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호

발견의 미학

  • 입력2006-03-28 17: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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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견의 미학
    열차를 탈 때마다, 긴 플랫폼을 걸어갈 때마다, 열차 계단에 첫 발을 올려놓을 때마다, 중얼거린다. 나는 내 영혼을 만나러 떠난다! 그리고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부르르 떠는 열차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열차가 미끄러지듯 출발할 때, 또 중얼거린다. “열차가 아니었으면,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그들이란 한국 근대 소설의 효시로 불리는 ‘무정(無情)’(1917)의 주인공 이형식과 박영채, 김선영과 김병욱이다. 소설이 끝날 무렵 어긋난 운명의 주인공들은 한자리에 모이는데, 그 장소가 바로 부산행 열차다. 맺지 못할, 아니 풀지 못할 인연들이 달리는 열차에서 해후한다! 소설이 아니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비록 우연성이 지나치기는 하지만, 이 열차칸 장면을 나는 사랑한다.

    조금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 장면이야말로 소설 ‘무정’을 근대의 세계로 진입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열차, 그러니까 근대의 산물을 바로 소설에 끌어들인 작가, 그리하여 주인공 형식과 영채, 선형과 병욱과 나란히 또 하나의 주인공의 자리를 소설에 마련한 작가 이광수야말로 근대 작가임을 새삼 증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작가 이광수가 열차를 통해 주인공들의 해후를 매개함으로써 소설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처럼, 21세기 초 서울-부산 간 초고속 열차는 내 운명, 즉 내 소설적 삶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초고속 열차로 인해 나는 일산 호숫가에 살던 삶을 꾸려 부산 해운대 바닷가로 옮겨온 것이다. 새벽 어스름 잠에서 깨어나 저 멀리 창밖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볼 때면 매번 처음 바다와 마주하는 양 ‘아, 바다!’ 하고 감탄을 하는데, 그것은 열차가 떠나기 직전, 열차칸에 앉아 내지르는 ‘아, 열차!’의 탄성과 다르지 않다. ‘초고속 열차가 아니었으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아침 저 바다를 만날 수 있었을까?’

    한 달에 두어 번 초고속 열차를 타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것을 나는 축복으로 여기며 산다. 축복이란 별 게 아니다. 내가 나를 배려할 때 나오는 감사의 마음이다. 일 때문에 서울에 가거나 부산에 가지만, 마음은 여행자의 기분을 한껏 누리는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거기 있다. 그것을 어떻게 발견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다. 서울역 광장에 서본다. 광장 시계탑, 구역사, 비둘기떼, 광장 앞 고가도로, 거대한 빌딩 숲, 그리고 전면이 유리인 신역사.…그것들은 늘 그래왔듯이, 어제처럼 오늘도, 또 내일도 그렇게 놓여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 눈, 내 가슴이다. 노을에 불타는 구역사를 본 적이 있는가. 보고, 또 본 적이 있는가. 2층 난간에서 여섯 갈래 열 갈래의 플랫폼을 내려다본 적이 있는가. 보고, 또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난간에서 떠나는 모든 것을 우람하게 감싸고 있는 위, 그러니까 천장을 올려다본 적이 있는가. 보고, 또 본 적이 있는가.

    인상파 화가들, 특히 모네와 마네는 열차와 열차역 풍경에 민감했다.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근대인인 까닭이다. 열차를 화제(畵題)로 한 마네의 그림 ‘아르장퇴유’와 ‘철도’가 세상에 나온 것은 1870년대. 그리고 같은 시기 모네는 ‘생 라자르’ 역에 몰두했는데, 생 라자르 역, 그리고 그와 관련된 그림을 그는 무려 7점이나 그렸다. 생 라자르 역은 파리 북부 지방으로 들고나는 관문이다. 모네는 수련 연못으로 유명한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거처를 정한 뒤 수시로 생 라자르 역을 통해 파리를 오고 갔던 것. 그가 간 길, 그 역을 따라 그의 인상파 기법을 추종하는 화가들이 모여들었고, 이후에는 그가 남긴 그림을 따라 세계의 이방인들이 그 길, 그 역을 찾고 있다.

    나에게 열차와 열차 역의 존재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해준 것은 인상파 화가들, 마네와 모네다. 한 달이면 두어 번, 심지어 서너 번까지 서울역사를 찾는 나는 열차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열차를 타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신청사 2층 라운지 벤치에 앉아 저 아래 펼쳐진 플랫폼과 그 사이를 오가는 발길과 그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저 높은 천장과 벽의 투명한 철골 구조를 예술품을 감상하듯 하나하나 음미한다. 아니, 그것이 예술품이 아니고 무엇이랴. 모네의 생 라자르 역이 아니었어도 그것들은 나에게 그런 의미를 던질 수 있었을까?

    열차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다리다. 강의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다리, 바다의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대교. 열차보다도 자주, 아니 매일 나는 다리를 건너며 전율한다. 하나의 다리가 거기 놓여 있기까지 그것이 거느리고 있는 장치와 풍경에 열광한다. 우아한, 또는 단아한 난간들과 그 사이를 별처럼 수놓은 가로등불들, 출렁이는 물결 속에 듬직하게 곧추 서 있는 기둥들, 그리고 무엇보다 창공을 분할한 아치 탑들의 행진.

    나는 초고속 열차를 타고 부산, 또는 서울로 향할 때 목적지에서 할 일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열차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짧은 삶을 산다. 그렇듯 하나의 다리를 통과하는 동안,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목적을 던져버리고 오로지 다리, 그 자체 예술품을 감상한다. 그래서 어느 날에는 자유로를 타고 홍대 앞으로 가다가 오직 한강에 놓여 있는 다리들에 홀려 내처 팔당까지 내달리거나, 거꾸로 홍대 앞에서 강변북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석양에 더욱 붉게 빛나는 방화대교에 홀려 다리를 건너 영종대교까지 이르고 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혈육이나 지인의 초대를 받아 출발할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내가 건널 수 있는 다리들이다.

    대천 어머니에게 가는 길에는 7000m가 넘는 서해대교가 있고, 송파 막둥 오라비에게 가는 길에는 열 개도 넘는 다리들 중 청담대교가 있다. 그리고 아침저녁 직장인 동아대학으로 가는 광안리 푸른 바닷길에는 백색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광안대교가 있다. 바다같이 넓은 한강변을 달릴 때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진정 드넓은 바다 위를 달리며 나는 겨드랑이에서 비죽비죽 날개가 돋아날 듯 기분이 마구 상승하는 것을 느낀다.

    열차의 경우처럼 내가 다리에 심취하게 된 계기가 예술 작품에서 비롯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나는 도쿄 근대서양미술관에서 모네의 뿌윰한 안개에 싸인 ‘워털루 브리지’를 만나기 이전에 ‘다리 위에서’(1990)라는 단편 소설을 썼으니 말이다. 소설 ‘다리 위에서’는 다리를 매개로 한 현상학적 환원을 그린 작품이다. 나와 너,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공상의 연결, 즉 ‘이어줌’을 상징한다.

    열차와 열차역, 그리고 다리 등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문명의 시설은 누가 보고 누가 느끼느냐에 따라 차가운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의 옷을 벗고 하나의 시학, 하나의 예술로 존재한다. 태양은 매일 묘지 위에, 또 바다 위에 떠오른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다. 헤밍웨이는 1925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쓰면서 이렇게 적었다. “세상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기보다 그 속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나의 관심사다.”

    발견의 미학
    咸貞任
    ●1964년 전북 김제 출생
    ●이화여대 불문학과
    ●작품 : 소설집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동행’‘당신의 물고기’ ‘춘하추동’,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 ‘인생의 사용’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장편소설 ‘행복’ 등
    ●現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일상보다 강력한 것은 없다. 일과 옷과 가구와 마누라, 전쟁의 공포까지 한입에 꿀꺽 삼키는 것이 일상, 습관의 힘이라 했다. 예술은 그 막강한 일상과 습관의 벽에 반하는 유일한 힘이다. 불어오는 봄바람 속에 내 눈의 예술, 내 삶의 미학을 돌아볼 일이다. 그리하여 매일 입 속으로 중얼거려볼 일이다. 나는 내 영혼을 찾으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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