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다빈치 코드’의 ‘오푸스데이’, 한국에도 있다

“바티칸의 마피아? 우린 절제와 수양 강조하는 평신도 단체일 뿐”

  •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6-06-05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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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는 오푸스데이 수도사의 섬뜩한 살인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오푸스데이는 ‘괴상한 가톨릭 조직’이라는 이미지로 남았다. 세간의 뜨거운 호기심에도 오푸스데이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톨레랑스를 보여왔지만, 정작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일이 다가오자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참았던 불만의 표출일까 군색한 변명일까. 뜻밖인 것은 한국에도 오푸스데이의 회원들이 활동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을 통해 베일에 싸인 ‘전세계 가톨릭 내 최대 평신도 단체’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다빈치 코드’의 ‘오푸스데이’,  한국에도 있다

    1992년 5월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에스크리바 신부의 시복식 광경.

    “한 사내가 몇 번이고 자신의 등짝을 채찍으로 후려친다. 한 차례 두 차례…바닥에 피가 흥건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멈춘다. 대못이 박힌 벨트를 허벅지에 찬다. 날카로운 금속이 살갗을 짓누르는 고통 속에서 그는 이렇게 읊조린다. ‘고통은 복되도다. 고통은 사랑받으라’….”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자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개봉된 영화 ‘다빈치 코드’로 유명세를 탄 가톨릭 조직 ‘오푸스데이(Opus Dei)’는 ‘하나님의 사업’이란 뜻을 지녔다. 댄 브라운의 원작소설은 오푸스데이를, 가톨릭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살인을 일삼고 극한의 고행을 행하는 은밀한 조직으로 그렸다. 그런 오푸스데이가 실존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세간의 시선이 쏠린 것은 당연하다. 교황의 은밀한 밀사, 21세기에 그런 조직이 존재하다니….

    “암살자 집단이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오푸스데이 회원인 박재형씨는 “오푸스데이는 가톨릭 내 수많은 단체 중 하나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오푸스데이는 ‘비판서적만 참고해 그려낸 엉터리’라는 반박이었다. 오푸스데이가 존재하는 건 맞지만 왜곡된 표현이 많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말 피가 날 정도로 채찍질을 하느냐” “비밀 결사냐”고 사람들이 묻는 통에 답답해 죽을 지경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푸스데이는, 1928년 스페인의 성인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신부(Jose Maria Escriva·1902~75)에 의해 설립된 후 성장을 거듭해 현재는 60개국에 8만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오푸스데이의 가장 큰 특징은 수도사가 아닌 평신도로 구성된 조직이라는 것. 세속의 평신도도 수도사와 같은 성스러운 삶을 살면 거룩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근본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가톨릭 극우파’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오푸스데이의 조직은 크게 신부, 회원, 협력자로 구성된다. 회원은 성직자에게 맹서하고 단체생활을 하는 미혼회원과, 결혼해서 자신의 생활을 하는 기혼회원으로 나뉜다. 협력자는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방법으로 오푸스데이에 도움을 주는 이들이다.

    박재형씨는 미혼회원이다. 그는 현재 홍콩의 한 오푸스데이 센터에서 단체생활을 하고 있다. 오랜 기간 페루에서 생활한 박씨는 대학시절 오푸스데이를 처음 접했다. 15년 전 회원이 된 후 의사직을 그만두고 오푸스데이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는 “한국은 오푸스데이의 불모지인데다 ‘다빈치 코드’로 말미암아 오푸스데이에 대한 편견이 더욱 심할 것”이라며 오푸스데이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크지 않은 규모지만 한국에도 오푸스데이의 공식 조직이 있다. 알려진 회원은 2명, 협력자는 40~50명이다. 1986년 서울 혜화동성당에서 열린 ‘제1차 한국오푸스데이 세미나’가 최초의 공식행사였다.

    봉천동 빌라 꼭대기층

    구성원의 직업군은 다양하지만 교수, 의사, 번역가 등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는 설명이다. 해외유학 때 오푸스데이를 알게 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 협력자 가운데 대표격인 황적인 서울대 명예교수도 독일 유학시절 오푸스데이를 처음 접했다. 오푸스데이 구성원이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한 학기 동안 생활한 것이 계기였다고. 협력자가 아닌 회원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에 거주하는 최재한 변호사도 이민지인 호주에서 오푸스데이를 알게 됐다. 그는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기혼회원이다. 이렇듯 한국의 오푸스데이 구성원들은 본부가 있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과 남미 등 오푸스데이 활동이 활발한 주요 국가를 경험한 이가 대다수다.

    유학원을 운영하는 김상기씨는 예외적인 인물이다. 한 가톨릭 잡지에서 오푸스데이에 관한 기사를 보고 자진해서 참여를 결심했다. 번역가인 차원호씨도 개인적인 관심에서 2년 전부터 협력자 신분으로 홈페이지 번역 등을 돕고 있다. 처음엔 오푸스데이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차씨는 “실제 활동해보니 내 성격과 꼭 맞는 단체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의 모임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귀국 후 한국에서 활동할 길을 찾지 못해 이따금 관련서적만을 탐독하던 황적인 교수가 어느 날 한 독일인의 연락을 받은 것. 독일에서 황 교수가 알고 지내던 친구로부터 소개를 받았다는 이 남자는 자신을 오푸스데이 회원이라고 밝혔다. 이 사적인 만남이 오늘날의 정기모임으로 발전했다.

    서울에는 이들의 모임말고 외국인으로 구성된 모임도 있다. 한 아프리카 국가의 대사, 외신기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한 이탈리아 학생(연세대 국제대학원 재학중)은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한남동 성당에서 모인다고 말했다. “오푸스데이 본부가 있는 로마에서는 모임이 활발한데 이곳에서의 모임은 조용한 편”이라고 한다. 모임을 거쳐간 외국인은 많지만 오랜 기간을 두고 참여한 이는 찾기 힘들다. 황 교수는 “일시적으로 한국에 머무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로 국적이 다르다 보니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것도 문제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들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은 홍콩에 있는 회원 박재형씨다. 한국에서 정식인가를 받지 못한 까닭에 박씨가 극동지역을 담당하는 외국인 신부와 한 달에 한 번꼴로 한국을 방문하는 것. 내국인 모임의 장소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 빌라의 꼭대기층. 황 교수가 내놓은 공간을 오푸스데이 임시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황 교수는 “독일 유학시절 4년 동안 오푸스데이에서 장학금을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라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다.

    황 교수의 안내로 사무실을 찾았다. 다락 천장에 난 창문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과 정갈한 내부 구조가 중세의 수도원을 연상케 했다. 탁자 하나와 소파 몇 개, 종교관련 서적으로 꾸며진 단출한 공간이었다.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설명하는 노교수의 목소리에는 오푸스데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책장에는 20권 남짓한 오푸스데이 관련 서적이 정리돼 있었다. 영문서적과 일본서적이 각각 3분의 1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황 교수는 “한국에서는 정식인가를 받지 못해 번역된 서적도 많지 않다”며 “이따금 일본과 홍콩 등지에서 관련서적을 구입한다”고 설명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마음으로, 협력자들이 번역을 맡아 하고 있다는 것. 지금까지는 창립자인 에스크리바 신부의 저서 ‘길’과 ‘대장간’등이 출판됐고, 현재 저서인 ‘밭고랑’이 준비단계에 있다.

    모임은 프로그램에 따라 1~2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성서를 읽고 신부의 설교를 듣는 등 여느 가톨릭 모임과 비슷한 성격이다. 하지만 오푸스데이는 핵심만 추려 신속하게 진행하고 ‘뒤풀이’를 일절 하지 않는다. “오푸스데이는 금욕을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하기 때문”이라는 것. 여러 가톨릭 조직에 나가봤다는 차원호씨는 “성격이 건전하고 목적에만 충실한 오푸스데이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며 “딱딱하다고 여기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만족한다”고 했다.

    가톨릭 극보수 우익집단?

    오푸스데이 회원이나 협력자들에게선 별다른 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굳이 꼽으라면 여느 가톨릭 신자보다 신앙을 실천하는 의지가 더 확고해 보인다고 할까. 자연히 ‘다빈치 코드’가 오푸스데이를 ‘바티칸의 마피아’ 정도로 묘사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한걸음 나아가면 ‘다빈치 코드’의 저자가 참고했다는 오푸스데이 비판서적의 출처와 배경도 궁금해진다.

    오푸스데이에 대한 비판은 ‘다빈치 코드’ 이전에도 전세계 가톨릭 단체나 개신교 교회, 반가톨릭 그룹 등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 배경은 다양하지만, 오푸스데이는 ‘보수’ ‘엘리트’ ‘배타’의 집결체라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가톨릭 마산교구의 이제민 신부는 “오푸스데이는 가톨릭을 세상으로부터 지키겠다며 보수 정신과 근본주의로 무장한 단체”라고 평가했다. 또 “열심과 전통의 옷을 걸치고 가톨릭의 복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톨릭이 아닌 것’을 죄악시하는 그들의 사고는 예수의 복음정신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도 했다.

    비판세력이 오푸스데이의 보수성을 공격할 때 첫째로 꼽는 것은 ‘고행’의 관습이다. 정식회원인 박재형씨는 “잠깐씩 돌침이 박힌 혁대를 차기도 하고, 어쩌다 채찍질을 할 때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화 장면과 같은 비상한 고행은 없다는 것이다.

    또 “육체적 고행보다 ‘남에게 친절하기’ ‘아이쇼핑 안 하기’ 등 정신적 고행이 더 힘들다”고 했다. 고행은 회원 이상의 자격을 가진 이가 스스로 원하는 경우에만 실시하며, 몸이 아프거나 다른 개인적 이유가 있을 때는 건너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는 “고행은 신앙과 일상적인 삶을 일치시킨다는 노력의 차원에서 행하는 것”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다빈치 코드’의 ‘오푸스데이’,  한국에도 있다

    한국 오푸스데이 임시 사무실 내부.

    “불교의 일천배, 이슬람의 금식 등 종교에서 고행은 영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 방법일 뿐입니다. 또 가톨릭 내부의 보수단체에서는 암암리에 육체고행을 하기도 하고요. 육체고행에 사용하는 도구는 오푸스데이가 제작하는 게 아닙니다. 홍콩에 있는 다른 수도회의 수도원, 수녀원에 주문한 것입니다.”

    그러나 차동엽 신부는 “고행은 건전한 의미에서의 희생이어야 한다”며 “육체고행은 낡은 관습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중세시대 스토이즘의 관행이 잘못 정착되어 고행의 형태로 남았다는 것. 영혼을 맑게 하는 취지에서 행하는 단식은 인정할 수 있지만 육체고행을 하는 가톨릭 단체는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남녀 조직이 구별돼 있다는 점도 ‘극보수주의의 요람’으로 불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오푸스데이는 남성과 여성모임을 따로 갖는다. 같은 내용으로 운영되지만 조직 자체가 분리돼 있다. 한국에서 협력자로 활동하다 지금은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김혜진씨는 “남성회원의 얼굴은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오푸스데이가 이렇게 남녀유별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은, 초기에는 남성으로만 구성된 조직으로 시작했다가 후에 여성조직을 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남녀조직이 다르다는 이유로 오푸스데이는 줄곧 ‘여성은 센터에서 허드렛일만 한다’ ‘여성과 남성이 사용하는 문이 다르다’는 등의 루머에 시달려왔다. ‘다빈치 코드’는 뉴욕에 있는 오푸스데이 미국 본부에 대해 “남성들은 렉싱턴가(街) 쪽으로 나 있는 정문을 통해서 출입한다. 여성들은 측면 거리로 나 있는 출입문을 통해서 출입한다”고 썼다. 그러나 오푸스데이측은 “여성 독신자 거주지와 남성 독신자 거주지의 위치에 따라 용이하게 출입문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활동 내용도 같은데 남녀 모임을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여성회원 김혜진씨에게 질문을 던지자 이렇게 반문했다.

    “처음부터 틀이 그렇게 짜인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이나 미국에 여자대학이 있는 것처럼요. 다른 목적에서 남녀조직이 분리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인데, 굳이 토를 달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면서 “나도 여자인데 남녀를 차별하고 여성을 무시하는 조직이라면 참여할 리 있겠느냐”고 했다.

    바티칸 비호설의 실체

    미국이나 서유럽 등지에 포진한 오푸스데이 비판세력이 제기하는 문제 가운데는 ‘배타적 엘리트 집단’이라는 시각도 있다. 조직 자체가 고학력자 중심으로 이뤄져 있고 이들이 사회 곳곳의 요직에서 오푸스데이의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재형씨는 “오푸스데이의 정식회원이 되려면 4년제 대학 이상 졸업자여야 한다”고 밝혔다. 또 회원이 되려면 얼마간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의 오푸스데이 협력자들도 경제적으로나 지적으로 엘리트의 범주에 속하는 이가 다수다. 다만 최재한 변호사는 “이는 오푸스데이가 일반화되지 않은 한국적 특성일 뿐”이라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호주 오푸스데이의 경우 구성원의 직업이 다양합니다. 택시운전사나 고졸출신 회사원도 있지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오푸스데이의 이념이므로 직업을 따지는 것은 아닙니다.”

    차원호씨도 “오푸스데이의 협력자가 되는 데는 아무런 자격제한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오푸스데이 신부가 없어 외국 신부가 방문하는 한국 모임의 특성상 어느 정도 외국어 능력은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푸스데이를 ‘배타적인 엘리트 집단’으로 규정하는 시각에 대해 최 변호사는 “오푸스데이 자체의 성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푸스데이 구성원에게는 지침서나 다름없는 에스크리바 신부의 저작들이 성실과 금욕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추론이다.

    “그대의 나태함, 그대의 부주의함, 그대의 게으름은 바로 비겁함이자 태만함이지 결코 ‘길’은 아닙니다. 그대의 양심이 계속해서 말해주고 있듯이.” (‘길’ 348번)

    “공부. 진지한 자세로 공부하십시오. 만일 그대가 빛과 소금이 되고 싶다면, 그대는 지식과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게으르고 태만한 생활이 자신에게 지식이 우러나게 해줄 거라고 상상합니까?” (‘길’ 340번)

    “일하십시오! 그대가 전문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대의 영적 삶도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대를 망치는 ‘쓸데없는 분심’을 제거함으로써 그대는 더욱 인간다워질 것입니다.” (‘길’ 343번)

    이렇듯 오푸스데이는 끊임없는 절차탁마(切磋琢磨)를 권고한다. 최 변호사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의욕 있고 자기관리에 철저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오푸스데이의 주류를 이루게 됐고, 그들의 ‘빈틈없는 성향’에 거부감을 갖는 외부인이 생겨났을 것”이라는 견해를 조심스레 내비쳤다.

    가톨릭계에서는 오푸스데이가 이러한 엘리트주의적인 성격을 이용해 바티칸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비판도 있다. 바티칸을 비롯한 정·재계 요직에서 오푸스데이의 회원이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푸스데이는 교구나 수도회에 속하지 않으면서 교황에 직속된 유일한 ‘성직 자치단’이다. ‘성직 자치단’으로 인정받은 것이 설립된 지 반세기를 갓 넘긴 1982년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특별한 관계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오푸스데이가 급성장한 배경에 바티칸의 비호가 있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이계철 신부는 이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의 입지와 오푸스데이의 성격을 연관지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구권 출신으로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았던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직속단체가 필요했고, 보수적이고 비타협적인 오푸스데이의 공격적 성격이 그러한 교황이 활용하기에 적당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평신도단체가 설립된 지 수십년 만에 막강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같은 시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화의 물살을 비켜갈 수 없었던 가톨릭계의 흐름 속에서 정통을 강력히 주장하는 오푸스데이의 역할이 자연히 강조됐다는 것이다. 차원호씨도 “사회가 급변할수록 보수적인 단체가 오히려 인기를 끄는 양상이 나타나지 않느냐”며 “교리가 유야무야 되는 상황에서 확고한 전통을 추구하는 조직에 의지하고자 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만두고 돌아오라”

    오푸스데이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분위기는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가톨릭 서울대교구가 아직 오푸스데이를 정식 가톨릭 단체로 인정하지 않은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2년 전에는 로마로 유학을 떠난 신부가 유학담당 주교의 권고로 10개월이 채 못 돼 돌아온 경우도 있다. 이 신부가 수학하는 학교가 오푸스데이 산하 학교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 주교는 예수회 소속이라 교구 소속 사제 처지에서는 주교의 권고를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라는 후문.

    월간지 ‘가톨릭 다이제스트’의 대표를 맡고 있는 윤학 변호사도 관련된 일화를 하나 들려줬다. 한 신부가 출판사로 “윤학 미카엘씨가 만드는 잡지를 보지 않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당신은 오푸스데이 회원이 아니냐”고 따졌다는 것. 아니라고 답했더니 그제서야 서릿발 같은 태도를 거두고 다시 호의적으로 대하더라는 이야기다.

    윤 변호사는 에스크리바 신부가 쓴 ‘길’을 출판한 당사자다. ‘길’은 출판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오푸스데이에 대한 국내 가톨릭계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출판사로부터 ‘물을 먹었기’ 때문이다. 책을 번역한 오푸스데이 협력자는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쉽게 성사되지 않던 차에, 내용을 본 윤 변호사가 괜찮다고 판단해 평판과 상관없이 책을 출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김수환 추기경도 오푸스데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한 교구 신부는 “오푸스데이에 대한 악의적 내용이 담긴 책이 여과 없이 번역, 출판됐다”며 “그 영향으로 한국에 오푸스데이에 대한 편견이 뿌리내린 것 같다”고 평했다. 황적인 교수는 “성서 외에 창시자 에스크리바 신부를 지나치게 추종하고, 성서가 아닌 그의 저서를 중시하는 데 대한 거부감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푸스데이 모임에 꾸준히 참가하는 교구 소속 신부가 두 사람 있지만, 이렇듯 가톨릭 내부에서는 오푸스데이의 교리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한 교구 신부는 “일부 신부들이 오푸스데이를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을 뿐 대다수는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오푸스데이에 관계하고 있거나 관심이 있다 해도 이를 시원스레 밝히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 이런 분위기는 평신도 협력자들 사이에서도 읽힌다. 한 협력자는 “‘다빈치 코드’ 이후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주눅이 든다”며 기사를 쓸 때는 익명으로 처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박재형씨를 중심으로 한 오푸스데이 구성원은 1980년대에 가톨릭 서울대교구에 정식으로 인가를 요청했다. 이후 기다린 시간이 10년을 넘기면서 지치기도 했지만, 최근 분위기는 꽤 긍정적이다. 정진석 추기경은 오푸스데이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가를 받게 되면 미혼 회원이 공동 생활하는 센터를 설립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치며 “조용히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낭설과 진실 사이

    ‘다빈치 코드’의 ‘오푸스데이’,  한국에도 있다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사제, 회원, 협력자와 함께한 에스크리바 신부.

    ‘다빈치 코드’는 성서 논란에 불을 지폈고, 그 불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은밀히 떠돌던 기독교 관련 ‘설’들이 기다렸다는 듯 수면으로 떠올랐다. 갖가지 주장이 저마다의 논리를 내세우며 마찰을 빚었다. 소설 전체의 줄거리로 보자면 지엽적인 부분에 불과하지만, 오푸스데이도 이러한 ‘난무하는 설’의 중심에 있었다. ‘바티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이 오푸스데이를 표적으로 삼은 것뿐이다’ ‘엘리트 평신도들이 곳곳에서 입김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이다’ ‘원래 바티칸의 총알받이는 예수회의 몫이었는데, 보수적 성격의 오푸스데이가 출현하면서 역할을 떠맡았다’….

    기자를 헛갈리게 한 것은 몰려드는 자료더미가 아니라 비판자들과 지지자들 모두가 보여준 열성과 진심이 가득한 태도였다. 휘청거림의 막바지, 한 전도사가 스치듯 “구원받으세요. 구원받지 않으면 설명해도 모릅니다”라고 던진 말이 차라리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푸스데이의 한 회원은 자신의 생활을 관통하는 코드는 ‘절제’라고 말했다. 덜 자고 덜 먹고 덜 입고 가끔은 ‘스스로 통각(痛覺)을 자극’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까다롭다고 생각한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은근한 비아냥과 못마땅함이 섞여 있다. 세상 속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그의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절제된 생활은 영적 수행의 일환일 뿐이다. 어쩌면 오해는 그렇게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장단점 없는 조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흠집 하나를 백 개로 부풀리는 건 억울한 일이지요.”

    한 교구 신부는 “침소봉대는 절대 금물”이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모든 죄는 무지에서 탄생한다고 했던가. 확인을 거치지 않은 낭설은 누군가에게 상처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오푸스데이는 이런 곳

    ‘일상에서 성화 실천’…자선·교육활동 주력
    ‘다빈치 코드’의 ‘오푸스데이’,  한국에도 있다

    에스크리바 신부는 기적적인 치유가 인정돼 2002년 시성(諡聖)이 됐다.

    ▼ 창시자 에스크리바 신부 : 오푸스데이는 1928년 스페인의 성인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신부가 설립했다. 그는 전 세계 주교의 3분의 1이 넘는 1300여 주교를 포함한 신자 수천명의 청원에 따라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福者)가 되고, 2002년엔 성인으로 추대됐다.

    ▼ 구성원 분포 : 오푸스데이는 전세계 60개국에 8만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지역별로는 유럽 4만9000명, 미주 2만9000명, 아시아·태평양 4800명, 아프리카 1800명으로 구성됐다. 본부는 로마에 있다. 조직은 사제-회원(기혼, 미혼)-협력자로 나뉜다. 구성원은 기본적으로 평신도이지만 내부에 ‘성 십자가 사제회’라는 성직자 모임도 있다. 오푸스데이의 정신을 추구하는 성직자의 모임으로 약 4000명의 성직자가 참여하고 있다.

    ▼ 주요 활동 : 오푸스데이 회원과 협력자는 기본적으로 일상에서 성화(聖化)를 실천한다. 그 외에 ‘협동사도직’이라고 하는 활동을 하는데, 협력자는 오푸스데이 정신에 입각해 자유롭게 자선활동과 교육활동을 한다. 협동사도직 활동에는 중등학교·대학교 설립, 여성회원 전용센터 운영, 저개발 국가의 의료기관 운영, 학생 기숙사와 문화센터 운영 등이 있다. 스페인 팜플로나의 나바라 대학, 바르셀로나의 비즈니스 스쿨, 페루의 피우라 대학, 필리핀의 전문 직업학교 푼란 등이 대표적이다.
    [참고 : 오푸스데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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