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재경부의 ‘한미 FTA 기대 효과 보고서’ 부실 논란

국내 생산 없는 픽업트럭이 ‘대미수출 유망종목’,가장 기대되는 수혜업종은 양말 산업?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입력2006-06-02 1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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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걸로는 국민을 설득하기 힘들다.” 한미 FTA를 홍보하는 정부 실무자가, 재정경제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고 내뱉은 말이다. 갑작스럽게 준비한 탓일까. 자료엔 숫자만 어지럽게 나열돼 있을 뿐 설득력 있는 내용을 찾기 힘들다. 황당한 주장도 있고, 하나마나한 소리도 있으며, 어설픈 분석도 눈에 거슬린다. 결국 ‘국민이 알아서 변화에 대처하라’는 뜻일까.
    재경부의 ‘한미 FTA 기대 효과 보고서’ 부실 논란
    문지방을 낮춰 이웃들이 편하게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냥 놀러오는 것이면 몰라도 이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하는 것이라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이를 추진하는 가장(家長)이라면 집안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경험 많은 집사에게 이해득실을 따져보라고 해야 한다. 함께 살 이웃의 행태 분석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 이들을 보고 배울 후세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양자간 무역장벽을 철폐하자는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런 점에서 신중하게 검토할 사안이다. 정부가 우려하는 것처럼 개방에 반대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한국경제가 세계의 개방 추세 덕에 발전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그러나 정부는 FTA 체결 뒤의 충격과 효과에 대해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에게 어떤 기회가 오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아야 준비할 게 아닌가.

    최근 국정홍보처 직원들로부터 한미 FTA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재정경제부가 제공한 ‘한미 FTA 기대효과’라는 16쪽짜리 보고서를 두고 불만이 많았다. 이 보고서는 대국민 홍보를 위해 거시경제 효과, 업종별·품목별 기대효과, 농축수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 그리고 서비스업의 생산성 제고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국정홍보처 직원들은 이런 자료를 들고서는 국민을 설득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불친절한 보고서

    우선 재경부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 결과를 인용하면서 무역수지 효과를 모호하게 언급했다. ‘1% 생산성 증대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모델’과 ‘1% 생산성 증대효과를 고려한 모델’, 그리고 ‘중력모형’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 중 중력모델은 과거의 추세를 기계적으로 반영한 것이어서 미래 예측에 참고가 될뿐이다.



    생산성 증대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모델은 ‘제조업 전면 개방+농산물 80% 개방+서비스 교역장벽 20% 감축’의 세 가지 변수를 고려해 대미 무역수지가 51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신(新) 분석’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제시한 생산성 증대효과 고려 모델에 따르면 무역수지는 47억달러 감소하고, 생산은 56조7000억원 증가한다. 또 55만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 무역수지 감소폭은 줄고, 생산과 고용은 대폭 증가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지낸 한 경제학자는 “1% 생산성 증대라는 조건을 넣은 모델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고 했다. 그는 또 “효과분석을 할 때는 외부충격(FTA 체결)에 따른 영향을 연도별, 산업별로 상세하게 기술하는데, 이 연구원의 보고서에는 이런 분석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조작” vs “가정을 달리했을 뿐”

    이것과 대조되는 보고서가 있다. 2004년 호주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기 전, 앨런 컨설팅 그룹에서 분석한 120쪽짜리 효과분석 보고서인데,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연도별, 분야별(소비·고용·투자) 충격을 예상해놓았다. FTA 발효 직후, 3년 동안 상승했다가 이후 급격하게 하락(고용·투자 부문)하거나, 반대로 점차 상승(소비 부문)하는 추세를 그래프로 자세히 표시했다.

    이 컨설팅 그룹은 FTA 효과에 대해 세 가지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으며, 체결 이후 뉴질랜드, 중국, 일본, 한국, 아세안 6개국, 미국, 유럽 등으로부터 받게 될 영향까지 예측했다. 또한 FTA 체결 이후 호주 내 각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38개 산업분야는 어떤 충격을 받을지 지도를 제시하며 친절하게 분석했다.

    재경부 보고서가 인용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대미 무역수지 예상치는 조작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최근 민노당 권영길 의원은 “무역흑자 감소 예상치가 당초 73억달러에서 47억달러로 둔갑했다”며 “한덕수 경제부총리,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결과 조작에 관여한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권 의원이 제시한 보고서 원문에는 대미 무역수지가 73억달러 감소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연구원측은 “가정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왔다”며 “쌀 개방을 제외하면 대미 흑자는 47억달러 감소하는 게 맞다”고 해명했다. 두 가지 결과 중에 쌀 개방을 제외한 수치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FTA 체결 이후의 무역수지를 예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비난한다. 아무리 정교한 분석 모델을 동원한다고 해도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환율, 금리, 국제 정세 등에 따라 무역수지는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조작 논란이 일고 있는 데다 분석 모델마저 타당한지 의심을 받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이 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홍보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를 둘러싸고도 이견이 많다. 재경부는 한미 FTA가 체결되면 외국인이 이전보다 200억∼300억달러 이상 한국에 더 투자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 증거로 미국, 캐나다와 FTA를 체결한 멕시코의 경우, 체결 전엔 연평균 27억달러가 유입됐으나 체결 이후 85억달러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 주장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멕시코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대부분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지역 ‘마킬라도라’로 몰렸다. 이곳은 멕시코의 저임 노동자들이 단순 조립, 가공을 통해 제품을 만들고 미국에 수출하는 보세가공품 수출기지다. 주로 저(低)부가가치 산업이나 환경에 유해한 산업이 몰려 있다.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한국은 멕시코와 달리 이미 고임금 산업구조로 돌아섰기 때문에 외국인이 저임금 혜택을 보려고 한국에 투자하지는 않는다”며 “마킬라도라처럼 미국과 가깝지도 않아 지리적 장점도 없다”고 말했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다음은 업종별, 품목별 기대효과 논란. 재경부는 섬유와 의류분야가 FTA 체결 이후 가장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분야는 미국이 상대적으로 고(高)관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 미국의 관세는 평균 2.5%지만, 섬유와 의류는 평균 10%가 넘는다. 높은 관세를 고집하는 것은 고용 때문이다.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섬유산업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외국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면 미국인의 일자리는 그만큼 줄어든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미국이 섬유산업 분야만큼은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재경부는 섬유 및 의류산업 중 양말산업의 사례를 들면서 관세가 철폐되면 수출이 늘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말 수출량이 늘면 부수적인 효과도 생긴다고 했다. 양말업체의 경우 56%가 대구, 경북에 집중돼 있고 대부분 중소기업이어서 수출이 증가하면 지역간, 기업간 양극화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업계는 미국이 관세를 철폐해도 수출증대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20년 동안 양말만 만들어온 D섬유 관계자는 중국 제품과 가격경쟁이 되지 않아 미국 수출은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그는 “실을 훔쳐와서 만들지 않는 한 그렇게 싼 가격으로 양말을 수출할 수는 없다”며 중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에 혀를 내둘렀다. 미국이 11.5%의 관세를 없애도 한국산 양말이 미국시장에서 중국 제품과 경쟁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다. 지난 4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홈페이지에 “FTA를 체결했다고 해서 수출상품의 시장경쟁력이 높아진다고 볼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연구원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에도 중국 제품이 여전히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 홈페이지에 한미 FTA에 대해 비관적인 내용의 글이 실려 파문이 일자 연구원은 이 글을 삭제했다.

    자동차 분야의 FTA 체결 효과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재경부는 “관세가 무려 25%에 달하는 소형상용차(픽업트럭)는 현재 수출하지 않고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땅이 넓은 미국에서 차 뒤칸에 짐을 실을 수 있는 픽업트럭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실 모르는 아마추어리즘

    그러나 문제는 픽업트럭이 국내에서 전혀 생산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생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데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통상협력팀 관계자는 “이론과 현실은 전혀 다르다”며 “지금까지는 업체에서 픽업트럭을 생산하겠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동차업계는 FTA 체결 이후 자동차 수입이 늘어 내수시장을 빼앗길까봐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율은 일부 소형 화물차를 제외하고는 평균 2.5%에 불과하지만, 한국의 관세율은 8∼10%에 달한다. 따라서 두 나라가 관세를 철폐할 경우 한국에 더 불리하다고 볼 수도 있다.

    협정 체결 이후 미국과 통상마찰을 피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미국의 자동차 시장은 경쟁이 심해 2.5%의 관세만 없어져도 한국차의 진출이 쉬워질 것이란 주장도 타당하다. 그러나 생산 가능성도 없는 자동차를 협정 체결 뒤 혜택을 볼 것으로 보고서에 올려놓은 것을 보면 업계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재경부의 ‘한미 FTA 기대 효과 보고서’ 부실 논란

    한미 FTA가 체결되면 대미 무역흑자는 줄 것으로 예상된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기계부품류는 대일수입이 대미수입으로 전환돼 대일 무역적자 축소가 기대된다’는 주장이 그것. 관세가 사라져 값싼 미국산 기계부품이 국내로 유입돼 일본 부품을 대체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한국공작기계공업협회 관계자는 “기계류는 오랫동안 일본과 독일 제품 규격에 맞춰져 왔기 때문에 미국산 부품이 저렴해도 이를 수입할 업체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교하지 못한 분석도 눈에 거슬린다. “자동차부품은 NAFTA 체결 후 일본과 멕시코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이 역전됐다”는 대목이 그런 예다. 1990년에 미국 내 일본 자동차부품의 시장점유율은 32.9%였으나, 2003년엔 18.5%로 줄었다. 반면 멕시코의 시장점유율은 같은 기간 14.1%에서 28.3%로 증가했다. 이것이 NAFTA의 효과라는 얘기다.

    통상을 전공한 한 경제학자는 “현실을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정부의 분석은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겉으로는 일본의 자동차부품 점유율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 예를 들어 일본의 자동차 회사는 미국에 진출할 때 자동차부품업체를 데리고 간다. 오랫동안 자동차부품을 공급한 업체들이 동반 진출해야 미국시장에서도 품질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런 일본의 진출 전략을 벤치마킹해 미국시장 진출에 응용하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업체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부품업체는 자사가 생산한 제품에 미국산이라고 표기한다. 미국에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제품의 생산이 늘수록 자연히 ‘메이드 인 재팬’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떨어진다. 사실은 일본 제품이 미국 제품으로 둔갑한 것이다. 재경부는 보고서를 만들 때 1990년 이후 일본 자동차 회사의 미국 진출 추이와 그에 따른 ‘무늬만 미국산 부품’의 생산량까지 고려했어야 한다.

    한국 기업이 이젠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해야 하는데도 이와 동떨어진 주장을 한 사례도 있다. 재경부는 ‘가죽, 고무, 신발 분야는 미국의 고관세 장벽이 철폐되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런 산업은 저부가가치 산업이라 크게 반길 만한 것은 아니다. 또 “휴대전화와 디스플레이 산업에도 FTA 기대효과가 있다”고 했지만, 이런 제품은 이미 세계에서 1위를 달리고 있으니 하나마나한 소리에 불과하다.

    질문은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한미 FTA의 핵심인 서비스업 개방에 따른 대책도 미흡하다. 재경부는 법률 금융 교육 의료 방송 등을 분야별로 나열하고, 개방하면 경쟁력과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개방에 따른 다각도의 효과 분석은 찾아볼 수 없다.

    예컨대 금융업을 개방한다는 것이 낙후된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인지, 제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금융업을 키우겠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영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한 대학교수는 “영국이 금융산업을 개방한 ‘빅뱅’ 이후 화학 등 일부만 빼고 대부분의 제조업이 쇠퇴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업 개방은 제조업체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며 “목적 없는 금융업 개방으로 영국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경부의 주장에도 일리 있는 것이 있다.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상승한다거나, 통상마찰을 겪고 있는 철강산업이 걱정을 덜 수 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FTA 체결 뒤 국내 산업의 보완대책을 담당할 부처가 내놓은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만큼 내용이 미흡하다. 업계의 의견을 반영했다거나 이해관계를 조정한 흔적도 찾기 힘들다.

    이런 태도는 외교통상부라고 다르지 않다. 4월26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이 주최한 세미나 현장.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가 ‘한미 FTA 출범 경과와 향후 계획’을 발표한 뒤 업계 대표들로부터 의견을 듣는 시간이었다. 업계의 관심은 뜨거웠다. 정해진 시간을 넘겼는데도 질문은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FTA가 체결되면 미국에서 생산된 외국 중고차가 한국에 많이 들어올 것 같다. 국내 자동차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정부의 협상대책은 무엇인가” “국가에서 공인한 기술사들은 자격증을 갖고 미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가” “미국 제품과 우리 제품의 품질규격이 다른데 관세 철폐에 따른 효과는 무엇인가”….

    김종훈 대표는 기업인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물론 협상 대표가 이처럼 세세한 내용까지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답변은 FTA가 얼마나 정부 주도로만 추진되고 있는지를 엿보게 했다.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업계의 의견을 접수하고 있다. 그러나 접수된 의견이 생각보다 너무 적다.”

    올해 초 갑작스러운 한미 FTA 추진 발표 이후, 업계가 무슨 경황으로 의견을 정리해 정부에 내놓을 수 있었겠는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체 대표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빅 스웨덴 혹은 스몰 아메리카’

    무엇보다 궁금한 점은 한미 FTA 체결 이후 한국 사회와 경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다. 한국은 미국 사회를 닮아갈 것인가. 고용구조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누구에게 기회이고, 누구에게 위기인가. 닮아갈 미국 사회의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가.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음에도 재경부는 단 몇 줄로 언급하는 데 그쳤다.

    ‘경제 시스템의 선진화 :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에 따른 경제 시스템의 선진화 및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 경제의 생산성 제고로 잠재성장력 부양.’

    마치 컴퓨터 부품을 갈아끼우듯 ‘미국식 칩’을 한국에 이식하면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부정적인 영향은 없을까. 우리가 대비해야 할 것은 없을까. 보고서 어디를 봐도 그런 분석은 없다.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에 관여했던 한 경제학자는 “노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한미 FTA를 추진하려는 것은 단계적이고 장기적인 발전 전략을 포기했다는 것을 뜻한다”며 “조급증에 걸려 있거나 성장의 동력을 내부에서 찾지 못하는 자신감 결여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FTA나 개방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개방화 추세에 맞춰가면서도 우리 내부에서 발전의 동력을 찾는 노력이 있어야, 그리고 그것이 성공해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물론 한국의 현대사를 보면 스스로 발전의 동력을 찾은 사례를 찾기 힘들다. 삼성과 일부 LG 제품이 세계시장에 명함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 그러나 선진국이 된 국가는 스스로 잠재능력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클러스터(기업도시)가 발전의 동력을 내부에서 찾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계무역기구의 다자간협상(DDA, 도하개발어젠더)이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갑작스럽게 한미 FTA를 들고 나온 것은, 한국은 역시 외부 충격이 있어야 발전한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DDA는 이미 업계의 의견이 반영돼 서비스 산업의 경우 2차 양허안까지 나온 상태다. 그러나 한미 FTA의 경우 업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돼 있는가. 짧은 시간에 이게 가능하겠는가. 언제까지 국민이 알아서 생존하라고 강요할 것인가.”

    한국이 미국 사회를 닮는다는 것은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 것일까. ‘한국은 빅 스웨덴(Big Sweden)이 될 것인가, 스몰 아메리카(Small America)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화제를 모은 성공회대 신정완 교수(경제학)는 “한미 FTA 체결은 한국이 미국쪽으로 좀더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복지정책을 보자. 미국은 최하위층만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그 위의 계층은 알아서 살아가는 사회다. 반면 스웨덴은 하위층이든 상위층이든 보편적으로 복지혜택을 받는 사회다. 물론 상위계층은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 그러나 빈곤층과 중하위층에겐 유리하다. 한국이 미국을 따라간다면 앞으로 중하위층의 타격이 클 것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복지혜택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커지는 하향화 압력

    신 교수는 단체교섭이 약화되고, 개별교섭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노동시장은 좀더 유연해질 것이고 정규직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중하위층은 신분상승의 기회가 줄어드는 반면 하향화 압력은 커질 수 있다. 그는 “미국은 해고도 쉽지만 취직도 쉽다. 한국은 해고만 쉽고, 취직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디 우리에게 닥친 변화가 이뿐이겠는가.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한미 FTA 체결 이후 우리 사회의 변화 방향에 대해 심도 있고 다각적인 분석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 작업을 꼭 국책연구원에만 맡길 필요는 없다. 다양한 연구기관에 의뢰해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국민의 집사’들이 이 임무에 소홀하다면, 그래서 한국이 퇴보한다면 집사들이라고 잘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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