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공사 중인 다리 아래가 어느 곳보다 편안한 이들이 있다. 화려한 도심으로 나가기 두려운 영혼들이 ‘퐁네프의 다리’에 둥지를 틀었다. 시력을 잃어가는 화가 미셸, 곡예를 하며 하루살이 생을 사는 알렉스. 최악의 상황에서 만난 두 사람의 사랑은 비정상으로 보일 만큼 강렬하다. 그러나 가난한 마음을 가진 이들의 사랑이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 또한 고독하기 때문이리라.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은 노숙을 하며 불우한 삶을 살아가는 소외된 인물들의 원초적인 사랑을 다룬다. 산다는 게 어떤 것이고, 사랑의 정체란 무엇인가. ‘사랑’ 하면 선남선녀의 것만을 떠올리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무리의 사랑은 의미 없는 날갯짓에 불과한 것일까.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삶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고뇌가 있어야 비로소 사랑을 삶의 큰 테두리 안으로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퐁네프’는 ‘새로운 다리’라는 뜻이지만 사실 프랑스 파리의 센 강 양편을 이어주는 9개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낡은 다리다. 이를 배경으로 불우한 두 남녀의 애절하면서도 야릇한 원초적인 사랑과 절대 고독이 충격적으로 펼쳐진다.
‘인간 소외’는 현대 사회학에서 깊이 있게 다루는 주제로 주요 대학 입시에 논제로 출제되고 있다. 또한 급증하는 자살 등 현대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관련된 여러 논제와 아울러 언급되는 단골 메뉴다.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8번 2악장. 암울한 느낌을 주는 첼로음을 따라 자동차가 푸른 형광빛 터널로 미끄러진다. 자동차가 터널을 빠져나간 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네온사인으로 번쩍이지만 공허하다. 다큐멘터리처럼 롱테이크 방식으로 구성한 이 장면은 지치고 상처받은 소외된 영혼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화려한 도시 한가운데, 남자 주인공 알렉스(드니 라방 분)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도로 위를 걷다가 차에 치여 쓰러져 있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여자 주인공 미셸(줄리엣 비노쉬 분)이 낡은 캔버스를 들고 걸어가다가 이 광경을 목격한다.
퐁네프, 그들의 보금자리
알렉스는 병원에서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자신의 보금자리인 퐁네프로 온다. 그곳에는 ‘퐁네프의 보수 공사를 위해 다리를 폐쇄한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그래서 상처받은 영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안식처다. 알렉스는 거리의 곡예사다. 그와 함께 다리에서 생활하는 늙은 한스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방황하고 있다.
알렉스가 누워 자던 자리에 미셸이 이불에 비닐까지 덮고 자고 있다. 알렉스는 미셸의 소지품에서 미셸의 애인 줄리앙의 존재와 미셸이 부유한 집안 출신임을 확인한다. 미셸은 사랑을 잃고 시력까지 점차 희미해지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거리를 헤매는 화가다.
한스는 미셸을 깨워 “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며 쫓아버린다. 미셸을 뒤따라가는 알렉스. 알렉스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다 쓰러지는 미셸. 알렉스는 미셸을 다시 퐁네프로 데려온다. 알렉스가 한스에게 “며칠만이라도 여기에 있게 하자”고 사정하자 “내 눈앞에는 얼씬거리게 하지 마라”며 허락한다.
알렉스는 시장에서 훔친 생선으로 회를 쳐 미셸에게 준다. 이때 카메라는 죽은 물고기의 눈을 비추며 멀어가는 미셸의 눈을 연상하게 한다. 알렉스는 또 라디오를 주워 미셸에게 선물로 준다. 미셸 앞에서 곡예를 하며 입에서 불을 내뿜는 알렉스. 휘발유를 머금은 알렉스의 얼굴과 그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휘발유 줄기가 불길로 변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영화에서 불은 미셸에게 직접 고백할 용기가 없는 알렉스의 강렬한 사랑의 시각적 표현이다. 그러나 시력을 잃어가 괴로운 미셸은 이런 알렉스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퐁네프에서 다시 만난 미셸과 알렉스.
“사랑은 침대가 필요한 거야”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미셸은 폭죽이 환하게 터지는 퐁네프 위에서 격정적으로 춤을 추고, 알렉스도 뒤따라와 함께 춤을 춘다. 이때 음악은 데이비드 보위의 로큰롤에서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로 바뀐다. 길게 이어지는 춤을 추는 두 사람. 알렉스의 사랑이 미셸에게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시사한다. 휘황찬란한 불꽃과 광기어린 이들의 미친 듯한 춤. 이를 담아내는 역동적 화면 전환은 ‘미학적이고 개성적인 영상 표현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함께 포도주를 마신 두 사람은 센 강으로 향한다. 알렉스는 보트를 몰고, 미셸은 수상 스키를 탄다. 미셸은 집에서 가져온 아버지(대령)의 권총을 알렉스에게 건네며 “이것 때문에 악몽을 꾼다”며 “센강에 버려라”고 한다. 권총을 건네받은 알렉스는 권총 대신 신발을 강에 던진다. 알렉스는 잠자는 미셸의 머리맡에 사랑을 확인하는 메모를 써놓은 다음 한스에게 가서 “잠이 오지 않으니 수면제를 주세요. 미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한스가 “여기에 사랑은 없어. 사랑은 바람 부는 다리가 아니라 침대가 필요한 거야”라고 대꾸한다.
잠에서 깨어난 미셸에게 한스가 “거리의 생활이란 맞고 강간당하고 또 그것을 잊기 위해 술 마시고 그러다가 폐인이 되는 거야. 넌 죽은 내 마누라와 비슷하게 생겨 자꾸 그녀 생각이 나게 해. 떠나”라고 말한다. 그러자 미셸은 “떠나기 전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고 싶어요. 눈이 좋지 않아 형광등 불빛 아래서는 볼 수 없어요”라며 애원한다.
미셸과 한스는 늦은 밤 박물관을 찾아간다. 한스가 미셸을 목말태우고 미셸은 촛불을 든 채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감상한다. 캄캄한 박물관 안에서 한스는 미셸을 포옹한다. 다음날 한스는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알렉스와 미셸이 지하철역을 걷는다. 앞을 보기 힘들어진 미셸이 “작은 것은 보이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러자 알렉스는 미셸을 웃기려고 큰 동작의 제스처를 한다. 앞서 걷던 알렉스가 미셸을 찾는 가족들이 내건 포스터가 지하철 벽에 가득 붙은 것을 발견한다.
‘미셸 스타렌. 24세. 1m67cm. 행방불명. 시력을 잃어가고 있음. 시력 회복을 위한 새 치료법 발견. 늦지 않으면 회복 가능. 하루가 급함. 조르주 스타렌 대령.’
포스터를 보지 못하는 미셸. 알렉스는 미셸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포스터를 찢고 불을 붙인다. 지하철 통로가 온통 화염에 휩싸이고, 포스터가 실린 차가 폭발해 포스터를 붙이는 사람에게 불이 옮겨 붙는 엄청난 사고가 난다. 두 사람은 허겁지겁 뛰기 시작한다.
소외된 이들의 치열한 사랑
미셸과 알렉스는 다시 퐁네프로 돌아와 포옹하고 있다. 그 사이 낡은 라디오에서 미셸을 찾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 방송을 들은 미셸은 알렉스가 잠든 사이에 퐁네프의 벽에 이렇게 써놓고 떠나버린다.
“알렉스 널 진심으로 사랑한 적은 없어. 날 잊어줘. 미셸.”
이를 본 알렉스는 “아무도 나에게 잊는 방법을 가르쳐줄 순 없어”라고 독백하며 권총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날려버린다.
방화범으로 체포된 알렉스는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시력을 회복한 미셸이 알렉스를 면회 온다. 두 사람은 알렉스가 출감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공사를 마친 퐁네프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눈 내리는 퐁네프에서 알렉스와 미셸이 해후한다. 미셸은 흰색 반코트를 입고 화사하게 미소지으며 나타나 알렉스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두 사람은 축배를 든다. 알렉스가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다”고 하자 미셸은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때 알렉스는 미셸을 끌어안고 다리 난간에서 센 강으로 뛰어내린다. 아틀란티스로 가는 모래 운반선에 의해 구조된 미셸과 알렉스는 배 앞머리에 나란히 기대어 있다. 달리는 배와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1991년 프랑스의 레오 카라(Leos Carax)가 감독한, 소외된 인간들의 자폐적인 사랑의 격렬함을 그린 영화다. 그는 ‘누벨 이마주(Nouvelle Image)’의 선두 주자로서 미학적이고 역동적인 영상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의 화면 속에는 비애의 정조가 깃들인 아름다운 색채와 섬뜩한 광기 어린 움직임이 담겨 있다. ‘누벨 이마주’란 ‘새로운 이미지’란 뜻으로 1960년대의 ‘누벨 바그(Nouvelle Vague)’에 빗대어 지어낸 말이다. ‘새로운 물결’이란 뜻인 ‘누벨 바그’가 ‘관습화된 영화 형식의 거부’를 추구하는 영화 사조라면 ‘누벨 이마주’는 영화를 이미지의 다발로 엮어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미셸 역의 줄리엣 비노쉬는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거리를 헤매는 화가를 실감나게 연기해냈다. 알렉스 역의 드니 라방은 레오 카라의 앞선 영화들에서도 알렉스라는 이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레오 카라가 영화평을 쓰던 시절의 필명이 알렉스임을 상기한다면 그의 영화 속 알렉스는 레오 카라 자신을 대신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알렉스의 반항적인 모습이나 제스처는 프랑스의 천재 악동 랭보나 보들레르를 상기시킨다. 그의 대사 또한 랭보나 보들레르의 시구를 변형한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 속 논술·구술 워밍업
▼ 현대사회에서 인간 소외를 느끼게 하는 요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핵심 기본 논제 1
▼ ‘퐁네프의 연인들’의 등장인물은 소외된 인간이다. 현대사회의 인간 소외 현상에 대하여 논술하시오.
예시 답안
고도의 지식정보화 사회가 펼쳐지고 물질주의가 팽배하면서 인간이 서로 고립되고 단절되는 소외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인간 소외 현상은 다양한 양상을 띤다. 물질주의에서 인간 소외가 비롯됐지만 사회 전체에 비인간화가 만연해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있다. 예컨대 행정 사무적인 관료조직, 효율성을 위해 모든 인간적 가치를 도외시하는 기업조직과 산업조직이 그렇고, 인간적 가치를 가르치지 않고 지식 전달의 효율성만을 따지는 학교 교육도 그렇다. 뿐만 아니라 타인을 이해타산의 관점으로만 대하는 현실 역시 인간 소외의 한 양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 소외의 정확한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소외를 ‘인간이 만든 것으로부터 오히려 지배받는 것’으로 규정한 포이에르바흐에 따르면, 소외는 타인에게 배척당하거나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스스로가 ‘자기로부터 소외’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즉 인간다운 자기의 본질을 잃고 세상의 물질적 가치를 맹목적으로 좇는 삶에서 인간 소외가 시작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개인의 ‘자기로부터의 소외’가 인간 서로간의 소외를 낳는다고 설명했다. 즉 타인과의 인간적 대화를 회피하는 것 자체가 ‘도피’라는 것이다. 이런 인간 소외가 굳어 사회 전체가 비인간화되며, 대표적 양상은 ‘효율성’의 신화에 지배당하는 사회 현실이다. 효율성의 신화란 곧 인간이 ‘어떻게?’의 논리만 좇는 데서 비롯된다.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어떻게 합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만 매달린 결과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삶을 사는지 잊은 채 인간다운 삶과 가치를 등한시하게 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런 인간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실존적 삶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즉자적(卽自的) 삶에서 대자적(對自的) 삶으로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자적 삶이란 현실적 자아와 삶을 이상적 자아와 세계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인식할 때 가능하므로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인간적 가치관의 회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성찰을 해야겠지만 생활 속에서 인간성 회복을 위한 노력도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이른바 ‘또래문화’의 혁신이 필요하다. 친구 집단이 단지 소비 향락적인 생활과 만남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건전한 사고와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
인간 소외는 한마디로 ‘끌려 다니는 삶’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돈이나 물질이나 기계나 상품의 소비에 넋을 잃고 살아가는 좀비(Zombie)적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 구성원이 사회 구조를 인간적 가치 중심으로 전환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인간 소외의 비인간적 삶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 기본 논제 2
▼ 현대사회의 경제적인 관점에서 인간 소외의 원인과 극복 방안에 대해 말하시오.
예시 답안
인간 소외의 원인으로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로 인간을 평가하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들 수 있다. 현대사회는 그 사람이 지닌 인격이나 인간적인 특성을 통해 개인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의 정도에 따라 평가한다. 이렇게 인간을 교환가치에 따라 평가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음으로 세분화된 구조의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개인의 고유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하나의 부품으로 존재하게 됐다.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은 전인적 존재가 아니라 일부로 기능하게 되면서 소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인간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재고해야 한다. 현대사회가 교환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라 해도 인간의 가치를 경제력으로 판단하는 태도를 버리고 인간 자체에 대해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아에 대한 인식과 발전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인간 소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때 발생한다. 즉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이다. 그러므로 취미 활동이나 문화 활동 등을 통해 자기를 계발하면서, 자아에 대한 인식을 정립해야 한다. 타인과 이웃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사랑이 뒤따라야 한다.
▼ 관련 기출문제 ▼
(가)∼(다)는 현대인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글이다. (가)∼(다)에서 그 양상을 분석하고, (라)를 바탕으로 현대인이 처한 상황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 1200∼1400자 (한양대 2001 정시)
제시문
(가) 지난 몇십년 사이에 고객의 위상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소매상점에서는 찾아오는 고객을 개인적으로 친절하게 대했다. 고객은 중요한 사람으로 대접받았고, 그의 일상까지 상점의 주인과 의논할 수 있었다. 물건을 사는 행위 그 자체에서 고객은 자기의 중요함과 품위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날 백화점의 경우, 고객은 우선 거대한 건물과 수많은 점원과 잔뜩 진열된 상품에 압도된다. 이 모든 것에 비해 그는 자기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느끼게 된다. 백화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으로서의 그는 아무런 중요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단지 ‘한 사람’의 고객일 뿐이다. 백화점은 고객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는 단지 추상적인 고객으로서 대접받을 뿐이지 구체적인 고객으로서 중요시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는 오늘날 광고 방법에도 나타난다. 광고는 상품의 효용성을 강조하여 합리적으로 소비자를 설득하기보다는 감성에 호소하거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즉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하거나, 사교계의 부인과 유명한 권투선수에게 특정 상표의 담배에 불을 붙여 물게 함으로써 권위 있는 이미지를 생기게 한다든가, 아름다운 소녀의 성적인 자극을 내세워 비판력을 마비시키려고 한다든가, 어떤 셔츠나 비누를 삼으로써 뭔가 생애가 갑자기 변화하는 듯한 그런 공상을 자극하기도 한다.
(나) 지나간 두 세기 동안 기계적인 생활 수단이 세계적 규모로 보급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내면생활이 풍요로워지거나 예술 창작과 향유에 쓰이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기는커녕 우리는 우리 자신이 기계화의 과정에 더욱 깊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우리의 상상력까지 그 대부분이 내발적(內發的)인 것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상상력은 기계에 비끄러매이거나,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도움 없이는 자체적 실재성을 보유할 아무런 힘도, 생존 능력도 갖지 못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을 17세기, 즉 기술면에서 비교적 원시적이던 그 시대의 상황과 비교해보라. 당시 평범한 런던 시민은 심지어 하인을 뽑을 때도 그가 저녁 시간에 벌어지는 가족음악회에 한몫 낄 수 있을 만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느냐를 고려했다. 오늘날 우리는 야외에서 기계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유롭게 노래 부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며, 휴대용 음향기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면서 강변을 거니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다) 우리는 복도에서 헤어져서 사환이 지적해준, 나란히 붙은 방 세 개에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갔다.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헤어지기 전에 내가 말했지만
“난 아주 피곤합니다. 하시고 싶으면 두 분이나 하세요”라고 안은 말하고 나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도 피곤해 죽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나는 아저씨에게 말하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이 안이 나를 불렀다.
“그 양반 역시 죽어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삭였다.
“예?”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린 빨리 도망해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살이지요?”
“물론 그것이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밖의 이른 아침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여관에서 떨어져 갔다.
“난 그 사람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안이 말했다.
“난 짐작도 못했습니다”라고 나는 사실대로 얘기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했는데…….” 내가 말했다.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내게 물었다.
“씨팔 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니까요. 씨팔 것,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서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도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 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라)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대륙이나 모래톱이 그만큼 작아지듯,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군가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주1) 중세 유럽의 마을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실을 알리고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위하여 치던 조종(弔鐘)을 의미함.
문제 해결을 위한 Tip
●논제의 주어진 조건은 (가)∼(다)에서 현대인이 처한 여러 가지 상황을 분석하고 (라)를 바탕으로 그 극복 방안을 제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데에 유의해야 한다. 제시문을 논제와 연결시키면 기술 문명사회의 인간 소외 현상이라는 문제점을 찾고 그 극복 방안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비교적 긴 제시문이지만 당황하지 말고 논제를 염두에 두고 독해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가)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나)는 루이스 멈포드의 ‘예술과 기술’, (다)는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 (라)는 존 단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발췌 인용한 것이다.
●(가)는 한 사람의 고객이 물건을 사는 과정에서 파는 사람과의 관계는 단절되어 그가 누구인가는 상실된 채 단지 수많은 불특정 소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나)는 또 다른 예로, 상상력이나 예술적 창의력조차 모두 기계에 의존하게 된 현대인이 자신이 누리는 여가 시간에도 홀로 기계와 대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는 동행하던 한 사람의 죽음을 나머지 두 사람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통해, 죽음에까지 이른 그 사람의 고민이나 삶에는 관심이 없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귀찮은 문제가 될 것을 염려해 피해버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현대인은 물질화, 기계화, 인간관계의 단절 등으로 인한 인간 소외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라)는 이러한 인간 소외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시사하는 글이다. 이 시는 인간을 각각 고립된 ‘섬’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대륙’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주제를 바탕으로,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타인의 삶이 곧 나의 삶의 일부이므로 현대인이 처한 ‘인간 소외’의 문제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사랑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방안을 제시하면 된다.
예시 답안
물질문명의 발달은 현대인에게 생활의 편의를 가져다줬지만, 한편으로는 ‘인간 소외’라는 사회 현상을 가져왔다. 이 현상은 사회의 일부분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제시문 (가)∼(다)는 현대인이 마주치는 인간 소외 현상을 몇 가지 예를 통해 제시한다. (가)는 한 사람의 고객이 물건을 사는 과정에서 파는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개인은 무시당한 채 수많은 불특정 소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나)는 상상력이나 예술적 창의력조차 기계에 의존하게 된 현대인이 자신이 누리는 여가 시간에도 홀로 기계와 대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가져다주는 삶의 생동감을 잃고 각자 자신의 삶 속으로 숨어버리는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현대인이 당면한 ‘인간 소외’는 인간의 상품화, 기계의 일부로 전락해버린 인간, 인간관계의 단절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대사회의 총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라)의 시는 이러한 인간 소외의 현상을 극복할 방안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시는 인간을 각각 고립된 ‘섬’이 아니라 모두 하나로 연결된 ‘대륙’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어느 누군가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는 이 시의 구절에서 보듯이 타인의 죽음까지 ‘나’의 일부분의 감소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가 시사하듯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타인의 삶이 곧 나의 삶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가)∼(다)에 제시된 인간 소외 현상의 극복은 바로 이 시가 말하듯 삶의 본질에 대한 각성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각성 아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자세를 가짐으로써 인간 소외 현상이라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이 어우러진 곳에서 나의 삶도 온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시대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정립할 여유가 없었다. 그 결과는 인간 소외라는 사회 현상으로 나타났고, 사회 전반에서 그러한 예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삶은 혼자로는 이뤄지지 않으며 모두의 삶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인식 아래 서로 애정을 가질 때 인간관계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관련 기출문제▼
아래 영어 지문을 읽고 노숙자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여 말하라.(한양대 2003 수시2학기)
Homeless panhandlers are a big problem in many major cities around the world. They are taking over public spaces. People complain that you cannot walk to blocks without running into a panhandler asking for money. It is impossible to read or relax in the subway without being disrupted by a tin can with a couple of small bills and coins in it. Even residential areas are not free of the homeless who often sleep and urinate on private property. Business people, workers, subway riders, and resident in these areas say they have a right to be left alone. They do not want to be constantly bothered by panhandlers.
In more than 40 cities across the United States, homeless panhandlers are now facing new laws banishing them from the streets. An anti-camping law has just been proposed in New Orleans, Louisiana, to control the homeless youths swarming the French Quarter. “The general public is fed up.” said a city official. “People should be able to use public spaces. When other people come in and build cardboard tents and so on. The area becomes inaccessible for everyone else. Particularly in Lafayette Square, there’s group that feeds people on weekends, and they make no effort to clean up ; they just dump the garbage, which attracts lots of filthy rats.”
In Austin, Texas, the city council is nearing final approval of a law to ban camping in any public place. The city’s estimated 6,000 homeless can be found near the bars on Sixth Street, near the University of Texas campus, and in tents in corners of the city parks. The city’s new anti-camping law is expected to carry fines as high as $500. The council’s homeless task force is also proposing a $3.5 million “campus” for the homeless. Task force member Tom Hatch, an architect , said : “It’s insane to make not having a home a crime.”
문제 해결을 위한 Tip
●논술에 관한 교육부 지침에서 심층면접의 경우에는 영어 제시문 활용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영문 해석
집이 없는 노숙자들은 전세계 주요 도시의 심각한 문제다. 그들은 공공장소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돈을 달라는 노숙자들과 충돌하지 않고는 2블록도 갈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깡통에 돈 몇 푼을 담고 있는 걸인들 때문에 지하철에서 쉬거나 신문을 읽을 수도 없다. 심지어 사유지인 주거지에서도 잠을 자거나 용변을 보는 노숙자들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지역의 사업가, 노동자,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그리고 거주자들은 노숙자들 없이 살 권리를 주장한다. 그들은 노숙자들에 의하여 끊임없이 피해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
미국에선 40개 이상의 도시에서 노숙 걸인을 거리에서 사라지도록 하기 위한 법의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노숙 금지법은 뉴올리언스, 루이지애나 등에서 제안되었고, 프렌치 쿼터에 떼 지어 있는 젊은 노숙자들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신물이 났어요”라고 시 공무원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공공장소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고 천막을 치고 있을 때 이 지역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리죠. 라파엣 광장에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는 단체가 있지만 그들은 치우려는 노력은 하지 않지요. 그들은 쓰레기를 버리고 그것은 아주 불결한 쥐를 끌어들이지요.”
텍사스의 오스틴에서는 시의회가 공공 지역 어디에서든 노숙을 금지하는 법의 승인을 앞두고 있다. 그 도시에서는 약 6,000명의 노숙자가 6번가 바 근처, 텍사스 대학의 캠퍼스 근처, 도시 공원의 구석진 곳의 텐트에서 발견된다. 도시의 노숙 금지법은 500달러의 벌금을 내도록 되어 있다. 의회의 노숙자 대책위원회는 350만달러의 비용을 들여 노숙자를 위한 캠퍼스를 마련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대책 마련 위원 중 한 사람인 건축가 톰 해치는 “집을 갖지 못한 것을 죄로 간주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말했다.
예시 답안
노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첫 번째 방법인 뉴올리언스와 루이지애나에서 시행되었던 노숙 금지법은, 시행 후 거리에서 노숙자가 사라지지 않았을뿐더러 나눠준 음식물로 거리가 더 지저분해져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방법으로 볼 수 없다.
두 번째 방법인 텍사스의 오스틴에서 시행되었던 노숙 금지법과 벌금형에 관한 내용은 아직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타당성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 이 방법은 벌금을 통해서 노숙자가 거리에서 사라지도록 하겠다는 것이지만 노숙자를 비노숙자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노숙자는 단속의 눈을 피해 새로운 곳에서 노숙을 하게 될 것이고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방법도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법으로 볼 수 없다.
세 번째 방법인 톰 해치가 제시한 방법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앞선 두 방법과는 달리 노숙자를 위한 대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즉 노숙자의 주거 문제를 해결해주면 거리의 노숙자가 없어질 것이고, 비노숙자도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진다는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 방법에도 단점은 있다. 이 방법을 선택할 경우 노숙자의 주거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일을 하지 않는 이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지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방법도 완벽하다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서술된 노숙자 문제와 그 해결 방법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결 방법을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문제 해결을 위해서 주거와 직업 문제가 모두 해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국가기관에서는 이들을 공동으로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이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노숙자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게 되고 경제적 독립이 가능해질 것이다. 자연히 노숙자로 인한 일반 시민의 피해도 사라질 것이다.
▼ 관련 기출문제▼
현대의 인간 소외와 여러 가지 중독증(알코올, 도박, 인터넷 등)의 연관성과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시오. (서강대 2002 수시1학기)
예시 답안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인간 소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알코올, 도박, 인터넷 등 새로운 도피처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들을 통해 소외를 극복하기는커녕 중독되어 더 큰 고립감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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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첫째, 개인이 스스로 인간적 가치를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에 자신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그 가치들을 발달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타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사랑과 관심을 확장시켜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타인에게 사랑과 관심을 기울여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