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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CSI, 3대 과학수사기관 밀착취재

“딸 독살한 아버지의 음료수 캔을 보고 뇌파가 흔들리는데…”

  •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한국의 CSI, 3대 과학수사기관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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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의 카세트테이프는 잡음덩어리에 불과한 듯했다. 그러나 검찰 음성분석팀은 특수 음성분석기를 이용해 쓸모없는 음파들을 제거했다. 그런 뒤 자동화자(自動話者) 시스템으로 카세트테이프 속의 음성이 C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카세트테이프 안에 암호로 저장된 고유번호를 이용, 녹음시점을 밝혀냄으로써 용의자의 거짓말도 들춰냈다.

폭발물을 설치한 D는 헌책방에서 구한 책 옆면에 쓴 이름이 단서가 될까봐 사인펜으로 덧칠했다. 그러나 종류가 다른 성분으로 적힌 글자들은 적외선 문서감정 기계를 통과하면 바로 분해할 수 있다. 문제는 기계가 책 두께를 소화할 수 없다는 것. 얇은 종이 한 장만 들어가는 기계에 두께 2cm가 넘는 책의 세로면을 넣을 수는 없었다. 해결책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과 양후열 실장의 기지에서 나왔다. 세로면을 적외선에 반응하는 적외선 필름으로 촬영한 것. 낙서자국이 찍힌 사진은 기계를 통과하면서 선명한 이름 석자를 드러냈다. 이름을 단서로 범인을 역추적할 수 있었다.

E가 쓰고 다닌 수표는 컬러복사기로 위조됐다. 지문도, 이서도 없지만 단서는 복사기 속에 있었다. 입수한 수표의 뒷면에는 암호화된 점들이 찍혀 있었다. 이는 컬러복사기에 설치된 문서식별 기능 때문. 경찰은 수표 뒷면에 적힌 점을 복사암호 분석 프로그램으로 조사해 일련번호와 제품번호를 알아냈다. 그 복사기가 팔린 곳을 추적, 수표를 복사한 장소를 찾아낸 것이다.

날로 지능화하는 수법, 빈틈없는 뒤처리. 꼬리를 밟히고도 절대 아니라고 발뺌하는 뻔뻔함. 시간과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범죄가 날로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과학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는 수사영역은 점점 확대되는 추세. 기술적으로 수사를 지원·보완하는 것이 바로 과학수사의 몫이다. 과학수사 분야는 크게 유전자감식, 마약감식, 심리생리, 문서감정, 영상·음성분석 등으로 나뉜다. 사건의 특성과 수사단계에 따라 적합한 부서에서 담당한다.

과학수사의 활약상이 눈부시지만, 한국의 과학수사 수준은 선진국에 견주면 한참 뒤처지는 편이다. 과학수사의 선진국이라는 영국이 보유한 전문인력은 2300명. 한국은 국과수와 대검찰청 과학수사과, 경찰 과학수사요원을 합쳐봐야 800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최근 들어 과학수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대검은 2006년까지 263억원을 투자해 ‘과학수사지원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경찰도 2000년에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에 범죄분석팀을 신설했고, 지난해 처음으로 범죄분석을 전공한 프로파일러(범행 현장을 토대로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요원)를 채용했다.



저 과자는…, 저 음료수는…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최근 선보인 기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뇌파분석이다. 사람의 뇌파는 눈으로 보든 귀로 듣든 냄새를 맡든 접하는 사물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대개의 경우 범행에 사용한 도구를 보면 범인의 뇌에서는 ‘P300’이라는 뇌파가 나온다. 대검 과학수사과는 2005년 12월 뇌파분석을 이용한 증거자료를 처음으로 법원 심리과정에 제출했다. 경남에 사는 F는 딸의 이름으로 보험에 가입한 지 하루 만에 독극물을 섞은 음료수를 딸에게 먹여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심증은 있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던 차에 검찰은 뇌파분석자료를 제시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F에게 범행에 사용됐을 것으로 짐작되는 음료수와 과자를 보여줬더니 뇌파가 급격한 양성반응을 나타냈던 것이다.

현재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기법으로는 심리행동분석이 있다. 심리행동분석은 진술분석과 행동분석으로 나뉜다. 대검 과학수사과 임호성 사무관은 “아직 인력을 구축하지 못했지만 지난해부터 시연(試演)을 시작했고 곧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심리행동분석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이미 상용화했지만 대검이 우리나라의 언어·환경에 맞게 개편을 준비 중이다.

진술분석은 피의자나 참고인의 진술서로 범죄 유무를 가늠하는 방법이다. 진술서에 숨어 있는 심리를 파악하는 게 핵심. 한 사건에 대해 G와 H가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하자. G는 사건과정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자세히 늘어놓았다. 반면 H는 사건발생 전과 후의 상황을 중심으로 진술했다. 이 경우 H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경우 범죄상황과 내용에 대해 진술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진술서에 ‘우리집’이나 ‘남편’ 같은 일상용어가 아니라 ‘사망자’ 같은 딱딱한 용어를 사용했다면 진술자의 어색한 심리를 포착할 수 있다. 이러한 진술분석 매뉴얼은 수십 가지에 달한다.

행동분석은 조사과정에서 범행 관련자의 행동과 대화를 분석해 일반인과 다른 특성을 포착하는 것이다. 대검 과학수사과 이창세 기획관은 “간단한 예로 사람이 긴장하면 눈을 껌벅거리는 것 같은 특징”이라며, “다양한 심리행동 매뉴얼이 있지만 자세한 내용이 알려지면 수사에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며 더 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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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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