에 빠지면 캐디가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내리며 “아구아(물, Ague Agua?)”라고 외친다.
세계 어느 골프장에서든 필드에 선 골퍼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그린까지의 거리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는데 4번째 홀이 지나면서 그제야 캐디가 우리가 답답해하는 까닭을 알고 “콸에아 디스탄시아(Qual e a distancia)?”라는 말을 가르쳐준다.
또한 클럽 선택은 골퍼가 해야 하므로 포르투갈어로 1부터 10까지는 알아야 원하는 클럽을 받을 수 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결국 스코어 카드에 ‘1-UM(움), 2-DOIS(도이스), 3-TRES(트레스), 4-QUATRO(콰트로), 5-CINCO(싱코), 6-SEIS(세이스), 7-SETE(세테), 8-OITO(오이토), 9-NOVE(노베), 10-DEZ(데스)’를 써놓고 열심히 외우며 골프를 치는 수밖에 없었다.
남미 특유의 코스 경관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브라질 제1의 도시인 상파울루를 경유,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해 다시 이곳 이과수 폭포까지 오는 데 비행시간만 25시간이 걸렸으니 정말 먼 길을 날아온 셈이다.
위도상으로는 우리나라와 완전히 반대편인 이과수 폭포 옆에서 우리나라 골프장 플레이어와 지구 중심을 사이에 두고 거꾸로 서서 골프를 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18홀 그린을 향해 세컨드 샷을 날리려 는 순간, 붉은색 부리에 까치처럼 생긴 예쁜 새가 어찌나 아름답게 지저귀는지 잠시 동작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새가 지저귀는 서쪽 나무를 쳐다보니 그 뜨거웠던 남미의 태양도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포르투갈 양식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과 워터해저드 옆에 선 키 큰 팜트리, 그리고 황토색 벙커가 조명을 받아 코스가 한층 더 아름답고 우아해 보였다. 캐디에게 1인당 10달러씩 팁을 주니 “오브리가도(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라운드 후에 골프장 지배인 호나우두씨와 남미 특유의 코카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이 골프장은 이과수 폭포에 관광 온 골프 마니아들이 한 번씩은 들러 플레이하는 곳이어서 일본, 미국, 독일, 스페인 등 세계 각국 출신의 골퍼들이 찾는다고 한다. 그래도 하루 20여팀밖에 찾지 않아 적자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린피가 미화 150달러로, 이 나라 물가를 고려하면 매우 비싼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같이 남미 관광객이 늘어나면 대한항공 여객기가 상파울루에 재운항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자 지배인은 크게 반기면서 “한국 골퍼가 더 많이 방문해서 골프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종업원들에게 한국말도 가르치고, 한국인 골퍼들을 최상의 서비스로 모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골프 코스 정비 능력은 떨어지지만 세계 최고의 관광지인 이과수 폭포 옆에서 앞뒤 홀에 아무도 없는 여유로운 ‘대통령 골프’를 즐길 수 있는 데다 남미 특유의 코스 경관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캐디들도 무척 순박하고 친절해 매우 인상적인 골프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지를 진동하며 떨어지는 이과수 폭포의 물소리와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라는 이타이푸 댐의 위용, 그리고 메뚜기가 날아다니는 골프장을 떠올리면 비록 험난한 여행길이었지만 그만한 관광지가 또 있을까 싶어 흐뭇한 마음에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